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현욱, '도적'을 완성한 찰나…"심적 고통에 6kg 빠졌다"
*해당 인터뷰에는 '도적: 칼의 소리'의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광일은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모든 것을 쥐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조선의 광복은 오지 않을 거라 믿으며, 혼돈의 시기에 아버지를 따라 요리조리 라인을 잘 탔다. 그래서 다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몸종에서 면천시켜주며 평생을 자신에게 보은하며 살 줄 알았던 친구 이윤도, 유일한 사랑인 희신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다. 망한 나라에서 나만은 망하지 않고, 모든 걸 움켜쥔 줄 알았는데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아 가는 인물, 그 인물이 광일이다.
이현욱은 넷플릭스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에서 광일 역을 맡았다. 그가 광일 역을 제안받은 것은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의 신부'(2022) 촬영 당시였다. 광일 역을 두고 고민했다. 그리고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역할"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합류를 결정했다.
"역사적인 흐름 안에서 머물러 있었던 역할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시대극이고, 무거운 역사 속 이야기였기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는데요. 그런 것들을 잘 이겨내는 것도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인물상을 저도 한 번쯤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도전했고, 노력했습니다."
이현욱은 과거 OCN 드라마 '써치'에서 이준성 역을 맡아 40번 넘게 태닝을 했던 일화가 알려져 있기도 하다. 캐릭터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를 해왔는지 보여준 한 단면이다. '도적: 칼의 소리' 촬영을 앞두고, 고민의 시간이 컸다. "친일에 앞장선 인물을 미화시킬 생각도, 그렇게 한 사람들을 두둔할 생각도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런 선택을 한 시대의 딜레마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작가님께서는 광일이가 좀 섹시하길 바라셨던 것 같은데, 안되더라고요. '멋있어 보여야겠다'라는 생각을 배제한 것 같아요. 그리고 맹목적으로 감정에 솔직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찰나의 감정을 많이 생각했어요. 숙부님을 고문하는 장면에서도 인간성을 결여시켜야 하는지, 남아있어야 하는지를 두고 감독님과도 대화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조금의 인간성을 남겨둔 것이 태주(고규필)가 편지를 다 썼다고 했을 때, 마치 끊어서 화난 것처럼 연결을 시켰거든요. 찰나였지만, 저는 가까이 봐야 보이는 연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 그런 걸 준비한 것 같아요."
"이윤(김남길)의 총에 맞아 손가락이 잘렸을 때도 그랬어요. 잠깐 이광일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찰나가 있었거든요. 그때 (김)남길이 형이랑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우린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있어야 캐릭터가 더 입체적으로 표현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열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시선이 주는 힘을 더 클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그 때 '잠깐 과거로 돌아가서 서로를 바라보면 어떨까요'라고 이야기해서 만들어진 장면이었어요. 덕분에 잠깐, 아주 찰나의 순간 남길이 형도 저도 과거의 이윤과 이광일이 되어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다음 대사인 '착하게 살아라'라는 말도 더 와닿고요."
이현욱은 "희신(서현)에게는 애정, 이윤(김남길)에게는 애증"이라는 감정선으로 광일을 그려갔다. '도적: 칼의 소리'를 보는 이들은 희신을 향한 광일의 마음을 두고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았지만, 이현욱은 그 마음이 가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희신의 정체를 알고 난 후, 광일이 홀로 술을 기울이는 모습을 쉽게 촬영할 수가 없더라고요.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진짜 많이 했어요. 희신을 향한 광일이의 마음을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신파로 가져가고 싶지도 않았어요. 딜레마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허무함, 허탈함, 회의감이라는 감정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제가 그 눈물을 닦았어요. 광일이에게 '눈물을 전시하는' 그 자체가 방향성이 다르다고 생각했거든요. 모르시겠지만, 눈물을 거둬내고 가려고 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광일이 도적단 같은 액션을 소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심적으로 힘들었다. 특히, 이현욱은 숙부를 고문하는 장면을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 꼽았다.
"가장 마음이 쓰였어요. 걱정도 많이 했고요. 그 시대에 실제로 가족이든, 누구든 숙청해야 하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고요. 배우로서는 표현해 보고 싶은 감정이었지만, 인간으로서는 되게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광일이로 살아가며 몸이 힘들기보다 마음이 힘들었어요. 그래서인지, '도적: 칼의 소리'의 촬영 중·후반부로 가면서 체중이 6kg 정도 빠졌어요."
'타인은 지옥이다'에서 묘한 공포감을, '마인'에서 젠틀함과 악랄함의 극단을 오가는 인물을 표현해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현욱은 '도적: 칼의 소리'에서도 광일 역을 맡아 나라도, 동료도, 동포도 서슴없이 팔아넘긴 악랄한 그를 한없이 나약하고 겁쟁이처럼 그려냈다. 황준혁 감독이 "입체적인 악인"이라고 이현욱을 표현한 이유다. 이현욱은 악(惡)을 악보다는 오묘함으로, 이중성으로, 그리고 나약함으로 담아내 더 큰 악으로 대중에게 다가서게 했다.
그런 그가 최근 고민하는 것은 "좋은 사람"이라는 네 글자다. '도적: 칼의 소리'에서 만난 김남길에게 받은 영향도 있다.
"제가 생각할 때 저는 좋은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를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제가 좋은 사람은 못 되더라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은 하면서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해요. (김)남길이 형이랑 이야기하면서 더 느꼈어요. 형은 실제로 봉사도 많이 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움직이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제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보면서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갈지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게 못 살고 있어서 고민이라도 하는 것 같아요.(웃음)"
연이은 칭찬에 이현욱은 "나태해지기 쉬운 성격이라, 저에겐 가혹하지만, 사람들에게 더 관대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이미 고민하고 있고, 한 걸음씩 '좋은 사람'을 향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현욱을 비롯해 김남길, 서현, 유재명 등 배우들의 진심이 담겨서인지 '도적: 칼의 소리'는 공개 후 일주일만인 지난 1일, 넷플릭스 월드 차트 TOP 10에서 전세계 비영어권 시리즈 부문에서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본격적인 전개를 앞두고 마무리된 탓에 시즌 2를 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저희가 다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시즌 2를 한다면 정말 보여드릴 게 많을 것 같아요. 시즌 1보다 더 진하고 많이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작되려면) 반응이 좋아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