뇌전증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항경련제 ‘토피라메이트’의 치료 효과가 세계뇌전증연맹이 권고한 혈중농도보다 최대 5분의 1 낮은 수치에서도 충분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주건·이상건 교수(1저자 이설아 전공의, 김현철 박사과정, 장윤혁 임상강사) 및 임상약리학과 장인진·유경상 교수 공동 연구팀은 2017~2022년 서울대병원에 방문한 389명의 뇌전증 환자를 대상으로 토피라메이트의 적정 혈중농도를 분석한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뇌전증은 원인 없는 발작(경련)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항경련제 복용이 보편적인 치료법이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2세대 항경련제인 토피라메이트는 고용량을 복용하면 인지기능 저하, 어지럼증, 체중감소, 실조증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 세계뇌전증연맹이 권고한 뇌전증 치료를 위한 혈중농도를 ‘5~20㎎/L’에 맞춰 사용해도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아 적정 혈중농도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

연구팀은 토피라메이트를 처방받은 뇌전증 환자 389명을 대상으로 토피라메이트 혈중농도와 항경련 효과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의 94.4%(371명)에서 경련 증상이 절반 이상 감소했으며, 충분한 항경련 효과를 보인 환자의 토피라메이트 평균 혈중농도는 4㎎/L였다.

피라메이트 혈중농도에 따른 항경련 효과 및 부작용 확률. 토피라메이트의 뇌전증 치료 효과는 적은 혈중농도에서 이미 충분했던 반면, 실조증 부작용 발생 위험은 혈중농도 증가에 따라 함께 증가했다. /이미지 제공=서울대병원

반면 토피라메이트 혈중농도가 6.5㎎/L 이상일 경우 ‘실조증(ataxia)’ 부작용 발생 위험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실조증은 신체 부위 간 상호작용 장애로 인해 동작이 서투르고 섬세한 움직임을 할 수 없는 신경학적 증상이다.

추가로 연구팀은 토피라메이트 단일 약제만 처방받고 충분한 항경련 효과를 보인 환자를 ‘무경련군(39명)’과 견딜 수 있는 수준의 잔여 경련이 있는 ‘내약성 경련군(13명)’으로 나누어 2023년 4월까지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무경련군 및 내약성 경련군에서 약 7.5년 이내에 3개 이상의 항경련제를 처방받는 환자 비율은 각각 7.7%, 54.8%로, 내약성 경련군이 크게 높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내약성 경련군은 약물 저항성이 큰 난치성 뇌전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가 토피라메이트 기존 권고농도(5~20㎎/L)의 5분의 1 수준인 ‘4㎎/L’만으로도 충분한 경련 조절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라며, 무리한 증량은 불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혈중농도 4㎎/L로 조절되지 않는 뇌전증 환자는 토피라메이트를 증량시키기보다 새로운 뇌전증 약제를 추가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경련을 조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신경과학회 ‘임상 및 중개신경학회지(Annals of Clinical and Translational Neurology)’ 최신 호에 게재되었다.

주건 교수(신경과)는 “이번 연구를 통해 많은 뇌전증 환자가 사용하고 있는 토피라메이트 약제의 무리한 증량의 불필요함을 확인했다”며 “토피라메이트를 혈중농도 6.5㎎/L 미만으로 사용 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은 향후 새로운 뇌전증 진료 지침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홈으로 이동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