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준익 감독이 선사하는 세이빙 타임 무비 '욘더'
첫 드라마 연출에 SF 장르, OTT까지. 이준익 감독이 '욘더'를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수년간 서랍 속에 묵혀뒀던 그 이야기를 지금, 이 시기에 다시 꺼낸 이준익 감독은 머지않은 미래의 풍경을 상상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행복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지난 25일 이준익 감독과 화상으로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은 안락사가 합법화된 근미래, 아내를 안락사로 떠나보내는 남편 '재현'이 어느 날 죽은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미지의 공간에 초대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2011년 발표된 김장환 작가의 소설 '굿바이, 욘더'가 원작이다. 이준익 감독은 원작을 처음 봤을 때부터 '신선하다'는 이미지를 지울 수 없었다. 2022년 지금 돌아보면, 11년 전 가상 세계를 이야기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일이었다.
그렇게 이준익 감독은 원작의 매력에 빠졌고, 영상화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다시 쓴 각본은 SF 장르에 집중돼 있었다. 울림 있는 메시지가 필요했다. 결국 수년 동안 '욘더'의 영상화를 내려놨고, 다른 작품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펜을 든 이 감독은 지금의 '욘더'를 완성했다.
"원작이 2011년에 나온 수상작인데, 책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신선했다. 이러한 설정을 소재로, 삶과 죽음의 내용을 주제화하는 게 굉장히 좋았다. 결국에는 11년이 지나서야 시리즈화, 영상화가 됐다. 원작자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원작에서 '재현'의 이름은 '김홀'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김홀' 하니까 뭔가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이후는 '삶 이후'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현재'를 앞뒤 바꿔 '재현'으로 정하면 작품의 메시지를 의미있게 전달하는 데 유리하지 않을까 싶었다."
"제가 원작을 봤을 당시에 다른 걸 찍고 있어서, 그거 끝나고 지금으로부터 7~8년 전쯤에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재고, 삼고를 하면서 제가 미숙해서 SF 판타지로만 썼었다. 쓰고 보니 '이거 망하겠다. 큰일 났다' 싶었다. 그 노력을 다 덮고 다시 쓰자 했다. 그동안 다른 영화 찍으면서 '이제는 콤팩트하게 갈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서 (각본을) 다시 썼다. 7년 전에 썼던 시나리오와 지금의 시나리오는 전혀 다르다. 욕심을 덜고 본질에 충실한 것이, 가장 작은 것 안에서 가장 깊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욘더'는 남자 주인공 '재현'의 시점으로 흘러간다. 아내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남편, 아내가 떠난 후 혼자의 삶을 사는 외로움, 시청자는 그 모든 감정의 결을 '재현'을 통해 느낀다. 이준익 감독은 세 단계에 걸친 '재현'의 이야기로 시청자의 마음에 메시지를 새겼다.
"작품은 주인공 재현이 스테이지를 건너가는 이야기다. 첫 스테이지는 리얼리티, 현실이다. 새로운 다음 공간이자 버추얼 리얼리티가 바이앤바이다. 그다음 마지막으로 '욘더'라는 스테이지로 가게 된다. 욘더는 일종의 메타버스다. 가상 현실을 너머 가상 세계인 거다. 가상 세계 안에서도 분명 다음 스테이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가상 세계가 인류가 꿈꾸는 세상의 종점이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욘더'는 국내 OTT 티빙에서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됐다. 1회당 분량이 30분 내외인 6부작 미드폼 드라마였다. 첫 드라마 현장이었으나 영화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고 말한 이준익 감독. 그는 가장 중점을 둔 포인트로 리얼리티를 강조했다.
"저는 영화만 14개 찍은 사람이다. 이번 작품에 제 열다섯 번째 작품인데 OTT로 보여드리게 됐다. 플랫폼은 달라졌지만 함께하는 스태프들은 전부 저와 영화를 찍던 사람들이다. 인풋은 같고 아웃풋만 달랐던 거다. 저한테 현장은 별로 차이가 없었다."
"보통 버추얼 리얼리티나 메타버스 같은 경우는 디지털화되어 있지 않나. 우리 작품은 리얼리티가 그대로 복제돼 있는 식이었다. 이걸 관객들이 동의해 줄까 싶었다. 보는 분들이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현실 공간을 그대로 옮겼다. 이런 착상과 발상으로 현실 세계와 메타버스와의 이질감을 없애고 밀도 있게, 깊게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게 어색했으면 악플이 달렸을 텐데 다행히 그러지 않아주시더라."
이준익 감독은 '욘더'에서 명품 배우들과 함께했다. 두말하면 입 아픈 연기력의 소유자 신하균, 한지민이다. 이 감독은 두 사람의 캐스팅에 공을 들였다며 캐스팅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캐스팅에서 공을 많이 들이는 건 아무래도 주인공이지 않겠나. 당연히 신하균 씨에게 공을 많이 들였다. 그게 감독으로서 정직한 태도 같다. 단 한 신도 재현이 나오지 않는 신이 없다는 걸 전제로 연출했다. 비록 화면에는 안 보이더라도 재현의 존재가 느껴져야 했다. 이 이야기가 가진 생경함을 (보는 분들이)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 하려면 한 사람의 관점으로 들어가야 했다. 배우와도 깊은 이야기를 하고 선택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이 주체라면 항상 그 대상이 존재한다. 그 대상이 한지민 씨 역할이다. 극 중 재현이 '욘더'로 가게 되는데 처음에 왜 왔는지 설명을 안 해준다. 그 설명을 위해 한지민을 주체화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한지민에게 설명도 엄청 하고 정성을 엄청 들였다."
두 사람의 연기 호흡에 대해서는 부부가 아닌 오누이 같았다며 '아빠 미소'를 지은 이준익 감독이다.
"극 중에서는 둘이 부부 역할이지 않나. 그런데 현장에서는 오누이 같다. 맨날 서로 장난치곤 했다. 어떤 운명적인 케미에서 나오는 연기가 아닐까 싶었다. 촬영장 밖에서의 둘의 모습은 그냥 오빠와 동생이니까, 극 안으로 들어가면 독립된 존재로서 빛난다. 누가 누구에게 종속된 연기가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연출하거나 디렉팅한 게 아니고 자기들이 그렇게 연기했다."
영화인으로 산 세월만 수십 년이다. 이준익 감독은 '킬링 타임 무비'가 아닌 '세이빙 타임 무비'를 세상에 내놓고 싶다고 강조했다.
"'좋은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영화를 다 본 후에 관객들이 생각하게 되는 작품, 그게 좋은 이야기 같다. 저는 우리 작품이 보는 분들께 그런 영화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