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리즘 이시한 칼럼

Chat GPT가 메타버스를 대체하는 새로운 트렌드?

2023년은 ‘Chat GPT’가 열었고, 지금의 기세로 보면 당분간은 Chat GPT라는 키워드가 모든 테크쪽의 관심을 다 흡수할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많은 대중들은 ‘메타버스, NFT 한참 이야기하더니, 이제는 Chat GPT로 넘어갔네’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그건 매우 단선적인 이해입니다. 메타버스도, NFT도 나름의 로드맵에 맞춰서 착실하게 계속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어요. Chat GPT도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GPT-1, 2, 3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GPT-4가 나왔는데, 그중에서는 2022년 11월 30일에 발표된 GPT-3.5 단계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거거든요. 그러니까 기술은 자신의 페이스대로 조금씩 매일 성장하는데, 사람들이 어느 순간 관심을 기울였다가, 또 어느 순간 관심을 거두면서 마치 기술이 확 성장하고 또 확 가라앉는다고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비유해서 보자면 하나의 트랙을 메타버스, NFT, Chat GPT가 릴레이해서 달리는 게 아니라, 수많은 트랙에서 개별 기술들은 동시에 각자의 달리기를 해가는 것입니다. 중계카메라가 동시에 그 트랙들을 잡지 못하고 하나씩 비출 뿐인 거죠.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Chat GPT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트랙이 하나로 합쳐져서, 두 주자가 동시에 같은 트랙을 뛰게 될 때도 있다는 겁니다. 그때 나오는 시너지는 상상 이상이 될 것입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주목 해야 할 트랙은 메타버스와 Chat GPT가 만나는 지점이죠.

메타버스를 완전하게 독립된 유니버스로 만들어 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기술이 GPT로 대표되는 거대언어모델 LLM (Large Language Model) 기술입니다. 언어에 특화된 AI들에 개발사마다 여러 가지로 이름을 붙이는데, GPT는 그중의 하나인 것이죠. 하지만 워낙에 Chat GPT가 화제가 되다 보니, 편의상 그냥 Chat GPT로 명명을 하겠습니다.

Chat GPT가 메타버스의 발전을 촉진시키게 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Chat GPT의 특징을 알아야 하는데요, Chat GPT는 한 마디로 사람 말을 알아듣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기계예요. 사람 말을 알아듣고 그에 맞춰서 대답을 하므로, Chat GPT와 대화하고 있으면 마치 사람하고 대화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자신과 대화를 나눈 상대가 사람인가 기계인가를 테스트하는 것이 튜링 테스트입니다. 그런데 Chat GPT는 바로 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하죠. 그러니까 메타버스에 Chat GPT를 적용해서 본다면, 메타버스에서 자신과 방금 만나 이야기를 나눈 상대가,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진짜 사람인지, 아니면 디지털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AI인지 알 수 없다는 얘기인 것이죠. 

의식을 가지는 NPC들

게임에는 NPC라는 것이 있습니다. Non-Player Character를 줄여서 말하는 것인데요, 플레이어가 아닌, 게임상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게임 진행을 위한 캐릭터들입니다. 상점주인, 시장에서 물건 파는 사람, 퀘스트 주는 사람, 마왕성의 병사들 같은, 사람이 조정하지 않은 캐릭터들이죠. 이 캐릭터들은 게임 진행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지정한 동작만 반복합니다. 특히 RPG (Role-Playing Game) 같은 경우, 플레이어와 대화를 하는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항상 같은 말만 반복하죠.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미션 인포 혹은 선택지 제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 NPC들에게 Chat GPT를 적용하면, NPC와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미션을 전달하다가도 플레이어가 ‘그런데 그 산까지는 어떻게 가죠?’라고 NPC에게 물어보면, '마을 뒤편으로 보이는 바위산을 따라가다가, 그 바위산 어귀에서 우측 방향으로 반나절 가면 보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죠. 그리고 ‘이 마을에 볼만한 데는 있나요?’라고 물으면, 또 '마을 뒤편의 호수가 가볼 만하다'는 대답을 할 거예요. '하룻밤 묶을 거면 우리 호텔로 오라'는 제안을 할지도 모르고요. 마치 진짜 그 마을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이미 이런 상황을 영화로 구현하기도 했죠. 마블의 데드풀로 유명한, 라이언 레이놀즈가 주연한 영화 ‘프리가이’는 AI가 적용되어서 자아를 가지기 시작한 NPC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이 NPC는 처음에는 자신이 게임 속 캐릭터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요. 스스로도 자신을 사람처럼 여기는 거예요.

이런 AI 기술이 메타버스에 적용되면, 우리는 메타버스에 들어갔을 때 만나는 사람들이 진짜 사람인지, 아니면 AI로 존재하는 NPC들인지 알지 못하게 됩니다. 어차피 아바타로 만나고, 소통도 대화창이나 아니면 스피커로 전해지는 음성으로 하게 되니까, 직접적인 인간의 증거가 드러날 일이 없거든요. 사실 그것이 메타버스의 중요한 전제이기도 하죠. 현실과 유리되어서 성립되는 또 다른 세상이 메타버스잖아요. 물론 디지털 트윈같이 현실을 기반으로 한 메타버스도 있지만 이건 현실의 보조도구로 제한적으로 쓰일 뿐, 보통 메타버스에 대중들이 모이는 것은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원하면 아바타의 원래 주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게 할 수 있는 것이 메타버스예요. 당연히 직업, 나이, 국적 등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죠. 그런데 여기에 ‘인간인가 기계인가의 여부’가 드러내지 않는 또 하나의 정체성 요소가 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메타버스가 오히려 인간미 넘치는 세상이 되는 마법

초창기 메타버스의 경우에는 유저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고, 또 장기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기보다는 그냥 스쳐 가는 유저들이 많죠. 또 하나의 생활공간으로서의 메타버스가 매력적이라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들이 지속적이어야 하는데, 그런 관계를 만들어 가기에는 부족한 조건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메타버스에 랜드를 사고, 자신의 집을 지었다고 생각해 볼게요. 자기 집이 있다면, 아바타는 일정한 장소에 정착하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메타버스에 들어갈 때마다 같은 공간에 머물게 되는 거죠. 그 공간에 있는 집들 역시 마찬가지라면, 결국 플레이어는 메타버스에서 한 마을을 형성하고, 공동체로 지내는 것입니다. 지나가다가 옆집 주인과 가끔 만나서 대화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 아바타들이 모두 유저들로만 구성된다면 초창기 메타버스에서는 같은 마을에 있다 하더라도 이웃들을 만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일단 초창기니만큼 유저 수가 적을 수밖에 없거든요. 결국 지나가다가 스치는 만남이나, 아니면 현실 친구와 연락해서 동시에 같은 장소로 들어가 현실 만남의 보조 정도의 만남밖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죠.

그런데 마을 중간 중간에 NPC들이 같이 살고 있어서, 친절한 이웃 주민들의 역할을 늘 하게 된다면 그 마을에는 언제나 활기가 넘칩니다. 다른 유저가 없어서 자기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그냥 나오는 메타버스가 아닌 거예요. Chat GPT가 적용되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이 AI들은 개를 산책시키려고 집을 나서는 자신에게 말을 걸기도 할 겁니다. ‘밤새 마을에 소나기가 왔다’는 말을 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기억력까지 장착하고 있다면 ‘저번에 다친 곳은 다 나았냐?’라는 진짜 이웃들과의 일상대화 같은 상황을 이어갈 수 있죠. 이 정도면 이웃들과 말 한마디 안 섞는 현실의 세계보다도 훨씬 정감 있는 세계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스쳐 가는 만남이나, 깊게 사귀는 만남만이 있고 이웃사촌 같은 중간 정도의 관계들이 점점 희미해지는 현대사회에 메타버스의 관계는 바로 이 ‘약한 연결’과 ‘강한 연결’의 중간 정도 되는 ‘중간 연결’이라는 고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AI로 구성된 NPC와 만들어 가는 메타버스 세상이 현실보다 더 인간미 넘치는 세상이 될 수도 있어요.

이쯤 되면 메타버스 네이티브들에게는 사실 내 이웃이 기계인지 사람인지가 그렇게 큰 상관이 없을 수 있어요. 어차피 메타버스 안에서의 유니버스는 이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지, 현실과 연계되는 게 아니니까요. 메타버스에서 자신과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며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웃이 현실에서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어차피 밝히지 않으면 사람인지 기계인지 모를 정도면 그만큼 인간적으로 말이 통한다는 것인데, 그게 실제로 기계이든 사람이든 무슨 상관일까요?

[이시한 교수] 이시한 교수는 연세대학교 박사 수료 후 성신여자대학교 겸임 교수로 활동 중인 ‘지식 탐험가’다. 다수의 기업 및 공공기관에서 메타버스 관련 프로젝트 및 자문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메타버스의 시대’, ‘NFT의 시대’, ‘이시한의 열두 달 북클럽’ 등이 있으며 현재 메타버스 전문 뉴스 미디어 '메타리즘'에서 전문가 칼럼을 집필 중이다. 

metarism@galaxyuniverse.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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