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대병원 김희수 교수 “역할 다양해진 마취통증의학, 디지털 기술이 혁신 가져올 것”
마취는 지난 천 년 동안 인류가 이룬 가장 의미 있는 의학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의식과 감각, 신체 반사 등을 일시적으로 차단해 안전한 수술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의료 기술의 발전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병원 마취통증의학과장이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마취통증의학교실 주임교수인 김희수 교수는 “과거에는 마취가 수술의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다면, 현재는 수술 중 환자의 안전과 수술 후 건강한 사회로 복귀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발전했다”며, 수술이나 시술 전 운동요법 및 식이요법, 정신적 서포트 등 환자의 상태를 최적화하기 위한 주도적 활동이 모두 현대의 마취 영역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의 마취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진료과인 마취통증의학과는 수술실에서 안전한 수술 환경을 조성하고 환자의 합병증을 최소화하는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 급변하는 의료 환경이 요구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마취통증의학과는 수술 전후에 외과 및 기타 진료과와 함께 환자를 관리하는 파트너이자, 의사소통 조정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수술 후 집중 관리가 필요한 중환자가 적절한 호흡 기능, 혈압, 심박출량을 정상으로 유지하고, 신장 기능과 여타 장기의 기능이 개선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마취통증의학과의 역할이다. 이 밖에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한 급만성 통증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등 마취통증의학과의 활동 영역은 점점 확대하고 있다.
김 교수는 “오늘날 매우 중요해진 의료 정보 분야 역시 확장된 마취 영역의 하나”라며, “마취통증의학과는 다양한 의료 정보 활용과 관련한 중책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맥압 파형을 이용해 저혈압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미리 알려주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상용화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며, 마취통증의학과의 의료 현장에 도입되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사례를 소개했다.
마취통증의학과의 중요 업무 중 하나는 수술 중 얻은 다양한 정보와 여러 가지 생체신호를 이용해 수술이나 시술 후 위험성을 예측하는 것이다. 이에 생체 센서, 웨어러블 디바이스, IoT 기술 등을 활용하면, 수술실뿐만 아니라 수술 전후의 병실에서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위험 징후를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다. 또한, 조기 경고 및 대응을 가능하게 해 궁극적으로 환자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을 진단·예측에 활용하면, 환자 개개인에 맞춘 최적의 마취 계획 수립 및 합병증의 조기 예측·예방도 가능하다. 전자의무기록 등 데이터 시스템은 의료진 간 실시간 정보 공유와 환자 정보의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를 할 수 있게 해 마취 계획 및 치료에 대한 빠른 의사결정을 돕는다.
지역 간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텔레메디신(먼거리 진료)도 하나의 축이 될 수 있다. 해당 기술은 전문 지식을 보유한 전문가의 원격 상담 및 지원을 가능하게 해 환자의 치료 품질을 높일 수 있다.
이외에 가상 현실(VR), 증강 현실(AR) 기술을 환자나 전공의 교육에 활용하고 있으며, 향후 마취 계획 시뮬레이션, 치료 중 스트레스 완화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마취통증의학과의 업무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며, 서울대학교병원 역시 연구 기반 근거 중심으로 마취통증의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로 의료 환경이 급변하는 세태에 맞춰 “독립되어 있던 의료 분야를 통합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다양한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마취통증의학과는 신흥 인기과로 평가받고 있지만, 아직 의료 현장에서는 마취 전문의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이에 대해 김희수 교수는 “과거와는 달리 마취통증의학과가 독립적인 전문 분야로 인식되면서 환자의 안전을 위해 병원에서 수요가 증가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수술장 이외 통증 외래나 중환자실 또는 의료정보 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취 전문 분야 특히 수술장에서의 인력공급이 점점 줄어들게 된 측면이 있고, 그것이 지금의 현상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인력 부족 현상은 개개인의 역량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의료 전반에 걸친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의료인력 부족 사태로 인한 의료진의 번아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병원의 효율화’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번아웃을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근무 시간의 탄력적 운영 등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심리적 지원이나 정기적인 교육을 지원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특히 의료진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수용할 수 있는 조직 문화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며, “전문의로서 마취통증의학과가 많이 발전하기는 했지만, 특히 병원에서 입지가 좀 더 확고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