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혁의 '비상'
’치얼업‘. 누군가를 응원할 때 쓰는 말이다. 배인혁은 그런 드라마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어야 하는 판타지를 담당했다. '배인혁'이라는 존재감으로 '정우'를 땅에 발붙이게 했고, '응원단'의 가사처럼 날아올랐다.
13일 ’치얼업‘은 꽉 찬 해피엔딩으로 종영했다. 도해이(한지현)를 대신해 칼에 찔렸던 정우(배인혁)는 오랜 수술을 견디고 살아났다. 그런 정우의 곁을 해이가 지켰다. 같은 병실의 아주머니들은 여자친구를 대신해 칼에 찔리고서도 "이번에는 너를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말하는 정우를 보며 혀를 끌끌 찬다. "저 말을 엄마가 들어야 하는데"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뒤돌아 해이의 어깨를 두드린다. "내 아들을 진심으로 아껴주는구나"라고 말이다.
’치얼업‘은 제목처럼 연희대학교 응원단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이제 겨우 점수에 맞춰 가고 싶은 과가 아닌 대학에 들어온 도해이(한지현)는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도해이는 영웅(양동근)의 제안으로 ’아르바이트 비를 받고’ 응원단에 들어온다. 그리고 누군가를 응원하는 희열을 알게 된 도해이는 아르바이트가 아닌, 어쩌면 자신의 삶에서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한다. 바로 응원단원이 되는 것이다. 이를 그에게 스며들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단장 정우(배인혁)였다.
정우 역시, 도해이로 인해 변화한다. 호대 단장과 연애했을 때도 첫사랑 선배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있던 것 같은 정우를 현재로 쑥 끌어당긴 것, CC금지라는 동아리 규칙에서 정우를 이탈하게 한 것도 모두 도해이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끊임없이 해이를 위협하는 미스터리한 존재(진일)에도 굳건하게 삶을 이어간다. "하루하루가 기념일" 같이 행복했던 시간은 현실에서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결국 그 위기를 이겨내는 것은 사랑이다.
배인혁은 정우를 마냥 달달하게 그리지 않는다. 이미 '간 떨어지는 동거', '멀리서 보면 푸른 봄', '왜 오수재인가' 등의 작품에서 그는 캠퍼스에 임하는 캐릭터들을 선보여왔다. 하지만 정우는 독보적이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모든 여자를 홀리는 바람둥이(간 떨어지는 동거)도 아니었고, 가난에 휘청이는 삶이 고되기만 한 청춘(멀리서 보면 푸른 봄)도 아니었다. 그리고 큰 사건에 휘말려 아버지와 대립해야 하는 아들(왜 오수재인가)도 아니었다. 정우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듬뿍 사랑을 주는 어머니 밑에서 성장해왔다. 응원단에 들어왔고, 떠밀리듯 단장 자리를 맡게 됐다. 그가 독보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응원단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만의 결단력으로 무언가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혼자가 아닌, '응원단'과 함께였다.
배인혁은 이를 덤덤하게 이끌고 간다. 굳이 전사로 정우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보다 단원들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 속에서 정우의 모습은 엿보인다. 그리고 도해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기까지, '유레카' 같은 특별한 한 순간이 아닌, 뒷모습을 바라보며 짓게 되는 미소, 실눈 뜨고 바라보는 눈빛, 시선의 끝에 머무는 도해이의 모습 등 소소함으로 이를 채운다. 그렇기에 정우라는 판타지는 현실이 된다.
정우는 "살면서 그리 좋은 것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해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바로 말할 용기를 얻는다.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인정받았고, 그 벅찬 마음을 담아 해이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다. 정우에게 살면서 그리 좋은 것은 응원단 '테이아'였고, 도해이였다.
응원단을 바라보며 선호(김현진)의 엄마는 "쓸데없는 것에 시간 낭비"라고 말한다. 좋은 집안에서 의사라는 수직의 성공 코스에서 '응원단'은 어쩌면 이탈과도 같은 선택이다. 하지만 정우, 해이, 그리고 선호에 이르기까지 그 시간은 빛났고, 이들의 앞으로를 살게 해줄 거다. '치얼업'의 마지막 화에서 3년이 지나고, 사회의 한 부분이 된 응원단원들이 노천에 모여앉아 '높이, 높이, 높이'를 부르며 추억에 젖어 드는 것은 그 순간 뿐만이 아니다. 배인혁, 한지현, 김현진 등이 열연한 '치얼업'이 마지막까지 정말 '꽉 찬 해피엔딩'이었고, 이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동안 '땅에 붙인 판타지'를 가능하게 한 배인혁에게 기대감이 쏠린다. 응원가의 가사처럼 '비상한' 배인혁의 다음이 어떻게 이어질지, 이제 응원의 힘을 받은 시청자들이 기대감을 더해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