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은희가 말려도, 장항준은 간다 "내 피가 끓는다면"
*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리바운드'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리바운드'는 실화를 실화로 그린 작품이다. 2012년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 중·고교농구대회, 전원 6명뿐인 선수로 출전한 최약체 팀, 부산 중앙고 농구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장항준 감독은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고 했다. 강양현 선수를 비롯해 실제 선수들의 키와 비슷한 키의 배우를 캐스팅했고, 배우들은 체중까지 비슷하게 맞췄다. 실제 부산 중앙고 농구부 연습장에서 촬영했고, 당시 사용하던 농구공까지 그때 사용하던 브랜드의 공을 사용했다.
장항준 감독은 알았다. 이 영화 '같은' 실화 그 자체에 힘이 있음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5년 전부터 이 시나리오를 놓칠 수 없었다. 작품이 들어오면, 가족이 다 함께 돌려보는 장항준 감독 집안의 가풍에 따라, 아내인 김은희 작가와 딸도 '리바운드'의 초고를 봤다. 그리고 김은희 작가는 각색에 참여했다. 장항준 감독은 "명성대로 아주 잘 썼죠"라며 인터뷰에서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리바운드' 제작 스토리를 펼쳐놓기 시작했다.
Q. 농구계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지만, 대중은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왜 부산 중앙고 농구부의 이야기였나.
"2012년 부산 중앙고 농구부는 스포츠 뉴스에도 언급이 됐어요. 그때 바로 '리바운드'의 제작자 장원석 대표가 그 뉴스를 본 거죠. 그리고 부산 중앙고와 강양현 코치에게 연락합니다. '영화하는 사람인데, 언젠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으니 허락해달라'고요. 11년 전, 장원석 대표가 기획을 시작해서 권성희 작가님을 만나 실화를 들려주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저에게 이 시나리오가 온 건 이미 몇 번째 다시 쓴 2018년 버전이었어요. 어렴풋이 기억나더라고요. 시나리오를 보고 바로 인터넷을 찾아봤죠. 실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투자도 만만치 않고, 캐스팅도 잘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김은희 작가가 시나리오를 보여달라고 하고 '오빠, 이거 꼭 해야겠다'라고 했습니다. 저희 딸도 '아빠가 안 하더라도 언젠가 누군가 만들면 좋겠다'라고 했고요. 실제 사건도 좋았고, 촬영 전까지 각색해서 시나리오가 완성됐습니다. 마지막에 보신 장면은 촬영 직전 고친 시나리오입니다."
Q. 만약 김은희 작가가 '하지 않는 게 좋겠다'라고 했다면, 지금의 '리바운드'는 만나볼 수 없었을까.
"그래도 결국 제 결정대로 했을 거예요. 저는 아내와 딸을 비롯해 모든 사람의 조언을 귀담아듣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판단은 제가 하죠. 어른이니까. 어른스러우니까.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종합적으로 판단을 내리게 되는 가장 큰 근거는 '이것이 나의 피를 끓게 하는가?'예요. 투자가 보장되어도 피가 끓지 않으면 할 수 없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엄마가 바이올린 가르쳐준다고, 선생님이랑 이야기할 때 집으로 도망가 버린 사람이 저예요." (웃음)
Q.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힘이 들 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대규모 오디션까지 마친 상황에서 영화가 엎어지기도 했고, 지난해 천기범 선수의 음주운전 사고도 있었다.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리바운드'를 놓지 않았다.
"저도 그렇지만, 스태프들이 멘붕에 빠졌죠. 저는 어릴 때부터 이쪽 일을 해서, 작품 하나가 공개되기까지 수많은 일이 생긴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저는 원래부터 이 이야기를 '꿈을 잃어버린 25살 청년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외당한 6명의 소년이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누구 한 명의 이미지가 중요하지 않았어요. 묵묵하게 어떤 결과가 주어지던지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Q. '리바운드'는 배우 안재홍과 여섯 명의 신예 배우들이 채워간다. 그런데 영화의 말미, 그 여섯 명이 모두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강양현 코치 역을 맡은 안재홍이 초반부를 이끌고 가지만, 결국 캐릭터 한명 한명이 살아있다.
"누군가의 원맨쇼가 아니고, '강양현과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스포츠 영화와 크게 다른 점은 실화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서사인데요. 보통 좀 질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완성된 인격체의 스승을 만나 변화하는 이야기가 담기잖아요. 그런데 '리바운드'는 그렇지 않죠. 강양현 코치는 실제로 선수 생활에 실패하고 25살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오게 됩니다. 실제로는 24살이지만, 각색을 통해서 영화 속에서는 25살로 그려지죠. 강양현 코치가 '나 이제 뭐 하지?'라고 생각할 때, 부산고 농구부를 만나게 되는 거죠. 사실 선수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위치에서 코치가 됐는데, 욕심이 생긴 거죠.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리라.' 그렇게 강양현 코치의 성장 스토리가 담깁니다. 보통 완성된 코치가 오지만, '리바운드'에는 스승도 제자도 함께 성장하는, 모두가 성장하는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Q. 그런 이유에서인지, 강양현 코치의 성장담이 인상 깊었다. 특히, 안재홍이 사과하고 진심을 전하는 대목은 '어른'의 모습이었다.
"다들 한 두 번씩은 있지 않나요? 저도 참 사과를 많이 한 인생이었습니다. 우리 딸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한 적이 있고요. 잘못하면 사과해야죠. 저희 현장도 비슷했어요. 밥 먹을 때 보통 주연 배우와 감독이 먼저 먹고, 그다음 메인 스태프와 조연 배우가 먹고 이런 식이라면, 저희 현장은 무조건 '선착순'이라고 했어요. 그런 게 제 평소 삶의 방식이에요. 특혜는 없다. 제작자도 늦게 오면, 맨 뒤에 줄을 서야죠."
Q. '실화'지만, 실제 부산 중앙고 농구부의 정문까지 바꿔서 촬영할 정도로 '실제 같은 높은 싱크로율'를 고집한 이유가 있었을까.
"부산 중앙고 농구부로 인해 정권이 바뀐 것도 아니고, 한국 사회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니에요. '리바운드'로 나오기 전까지 열 명 중 한 명이 기억할까 싶죠. 그런데 '한 번 기억 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런 소년이 있었다는 걸. 저희에게 내세울 게 진짜 없었어요. 안재홍은 진짜 대단하지만, 대부분 20대 신인이고 진짜 대스타가 영화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저희가 내세울 건 '실제와 가까운, 리얼이다, 실제로 이랬다'라는 지점이었어요. 중앙고 체육관에서 찍을 때, 10년 사이에 새 문을 고쳐 단 것을 다시 예전 문으로 달고 촬영했어요. 물론 끝나고 다시 개·보수를 해드렸죠. 배우들도 느낌이 달랐을 거예요. 진짜 자신의 캐릭터가 연습한 이 코트에서 촬영하고, 그가 걷던 길을 걷고 하니까요. 더 동기부여가 된 것 같더라고요. 상대편 학교 이름도 똑같이 했어요. 다 협조 요청을 했는데, 허락을 못 받은 곳은 이름은 바꿨지만, 유니폼 색은 똑같이 했습니다. (웃음) 실제 선수가 신은 신발도 맞췄어요. 나이키는 10년이 지나면 절판이 되어서 구하기 어렵거든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겨우 찾았는데, 완전히 파손된 신발이었어요. 그 신발을 수선해서 신었어요. 하승진 선수가 영화를 봤거든요. '고증 최고'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저희에겐 그런 것들도 중요했습니다."
Q. 특유의 코믹이 굉장히 타율이 높았다. 소소한 장면과 엇박자 속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장항준 감독의 신들린 예능감에 안재홍이라는 옷을 입었다.
"코미디가 의도가 읽히면 외면받아요. 스태프도 알고, 배우도 아는 상태에서 코미디가 될 수 없거든요. 촬영하기 전에 배우들에게 '애드리브 생각해와'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고 나에게만 이야기해줘'라고 덧붙였어요. 모든 사람이 알고 준비하면, 코미디가 안 나오니까요. '무조건 힘을 빼야 한다, 의도가 있으면 안 된다'라는 것이 오랜 현장 생활에서 크게 느낀 점이었어요. 예를 들어 이준혁 배우가 가는데 선수들이 그를 지나쳐갈 때, 그의 표정. 그건 이준혁 배우밖에 못 하는 거거든요. 제가 선수들에게 몰래 '준혁이 옆으로 가지 마'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준혁 배우에게는 '애들이 애드리브 칠 수도 있으니 편하게 해'라고 언급했고요. 그런 식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Q. 안재홍의 사랑스러움은 염두에 둔 건가.
"약간 그런 느낌이에요. 정봉('응답하라 1988' 속 안재홍이 맡은 캐릭터)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다가, 코치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생각했어요. 제가 워낙 안재홍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좋아해요. 확실히 독보적인 뭔가 있어요. 예를 들면, 조니 뎁은 전 세계에서 그 연기를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잖아요. 안재홍도 그래요. 이 사람 한 명밖에 없어요. 과장되지 않고, 크게 하지 않는데, 호흡이나, 가만히 멈춰있는 찰나에 완성이 되거든요. 강양현 코치의 대사 톤에 제가 많이 투영이 된 것 같아요. 안재홍 배우와 진짜 대화를 많이 하면서 만들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누군가 '강양현이라는 그릇에 장항준이라는 음식을 넣고 안재홍이 그릇째 먹었다'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Q. 마지막 장면의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위 아 영(we are young)'이 흘러나올 때, 여러 생각이 들더라. 젊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등에 대해서 말이다. 담백한 결말이 오히려 관객에게 생각할 틈을 마련해 준 것 같다.
"사실 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실화가 아니면 너무 클리쉐 범벅이고 오버라고 생각했거든요. 실제 이야기가 너무 강렬하고, 기적 같아서 오히려 힘을 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요. 할 수 있는 최대한 담백하게 연출하고 싶었어요. 배우들도 어떤 장면에서 자기감정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관객이 울기 전에 절대 울지 말 것'을 이야기했어요. 실제 상황에서 마지막 경기에 세 선수가 코트 위에 남게 되었을 때, 마지막이라서 열심히 뛰었다고 했거든요. 감상에 취해있을 시간도 없었다고요."
Q. '기억의 밤' 이후 약 6년 만에 선보이는 상업 영화다. 앞선 언론시사회 때 "개봉 앞두고 긴장하지 않는데 이번 작품이 유작이 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라고 긴장한 모습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공개 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감독으로서 고민에 답을 찾아가고 있나.
"'리바운드'에도 나오지만, 어느 날 갑자기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끝이에요.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없이 슬럼프에 빠지면, 감독도 끝이죠.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는 거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끝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지나고 보니 알게 되는 거죠. '아 그때가 끝이었구나'라고요. 저는 60대까지 현장에 있는 게 꿈입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재미있는 건 '영화'가 유일한 것 같아요. 예능도 보는 게 재미있지, 하는 사람들은 전쟁터잖아요. 팟캐스트도 너무 힘들어. 저는 60대에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