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설경구 "아팠던 '소원', 힐링한 '자산어보'"
짧게 스치기만해도 아픈 영화가 있다. 그렇기에 잊히지 않고 현실의 아픔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과 배우 설경구가 만든 영화 '소원'은 그런 작품 중 하나다. 그런데, 두 사람이 영화 '자산어보'에서 함께했다. 자연이 품은 곳에서 촬영한 작품이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남긴 책이다. 그곳에는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과 함께 나눈 바다 생물에 대한 지식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그게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된 것은 1801년 벌어진 신유박해 때문이다. 신유박해는 천주교(서학)을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한 사건이다.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설경구)의 저서를 중심으로 그곳에서 만난 창대(변요한)와 가거댁(이정은) 등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배우 설경구는 '자산어보'를 통해 데뷔 28년 만에 사극을 하게 됐다. "조금 있다가, 조금 있다가"하고 미룬 것이 이렇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자산어보'를 하고나니, 지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퓨전 사극이라는 말은 부담스럽고, 시대에 맞는 천이나 그 은은하고 고운 색감을 담은 느낌의 작품을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라고 앞으로의 사극 출연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설경구는 정약전의 옷을 입었다. "주자는 힘이 참 세구나"라는 말을 과거에 들었고, 이후에 창대에게 같은 말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시대가 품고 있기에 커다란 어른이었다. 문장으로 설명하게 되면 장황해지는 인물은 설경구가 옷을 입으며 가벼워졌다. 그냥 눈으로 보면, 이론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인물을 그려냈다.
"정약전은 위험한 인물이죠. 조정대신들이 유배지를 바꾸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약전을 더 멀리 보내야한다'고 하잖아요. 저도 섬에가서 놀았다고 말씀은 드렸는데, 사실 머리가 액세서리는 아니니까요. 정약전은 아우 정약용에 비해 집필한 책도 많지 않아요. 수직적인 시대에 수평적인 생각을 가진 분, 그만큼 깨어있었다고 생각합내다."
"저는 연기를 안한 것처럼 하는 것을 목표로 해요. 그런데 잘 안되어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러는데요. 섬과 현장에서 받는 편안함이 저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해요. 더 많은 고민들은 오히려 연기를 하는데 잡념을 생기게 하고는 하지만, 촬영장 안팎의 모습이 편안해서 그렇게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준익 감독과는 두 번째 만남이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소원'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소원(이레)이 당한 믿을 수 없는 사고를 담은 가슴 아픈 작품이 두 사람의 시작이었다.
"'소원' 때 감정이 많이 힘들었죠. 제가 그때 감정을 계속 물고 있으면서 힘들게, 힘들게, 한 장면, 한 장면 찍어나갔거든요. 그런데 이준익 감독님 모습이 얄미운 거예요. 감독님은 이레를 돌보고 계셨어요. 어린 나이니까, 혹시라도 연기하면서 내상을 입을까 이레의 감정을 챙기셨어요.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감정을 물고 있는 건 당신 하나면 돼. 다 그러면 어떻게 앞으로 가겠어'라고요. 아픈 작품을 찍으면서도 감독님께서는 균형을 맞추느라 노력하셨어요. 반면 '자산어보'는 촬영할 땐 열심히, 쉬는 날은 유유자적 자연을 즐기며 찍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 배우들, 스태프 모두 섬에서 실링했어요. 평안한 마음이었어요."
눈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바다가 주는 생명은 그 자체로 힘이 있었다. 그 속에서 스태프들은 짱뚱어가 한 번이라도 볼을 부풀려 주기를 한마음으로 응원했고, 그 장면을 담아낸 후에 모두 함께 환호했다. 비와 태풍으로 마음 졸이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높은 파도를 스크린에 담을 수도 있었다. 우정출연으로 잠시 머문 배우 류승룡, 최원영도 "행복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준익 감독님과 작업은 즐거워요. 사람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 사람의 장점을 포장해서 말씀을 잘 해주세요. 사실 배우의 가장 큰 무기는 연기력이 아닌 자신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시는거죠. 류승룡 배우가 문경에서 촬영할 때, 스케쥴 때문에 밤에 와서 밤새 촬영하고 잠깐 자고 가고, 낮에는 다른 작품 촬영하고 밤에 '자산어보' 촬영하고 간 적도 있거든요. 힘들잖아요. 그런데 '이준익 감독님 현장은 행복해'라고 하더라고요. 최원영 배우도 '이렇게 행복한 현장은 처음'이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감독님과 함께하고 싶은 이유가 그게 아닐까 싶어요."
설경구는 영화 '불한당: 나쁜놈들의 세상'을 통해 두터운 팬층을 얻게 됐다.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 그는 "너무 감사하고 좋죠"라고 애칭에 대해 이야기한다. 설경구에게 팬은 "긴장 시키는 부분도 있고, 좋은 에너지를 주고 받는" 사이다.
설경구의 사극이 처음이듯, 아직 그에게 보고 싶은 모습은 많다. 정약전과 닮은 지점은 없다고 자신을 낮추며 그는 "현재에 순응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했다. 하지만, '연기를 안한것 처럼 보이는' 것을 여전히 극찬으로 여기는 배우의 앞으로의 길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