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유 "20년째 무탈하게 한 우물 판 저에게…약간의 칭찬을"
2001년 KBS2드라마 '학교4'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20년째 배우의 길을 가고 있다. 그 길 위에서 때로는 "네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해"라고 외치며 수 많은 여심을 사로잡았고(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때로는 고통받는 아이들의 진실을 연기로 담아냈고(영화 '도가니'),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라는 시도(영화 '부산행')를 해보기도 했다. 매번 달랐고, 매번 '공유'만의 색으로 캐릭터를 소화한 그가 영화 '서복'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당신, 사는 건 좋았어요?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요?'
배우 공유는 영화 '서복'에서 시한부 삶을 사는 전직 요원 기헌 역을 맡았다. 기헌은 죽음을 앞두고 삶이 절실한 상황에서 줄기세포 복제 등을 통해 만들어진 불사의 실험체 서복(박보검)을 이동시켜야 하는 제안을 수락한다. 그 속에는 서복을 통해 자신의 생명줄도 이어가려는 욕망도 자리한다.
공유는 처음 '서복'의 제안을 받았을 때 거절했다. 하지만 재차 연락해 온 이용주 감독과 미팅을 가진 후, 합류를 결정했다. "감독님이 오랜 시간 동안 '서복'을 쓰면서 어떤 고민을 하셨고, 어떤 방향성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말씀이 있었어요. 만약에 제가 영화를 해석한 방향과 달랐다면, 못하겠다고 했을 텐데, 제 해석과 감독님의 해석이 거의 일치하더라고요. '아,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작품인가보다' 생각하게 됐습니다."
'서복'의 첫 촬영이 2019년 5월이었으니, 약 2년 만에 완성본을 마주하게 됐다. "시나리오를 보고 결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예상했고, 감독님과의 대화 속에서 가늠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장면도, 생각보다 재미없는 부분도 있었다. 이 속에는 공유가 기대하는 장면도 있었다.
"사실 시사회하고 난 후에 관객들이 별로 안 웃으셔서 주눅 든 장면이 있었어요. 제 애드리브였는데요.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냐'고 중얼거리는 장면이었거든요. 그 시퀀스 중간 부분이 편집되기도 했어요. 임세은 박사(장영남)가 '사람들 참 겁 많죠? 욕심도 많고'하고 나서는데, 제가 그 말을 하잖아요. 현장에서는 정말 재밌었거든요. 박장대소하고. 애드리브 하나 건졌다고 뿌듯해했는데, 시사회 때 안 웃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좀 아쉬웠어요."(웃음)
공유가 생각한 '기헌'은 완성된 '서복'에서 나타난 모습보다 훨씬 더 다크한 모습이었다. 시한부 삶의 절박함을 보여주기 위해 첫 장면, 변기를 잡고 구토를 하는 모습에 몰입한 탓에 목과 등 전체에 담이 걸려 약 일주일 동안 고생을 하기도 했다. 더 살도 빼고, 더 피폐하게 보이고 싶었다.
"감독님 생각은 다르셨어요. 마냥 어둡고, 마냥 말이 없고, 마냥 아웃사이더적인 캐릭터는 재미없다고 생각하셨어요. 저는 지금 탄생한 기헌보다 훨씬 어둡고, 말수도 없고, 타인을 대하는 자세가 훨씬 더 무례한 사람일 거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었어요.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본 후에 뭐가 더 낫고, 뭐가 더 아니고, 이런 판단은 들지 않았어요. 그건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복'은 공유에게도 독특한 작품이었다. 이용주 감독은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고민하다, 시한부의 삶과 영원한 삶을 떠올리게 됐고 '서복'이 탄생했다. 그래서 주인공의 대사보다는 기헌의 말이어야 했고, 액션 장면도 촬영분보다 오히려 덜어냈다.
"배우가 대사의 도움을 받을 때도 분명히 있거든요. 힘을 다 빼고 뭔가를 하지 않아도 대사로만 힘을 받을 때 가요. '도깨비' 때 작가님의 대사로 인해 채워지고 그런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용주 감독님께서는 주인공 대사 같은 것을 너무 싫어하셔서 현장에서 수정하셨어요. 때로는 그게 라이브 해서 좋지만, 대사의 도움을 너무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공유는 '소년미'의 대명사로 꼽히던 배우였다. 그런데 '서복'에서는 박보검과 나란히 하며 '어른과 소년'의 콘트라스트를 부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도 기헌과 서복의 콘트라스트 설정이 재미있어서 '서복'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서복은 복제인간이고, 특별한 능력을 갖췄지만, 10살인 아이잖아요. 빠르게 자라서 외형은 10살이 아니만요. 기헌은 서복을 설명하는 과학자들의 말을 '믿거나 말거나'처럼 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같이 경험하면서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을 목도하게 되고 실감하게 되었지만요."
"결국 기헌은 서복을 아이처럼 본 것 같아요. 내가 보호해야 할 존재. 현장에서도 그랬던 것 같아요. 서복과의 대화 속에서 연민이 생기게 됐고요. 덧붙이자면, 관객들은 서복을 조금 신격화된 존재로 봐줬으면 생각했어요. 특별한 능력을 갖춘 신이 죽음을 가진 유약한 인간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거죠."
박보검과의 호흡은 더할 나위 없었다. 박보검은 현장에서도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고, 고민했으며, 겸손했다. "함께 홍보활동을 했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라는 공유의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지점이다.
"'박보검 씨는 워낙 인성이 바른 친구'라는 생각을 역시나 했고요. 작업 전에도 예상했지만, 작업하면서 더더욱 그렇게 느낀 것 같아요. 본인이 불편하거나, 힘든 내색을 안 하는 친구더라고요. 선배 입장에서 그런 모습이 느껴질 때는 있었지만, 늘 묵묵하게 알아서 자기 컨트롤하면서 집중력 있게 현장에 임하더라고요. 흠잡을 데가 없었고, 너무 예쁘고 착한 후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1월 방송된 tvN '유퀴즈 온더 블럭'에서 공유는 한 편의 시를 이야기했다. 에린 핸슨의 '아닌 것'이라는 시다. '서복'이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공유는 주변 지인들에게 이 시를 소개했다. 시의 일부분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몸무게와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당신은 당신의 웃음 속 사랑스러움이고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이다…' 이 시를 소개했던 공유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제가 아직 인생을 다 산 게 아니라 딱 한 마디로 저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저 스스로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하는 편이고요. 그 고민이 영혼을 갉아먹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 것 같고요. 잘 모르겠어요.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오히려 듣고 싶네요."
"올해 20년째 연기를 하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크게 변하지 않고 나름 한결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하거든요. 그래도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우물을 무탈하게 잘 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칭찬을 해주고 싶어요. 이게 대답이 될 수 있겠네요. 저는 저 같은 아들을 갖고 싶지는 않아요. 저 스스로가 별로예요."(웃음)
'서복'에서 기헌은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실험체로만 존재했던 서복은 누구에게 무언가가 되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다. 과연 배우 공유에게 어떤 욕망이 있을까.
"배우 덴젤 워싱턴이 시상식에서 특별공로상을 받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편협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합니다. 멋진 사람들은 그날의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위대한 사람들은 아이디어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이 멋있어서요. 욕망은 아니지만 제가 꿈꾸는 세상이에요. 저는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덴젤 워싱턴의 말처럼 적어도 편협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거든요. 그리고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 겁니다. 이게 제 욕망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