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리을·하울·앵무새…지창욱의 마술을 믿습니까?
배우 지창욱은 넷플릭스 시리즈 '안나라수마나라'에서 미스터리한 마법사 리을 역을 맡았다. 리을에 대해 이런 소문이 있다.
"동네 언덕에 있는 작은 유원지에 진짜 잘생긴 마술사가 산대. 그 마술사가 진짜 마술을 하는데, 절단 마술을 할 때는 정말 사람을 자르고, 사람이 사라지는 마술을 하면 그 사람이 실종된다. 그리고 마술을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상대방 눈을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묻는다는거야. 당신, 마술을 믿습니까?"
리을은 "당신은 마술을 믿습니까?"라고 질문을 하고 쇼를 펼쳐 보인다. 그 쇼는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고, 때로는 신나고, 때로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마술과 노래, 미소와 눈물, 다양한 감정이 오가는 '안나라수마나라'는 지창욱으로 인해 둥 떠 있는 '마술'이 아닌 마음에 발붙인 '마술'이 되었다. 지창욱은 '미스터리하게, 신비롭게' 연기하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대신 솔직함을 택했다. 판타지 장르의 캐릭터에 '솔직함'이라니 아이러니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매 장면 솔직하게 임한 지창욱은 리을의 살아있는 팔과 다리, 얼굴과 표정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이제는 리을이 아닌, 지창욱에게 물어볼 차례인지도 모른다. "당신, 마술을 믿습니까?"라고 말이다.
Q. 하일권 작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웹툰이 아닌 '지창욱'만의 리을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나.
"사실 그림으로 그려진 원작이 있어서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고요. 하일권 작가님 웹툰 자체가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 중 하나잖아요. 많은 분이 감명 깊게 보신 웹툰이라 부담이 된 건 사실이지만, 이 작품에서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 같아요. 저만의 리을을 만들기 위해 감독님도, 작가님도 얘기를 많이 해주신 것 같아요. 헤어스타일, 의상 등 비주얼적인 부분부터 톤&매너까지 많은 부분을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웹툰에서처럼 짧은 은발 머리를 해서 판타지한 느낌을 더할까라는 의견도 있었는데요. 결국 장발에 검은 머리가 신비롭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나와서 그렇게 결정했어요. 캐릭터적인 부분도 솔직하고 순수한 리을을 표현하기 위해 매 장면 솔직하게 연기하려고 했고요. 그때그때 느껴지는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Q. 신비로운 모습의 '리을'을 연기하며 솔직하게 연기하려고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리을을 연기하면서 가장 경계한 지점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
"리을이 신비롭고 미스테리하기 때문에 신비로움과 미스터리함을 '연기'하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신비함과 미스터리함은 보는 사람이 느끼는 거지, 그걸 내가 애써 '만들지' 말자'라고요. 리을의 행동에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자기만의 입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건 즐거워, 나에게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너무 싫어' 등을 생각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지, 신비로움에 집중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만약 신비로움에 집중하다 보면, 더 작위적이고 이상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Q.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같은 느낌이라는 평도 있었다.
"김성윤 감독님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캐릭터를 만들어가다가 언젠가 한 번 하울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때 속으로 정말 그랬어요. '내가 하울을 어떻게 연기해'라고 투덜거린 것 같아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봤지만, 하울을 따라 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따라가려고 해서 따라갈 수 있는 캐릭터도 아니었고요. 다만 하울이라는 인물과 어느 정도 비슷한 성향을 가진 친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아이 같은 면, 다채롭고 미스터리한 면이 비슷할 수 있겠다고요."
Q. 앞서 지창욱과 '이태원 클라쓰'를 연출한 김성윤 감독과의 만남으로 기대감이 높아졌다. 실제로 감독님과의 호흡은 어땠나.
"감독님에 대해 누군가 물어보면 그런 얘기를 해요. 정말 지독한 사람이라고요. 감독님은 다 눈으로 확인하셔야 하고, 본인이 원하는 컷, 그림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배우와 스태프에게 말씀하세요. '연출은 집요함이 있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감독님을 보며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께 더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한 건 아닐까라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있고요. 그런 집요함에도 감독님의 가장 큰 매력은 모두를 친구로 대해주세요. 권위 의식이 전혀 없이 막내 스태프까지 대해주세요. 그런 기운 덕분에 모두 친구처럼 즐겁게 촬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에겐 너무나도 좋은 선장님이셨습니다."
Q. 엔딩크레딧에 보니 미녀 역에 달래, 금동이가 적혀 있더라. 두 앵무새와의 호흡은 어땠나.
"달래, 금동이가 비슷하게 생겼어요. 앵무새 컨디션 때문에 두 앵무새를 번갈아 가며 촬영한 것 같아요. 앵무새들과 친해지기 위해 애를 쓴 것 같고요. 호흡이랄 건 없어요. '나라는 사람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먹이 주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이 되도록 조심스레 다가간 것 같아요. 앵무새들이 고집도 있고 장난을 좋아해요. 그래서 머리 위에 올라가는 경우도 있어요. 예민할 때 손을 물기도 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아프더라고요. 살살 물렸는데도 너무 아파서 다음부터는 손 뻗기가 무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Q. '안나라수마나라'에서 '리을'이 아닌 다른 욕심 나는 캐릭터가 있었나.
"이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사실 리을의 고등학생 모습을 배우 남다름 씨가 연기해주셨는데요. 그걸 원래 제가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욕심이 났나 봐요. 리을을 연기하니 이 감정을 잘 알아서 '내가 하면 재미있겠다'라고 생각했고, 감독님께서도 '네가 할 수 있을까?'라고 물어봐 주셔서 '제가 해볼까요?'하며 대본 리딩 때 어린 리을 역도 제가 읽었거든요. 남다름 씨를 캐스팅하셨더라고요.(웃음) 아무래도 어린 역할을 제가 연기하는 건 이제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감정 표현은 되는데, 어린 그 모습은 안 되니까요. 저도 대본을 읽으면서 '하면 안 되겠다'라고 느꼈어요. 그리고 남다름 씨가 잘 해주셔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만약에 한다면 일등, 아이 말고 리을의 어린 시절 모습을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20대 후반만 됐어도 욕심을 냈을텐데라는 생각입니다."
Q. 배우 최성은, 황인엽과의 호흡도 궁금하다. 뮤지컬 경험이 있는 선배로서 조언한 부분이 있었나.
"제가 모든 팀원에게 굉장히 많이 의지하는 편인데요. 이번 작품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조언보다는 고민이 있으면, 그 고민을 같이 이야기하고 대화한 기억이 있습니다. 무대 뒤 현장은 일단 즐거웠어요. 김성윤 감독님의 기분 좋게 해주는 매력이 있고요. (최)성은이에게는 사실 너무 고마워요. 현장의 중심을 지켜주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고요. 정말 최고의 파트너였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황)인엽이는 항상 웃으면서 겸손한 자세로 현장에 오는 마음가짐이 너무 멋있었어요. 인엽이는 충분히 좋은 배우, 멋진 배우라고 생각해요. 본인 스스로 더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훨씬 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도 되는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새롭고 멋진 모습을 보여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Q. 커튼콜 장면에 대한 호평이 많다. 해당 장면을 찍으면서는 어떤 느낌이었나.
"배우, 스태프, 그리고 시리즈를 보시는 시청자분들에게 모두 선물 같은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 입장에서 커튼콜은 캐릭터가 아닌 '나'를 보여주는 무대이고, 수고했다고 박수를 받는 자리거든요. 촬영할 때, 객석에 스태프들이 앉아계셨고요. 그분들께 저희도 손뼉을 쳐주었고요. 존중의 의미가 있고, 선물 같은 장면 같았어요. 보시는 분들에게는 여러 캐릭터의 배우들이 본연의 모습으로 해소를 해주는 깜짝 선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너무 설레고 즐거웠어요. 모든 배우가 한 공간에 모이는 건 기적 같은 일인데, 모두 다 시간을 내주셔서 한 자리에 서 있는데 그 자체가 벅차더라고요. 너무 즐거웠던 기억, 경험하기 힘든 기억 같습니다."
Q. '리을' 역을 연기하며 또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던 대사나 장면이 있었나.
"아이(최성은)가 마지막에 '아저씨, 마술을 믿으세요'라고 했을 때,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 것 같아요. 리을이 계속 물어보잖아요. '마술을 믿습니까'라고요. 이건 또 다른 말로는 '당신들 마술을 좀 믿어주시는 건 어떨까요'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마술이 작품 안에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동심, 어릴 때 꿨던 허무맹랑한 꿈 같은 걸 상징하는 매개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요. 그 대사를 아이의 입으로 들으니 마음이 뭉클해지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Q. 앞선 인터뷰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힘든 때도 있었다고 어린 시절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안나라수마나라'의 의미에 몰입하게 되었을 것 같다.
"'안나라수마나라'라는 작품에서 나오는 아이(최성은)와 일등이(황인엽)의 모습, 그 안에서 다뤄지는 메시지들이 사실 제 모습이라고 생각했고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리을이처럼 그들을 응원하고 싶었던 마음이 사실이고요. 어릴 때 많은 것들을 꿈꿨지만, 살아가면서 그런게 불가능한 거라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상처받기도 했고요. 다들 그렇게 살아가겠죠. '안나라수마나라'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의 막연한 동심을 좀 느꼈던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제 어린 시절을 지금 돌아보면 '참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Q. 그런 의미에서 '마술을 믿습니까?'
"반반인 것 같아요. 마술을 믿는다는 것이 그 현상을 믿는다기보다 마술이 가져다주는 즐거움, 환상, 그리고 경쾌한 충격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으면 '마술을 믿는다'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도 마술을 보고 '저거 속임수 아니야? 어디 숨겨놨지?'라는 생각부터 할 때가 있더라고요. 안타깝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마술을 보는 것이 여전히 신기하고 재미있으니, 어느 정도 마술을 믿는다고 생각해요. 마술처럼 이뤄지길 바라는 건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면서 서로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진심이나 마음을 더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안나라수마나라'를 통해 스스로 '멋진 어른'에 대한 답을 내렸나.
"그건 정말 답이 없는 것 같아요. 멋진 어른은 뭘까, 훌륭한 사람은 누굴까, 좋은 배우란 뭘까. 저도 고민하거든요. 그 생각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안나라수마나라'를 하면서는 '같이 고민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해결하는 방식도 다르잖아요. 어린 친구들에게 막연하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아닌, 그 친구들의 어려움을 같이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멋진 어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