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현진, '카시오페아' 촬영 중 "내 딸 얼굴이 없다"라는 말 들은 이유
배우 서현진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연이어 사랑스러운 캐릭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놀란다. '또 오해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그에게는 진정한 선생님이 되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기간제 교사('블랙독')였던 때도 있었다. '또' 로맨스가 아닌, '배우 서현진'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그런 그가 영화 '카시오페아'를 통해 전혀 다른 결을 보여준다.
영화 '카시오페아'는 딸 지나(주예림)를 미국 유학 보낸 뒤,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진(서현진)과 그를 돌보게 되는 아빠 인우(안성기)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알츠하이머라는 병명부터 무겁다. 서현진은 약 3년 동안 알츠하이머로 투병하시다 세상을 떠나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대본을 보면서 많이도 울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해 생각했다. 연기에 대한 갈증이나 도전이라는 단어보다,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민낯의 서현진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Q. '카시오페아'는 배우로서 큰 도전이었을 것 같다.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
"2년 전에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가족 중에 알츠하이머를 겪은 분이 계셔서 굉장히 공감하고 많이 울면서 읽었어요. 그래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고요. 갈증이라기보다, 영화를 한다면 드라마에서 할 수 없는 장르나 깊이 보여줄 수 있는 대본으로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카시오페아' 대본을 받았고, 알츠하이머 소재를 드라마보다 더 깊게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게 됐습니다."
Q. 영화 촬영이 보통 시나리오 순서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데, 알츠하이머 증세가 심해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어떻게 준비했나.
"병세를 나타내는데 하나라도 '어?'하고 관객이 의구심이 들면, 영화의 흐름이 깨질까 봐 어려웠어요. 신연식 감독님과 장면별로 기억이 어느 정도 있는 상태이고, 기억이 돌아왔다가 아웃되는 등 수진이가 변화하는 폭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걸 중심으로 앞·뒤 장면을 봐가면서 촬영했고요. 병세가 많이 진행됐을 때는 정말 그냥 화장을 안 하고 민낯으로 임했어요. 그게 굉장히 효과적으로 보였던 것 같아요."
Q. 악화되는 알츠하이머 증세를 표현할 때 고충은 없었나.
"사실 '초로기 치매'는 아니셨지만, 외할머니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어요. 그래서 '이것이 '초로기 치매'에 맞는 몸짓일까'라는 우려는 있었어요. 병세가 짙어질수록 구부정하고 몸을 못 가누는 상태로 촬영했거든요. 수진이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을 때는 꼿꼿한 자세이다가, 병세가 짙어지며 몸의 좌우, 앞뒤 균형이 모두 무너진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저희 외할머니가 알츠하이머병을 3년 정도 앓다 돌아가셨거든요. 본인의 10세 정도의 기억만 남으셨어요. 그런데 그러다가도 '누구?'라고 물어보면 '짠순이, 구두쇠'라고 갑자기 기억하실 때도 있으세요. 그래서 수진이는 자기 기억으로 매몰되는 병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빠가 수진이를 목욕시켜주는 장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할머니 목욕시킬 때 어땠어?'라고 물어봤더니, 엄마는 '(외할머니께선) 수영하는 줄 알더라'라고 하셨어요. 그러면 저도 '수진이가 물놀이하는 줄 알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욕조에서 물장구친 기억이 납니다."
Q. 드라마보다 더 깊게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선택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새롭게 느낀 부분이 있었나.
"다 새로웠던 것 같아요. 사실 드라마는 어떤 각도의 제한도 있고요. 요즘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영화는 제가 원하는 동선을 물어보시고 그것에 맞게 세팅을 해주셔서 표현의 폭이 편했어요. 사실 드라마와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다른지 궁금하기도 했거든요. 소변 실수를 하는 장면, 아빠에게 소리치는 장면, 자해하는 장면 등은 드라마라면 그렇게 보일 수 없었을 텐데, 제가 표현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카시오페아'의 수진을 연기하며, '서현진'의 일상에 고마움을 느낀 순간이 있을 것 같다.
"일상의 고마움을 촬영하는 동안에는 느끼지는 못했어요. 수진이랑 꽤나 붙어있어서 그때 서현진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평소에도 많이 울었고요. 촬영 중에 추석 시즌이 있어서 부모님 뵈러 갔었는데요. 부모님께서 '내 딸 얼굴이 없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역할에 많이 붙어있나보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카시오페아'를 찍으면서 느낀 것은 '이렇게까지 몰입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있구나'였어요. 그래서 '앞으로 연기를 해나가면서 캐릭터와 나를 밀착시키고 표현하는데, 두려움 없이, 더 과감하게, 더 많이 가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 작품인 것 같아요."
Q. 부모님께서 '내 딸 얼굴이 없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수진에 몰입해있었다. 촬영을 마친 후에도 힘들지는 않았나.
"'왜 오수재인가'로 넘어가는 타이밍이 짧았어요. '카시오페아' 크랭크업하고 3일 후가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 대본 리딩이었거든요. 억지로라도 빠져나와야 했어요. 다만, (주)예림이랑 '카시오페아'에서 불렀던 리코더 합주를 한 한달 동안 집에서 매일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좋았나 봐요. (주)예림이가 먼저 리코더로 멜로디를 녹음해 준 파일이 있거든요. 그걸 틀어놓고 불었어요. 보통 드라마를 찍을 때도 '서현진'의 일상이 없어지는 편이기는 한데요. 수진이를 연기할 때는 돌아오려는 노력조차 안한 것 같아요. 되지도 않았고요. 다행히 작은 영화라 촬영 기간이 짧아서, 수진이로 있어도 제가 너무 많이 가지 않을 때쯤 끝난 것 같아요. 신연식 감독님께서도 '이런 영화는 길게 찍으면 안 돼'라며 '더 갔으면 힘들었을 거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Q. '카시오페아'에서 배우 안성기의 딸이 됐다. 캐스팅을 들었을 때 어땠나.
"제가 언제 안성기 선생님과 연기를 해보겠어요. 아버지가 안성기 선생님이면, '와 정말 꿀!'이라고 생각했어요. 안성기 선생님께 촬영하면서 배운 건 '와 저렇게 많이 아시고, 오래 연기를 하셔도 말씀이 없으시다'라는 점이었어요. 저만해도 이미 촬영 현장이 빠삭하게 보이는데, 선생님 눈에는 얼마나 더 잘 보이겠어요. 그래도 감독님 디렉팅에 전적으로 맡기시고, 촬영 현장에서 본인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 모습이 놀라웠고요. 영화를 보고 나서는 선생님께서 저를 봐주시는 눈이 정말 세월에서만 나오는 눈이라고 느꼈어요. 그 눈이 인상 깊었어요."
Q. 만약 '카시오페아' 속 수진의 상황이라면,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을까.
"부모님께서 약간 섭섭해하실 수도 있지만, 반려견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고요.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제가 중·고등학교 때 한국 무용을 했어요. 반복해서 동작을 몸에 익히잖아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물아일체라고 해야하나요. 아무것도 안 들리고 땀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때가 있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수련회 때 딱 한 번이요. 연기할 때도 모든 작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작품에 한 컷 정도는 그럴 때가 있어요. 뭘 연기했는지 기억조차 안 날 때가 있어요. 그런 순간이 너무 좋아서요.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요."
Q. '카시오페아'를 보면서 눈앞이 깜깜해질 때 길을 밝혀줄 수 있는 존재가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서현진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
"너무 만감이 교차하는 질문이라서요. 저에게 가족은 고맙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요. 사실 저라는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게 하는 건 부모잖아요. 3살 때까지의 교육으로 80세를 산다고 하니까요. 고맙지만, 밉고, 그래도 또 효도하고 싶고, 그러면서도 내가 한 효도를 기억 못 해주면 '치사하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존재입니다."
Q. 완성된 작품을 가족 중 한 사람과 본다면 누구와 보고 싶나.
"아빠가 시사회 날 못 오셨어요. 부모님께서 지방에 계시는데, 아빠가 몸이 안 좋아서 엄마만 올라오셨거든요. 최근에 아빠가 동생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대요. '나는 집에서 왕따같아. 다들 엄마랑만 친해'라고요. 제 또래의 자식을 둔 다수의 아버님이 그런 느낌을 받으실 거로 생각해요. 보통 육아를 엄마만 하던 시대였으니까요. 아빠가 말씀이 많으셔서 저희가 '그만'이라고 끊어야 그만하시거든요. 저는 미처 못 해봤는데, 동생이 그렇게 혼잣말처럼 계속 이야기하는 아빠를 뒤에서 안아드렸대요. 그랬더니 한참 말씀을 못하시더라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저도 참 많이 울었거든요. '아빠가 외로워서 저렇게 혼잣말을 많이 하시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눈물) 아빠랑 보고 싶어요."
Q. '카시오페아'는 6월 1일 개봉해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고,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는 SBS에서 6월 3일 첫 방송될 예정이다. 극장과 TV에서 동시에 대중과 만나게 된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사실 개봉 시기가 드라마 오픈 시기랑 겹칠 줄 몰랐어요. 이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 모르겠지만요. 여러 매체를 통해 시청자, 관객분들과 만나게 돼 너무 좋고요. 영화로는 제가 제대로 롤을 맡아서 보여드리는 건 처음인 것 같아서 떨리기도 하고 반응도 궁금한 상태입니다."
Q. '카시오페아'의 차별점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이 있을까.
"다른 작품과 '카시오페아'가 차별화된 지점은 보고 나서 알았어요. 이건 '알츠하이머' 환자를 다룬 이야기지만, 그것은 베이스에 불과하고요. 가족과의 유대를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수진이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고요. 촬영하면서는 '아빠와 딸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는 '3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시는 분들도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