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가주석도 관심 표한 봉화군에 ‘베트남 왕족 후손’이 살게 된 이유는?
지난 4일,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이 윤석열 정부의 첫 국빈으로 방한하며 베트남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베트남 국가 주석이 윤 대통령과 만나기에 앞서 봉화군수를 만나 화제가 되었는데, 그 이유가 ‘봉화에 있는 베트남 마을 조성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봉화군이 베트남 왕조 유적지를 민간 교류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목표로 진행하는 베트남 마을 조성 사업의 중심은 베트남 왕조의 후손인 ‘화산 이씨’ 집성촌이다. ‘화산 이씨’는 12세기에 처음 생긴 귀화 성씨로, 시조는 베트남의 첫 왕조인 리(LY) 왕조(1009~1226)의 마지막 왕자인 리롱뜨엉이다.
리롱뜨엉 왕자가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도서출판 민규에서 출간한 ‘지금은 베트남을 읽을 시간’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지금은 베트남을 읽을 시간’은 베트남의 참모습을 이해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배경지식을 골라 교사들이 엮은 문화 안내서다.
책에 따르면 리롱뜨엉 왕자는 1226년 리 왕조가 멸망하자 베트남을 탈출해 고려로 향했다. 황해를 건너 옹진반도로 향하던 왕자는 해적에게 잡힌 고려인을 구출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화산군으로 봉해져 국내에 정착할 수 있었다.
왕자는 고국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고려에서 이용상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이후 자신이 살던 화산에 쳐들어온 몽골군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냈다. 이 공고로 이용상은 관직과 ‘수항문(受降門)’이란 임금의 친필을 하사 받았으며, 말년에 망국단을 세우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한다. 또한, 고려시대 외적의 침입에 맞서 이국땅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이용상의 기개를 이어받은 13대 후손 이장발(1574-1592)은 18세의 어린 나이에 문경새재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숨져 충효당이라는 사당이 세워지기도 했다. 현재 국내의 화산 이씨는 약 1,300명이라고 한다.
봉화군은 충효당 일대에는 베트남 역사공원을, 가까이 있는 창평 저수지 부근에는 숙박과 교육 시설을 갖춘 베트남 마을을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예산 확보가 잘 되지 않아 사업 진척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니 ‘화산 이씨’를 리 왕조의 후손으로 공식 인정하고 예우하고 있는 베트남 국가주석의 방한은 그냥 놓칠 수 없는 기회였을 것이다.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은 베트남 마을 조성사업이 성공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에 협력을 구하겠다고 화답하고, 봉화군-뜨선시 우호 협력 강화 협약서를 체결했다. 이에 봉화군의 베트남 마을이 완공될 날이 머지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