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수지'라는 판타지, '이두나!'가 되다
* 해당 인터뷰에는 시리즈 '이두나!'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에 캐스팅에는 논란이 뒤따랐다. 웹툰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자신이 상상한 인물과 다른 실사화 캐스팅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면서다. 하지만, '이두나!'는 달랐다. 수지가 '이두나'였고, '이두나'가 수지였다. 수지라는 판타지가 '이두나' 그 자체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이두나!'는 걸그룹을 탈퇴하고 대학가 셰어하우스에 칩거 중인 두나(수지)가 평범한 대학생 원준(양세종)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걸그룹 멤버와 평범한 대학생의 만남, 꿈 같은 스토리 속에는 함께 현실이 자리해야 했다. 실제 걸그룹 미쓰에이로 데뷔한 수지는 자신을 그대로 '이두나'에 녹였다. 그리고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을 두나를 통해 돌아보고 토닥이게 됐다.
"실제로 (걸그룹으로) 활동한 게 있어서, 어느 부분에서는 저의 실제 모습이 비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게 '이두나!'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저는 이 작품을 제안받고 웹툰을 바로 봤는데요. 웹툰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매력적이고 특이했다고 생각했어요. 안 해본 캐릭터를 해보지 않은 톤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지점이 가장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두나가 가진 아픔을 잘 공감할 수 있기에 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두나는 걸그룹 드림스윗에 속해있었다. 드림스윗은 수지를 비롯해 배우 고아성, 댄스크루 라치카 멤버 리안, 시미즈, 그리고 자넷서까지 5인조 걸그룹이었다. 이들 무대는 실제 공연인 '2022 K-CON Japan'에서 비공개로 촬영됐다. 시리즈 속 한 장면을 위한 무대이지만, 다섯 명의 멤버들은 실제로 무대에서 공연을 선보이기 위한 연습에 임했다. 수지가 미쓰에이 시절을 가장 많이 떠올렸던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연습할 때 가장 많이 생각났어요. 오랜만에 그룹으로 함께 연습하며, '옛날에 이렇게 연습했던 시절이 있었지'라는 묘하면서 익숙하고, 그러면서도 낯선 감정이 들더라고요. 시미즈와 리안은 안무 디렉팅도 해야 했거든요. 안무를 짜놓고 저희에게 알려주며 동선을 맞추는데, 처음에 정말 엉망진창이었거든요. 그런데 조금씩 연습하고 호흡을 맞추니, 그게 맞아가더라고요. 그런 쾌감이 있더라고요. 조금씩 한 팀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또 그런 지점을 떠올렸던 장면이 하연이(고아성)와 카페에서 만나서 서로 이야기하며, 오해를 푸는 장면이었어요. 그 장면이 뭔가 많이 슬프기도 했고, 따뜻하기도 했고, 좀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촬영하며 중간중간 쉴 때 '이거 너무 슬프다, 왜 이렇게 대사 하나하나가 마음을 후벼 파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둘이 확 친해지는 느낌도 아니잖아요. '뭔지 알잖아' 이런 눈빛만 보고 전해지는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고아성 배우님이 너무 노력파시고, 고민도 많으시고, 열정도 엄청나셔서 잘 소화해 내시는 걸 보고 감탄했습니다."
'이두나!'를 보고 난 후, 결국 이 이야기는 이두나의 솔로곡 '보통의 날'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해당 곡은 'I'm just realized 끝없던 겨울과 미로 같던 마음속'이라고 시작해 '내게 있어줘'라는 원준(양세종)을 향한 고백 같은 가사로 마무리된다. 수지 역시 "모든 게 두나의 시절을 다 말해주는 것 같아서요. 그 노래를 들으면 울컥하기도 하고요. 가사 하나하나 마음에 세게 박히더라고요"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연습할 때나 촬영할 때,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자꾸 가사를 생각하지 않고 부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수지는 '이두나!'의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제 생각이 답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답이 없기도 하고요. 감독님께서는 열린 결말로 열어두셨는데요. 저는 그때그때 마음이 바뀌긴 하더라고요. 어떤 때는 '둘이 잘 만나고 있을 거야'라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둘이 각자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라고 현실적인 느낌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대부분 사람이 '이두나!'를 보며 수지라는 판타지를 떠올리지만, 수지에게는 원준이가 판타지였다. "원준이 같은 남자를 만나는 게 판타지"라는 것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였다.
"원준이는 두나의 그 자체로 안아주고, 그 자체로 바라봐 주잖아요. 사실 두나가 마음대로 행동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때마다 옆에 있어주고, 따뜻하게 말 걸어주고요.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판타지라고 생각했어요."
수지는 어느새 데뷔 14년 차 연예인이다. 두나가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내가 버는 돈 중에 반은 얼굴값이고 반은 욕 값"이라고 한 대사처럼, 수지에게도 힘든 시간이 있었다. 수지는 현재 항상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다. 그렇기에 수지에게 작품은 항상 소중하고, 간절하다.
"저도 두나처럼 이 세계가 전부였던 때가 있던 것 같아요. 이 '일이 나에게 전부라면, 일이 없어질 때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일이 전부가 되게 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저에게 온 작품은 너무 소중해요. 항상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임해요. 그러면 더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같고요. 그런 마음가짐이라는 거지, 은퇴를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웃음)"
그런 면에서 '이두나!'는 수지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특히 쿠팡 플레이 시리즈 '안나'로 연기 호평을 받은 이후 선보인 작품이기에 그 의미에 더욱 궁금증이 실린다.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이두나를 하면서, 더 확신을 가지고 연기하려고 했고요. 이 인물을 제가 잘 표현할 수 있다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늘 그렇든 '최선을 다하자'라는 마음이었어요. 되게 특별하지는 않았네요."
수지의 차기작은 김은숙 작가의 신작 '다 이루어질지니'로 결정됐다. 해당 작품 속에서 과거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김우빈과도 재회하게 됐다. 현재 "대본을 보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지만, 수지와 김은숙 작가, 김우빈의 만남만으로도 기대감이 높아진다.
"김우빈 배우와 너무 반가웠어요. 확실히 같이 작품을 해봤으니까, 더 편한 건 있더라고요. 이번에는 전작과 완전히 다른 캐릭터와 작품으로 만나게 돼 기대감도 크고요.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살짝 팁을 드리면, 제 캐릭터가 너무 밝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어두운 작품은 아니고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