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시은, 염혜란은 왜 '빛과철'은 그의 영화라고 했을까
'빛과 철'은 빛과 빛이 만난 순간, 철과 철이 부딪힌 순간으로 시작된 강렬한 작품이다. 그리고 극을 두 명의 여성이 이끌어간다. 2년전 교통사고, 이로 인해 남편의 죽음을 마주한 희주(김시은)와 의식불명이 된 남편을 간호하며 살아가게 된 영남(염혜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배우 김시은은 '빛과 철'에서 희주 역을 맡았다. 남편이 피의자라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그날의 사건을 마무리한 인물이다. 피해 가족에게 사죄를 해야할까를 망설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2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사건의 진실에 대한 실마리를 듣고, 마음을 돌려 사건의 진실에 파헤치려 한다. 그런 희주 역을 맡은 김시은은 죄책감부터 분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감정을 표현해야했다.
"남겨진 가족으로서의 죄책감을 가진 인물이지만, 더 들어가보면 '남편의 사고 원인도 나에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하면서 희주에 접근했던 것 같아요. 희주가 스스로 이렇게까지 죄의식에 짓눌려 사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배종대 감독은 김시은에 대해 "아직 정제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강한 폭발력을 가진 배우"라고 말했다. 희주에 캐스팅하게 된 것도 김시은에게 "희주와 닮아있는 눈빛"을 봤기 때문이었다. '빛과 철'에 합류할 당시 김시은은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약 두 달 동안 '빛과 철'의 촬영을 위해 부산, 마산 등지에서 시간을 보냈다.
'빛과 철'은 표면적으로 다른 영화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현장에서 다른 결을 촬영된 작품이다. 보통의 작품은 대본 리딩, 리허설 등 여러 번의 연습 과정을 통해 촬영 현장에서의 불협화음을 최소화한다. 하지만, '빛과 철'은 달랐다. 배종대 감독은 촬영 전 2가지 원칙을 세웠다. 어떠한 배우도 대본 리딩을 하지 않는다, 배우들을 사전에 만나지 않게 한다. 이 두가지 원칙이었다. 저예산 영화를 제작하면서 배우의 최상의 연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감독의 고집이었다.
김시은이 연기하는 희주를 감독님도 현장에서 처음 마주하게 됐다. 당연히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도 발생했다. 그래서 촬영도 여러 번 반복해야했다. 희주는 남편을 죽음에 몰고간 사건을 한 겹 한 겹 열어보는 인물이다. 어려웠던 감정을 반복하며, 김시은은 현장에서 희주처럼 고통을 느꼈다. 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주연으로 극을 이끌고 가는 인물을 맡았고, 잘 해내고 싶었던 마음도 컸던 만큼 그 고통도 컸다.
"저는 정말 뭐라도 해보고 싶었어요. 숙소 생활을 하는 동안 부산에 있는 연습실을 빌렸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니까, 거기에서 몸도 풀고, 연습도 하고요. 감독님께서는 실제 현장에서 부딪히며 나오는 에너지들을 원하셨어요. 그런데 배우로서는 사실 너무 어려웠어요. 절박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뭐든 했던 것 같아요. 모든 장면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쉽게 간 장면이 없었던 것 같아요."
배우 염혜란은 영남 역을 맡았다. 표면적으로는 사고로 인해 의식불명이 된 피해자 남편을 간호하며, 딸 은영(박지후)을 키우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고의 진실보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중요한 인물이다. 희주와 대칭점에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김시은이 염혜란의 무게와 같은 무게로 극을 이끌어가야 했다.
염혜란은 영화 '빛과 철'로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받았다. 이에 염혜란은 앞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빛과 철'은 김시은의 영화라고 볼 수 있을만큼 너무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배우상을 받은 것이 민망할 정도"라고 덧붙이면서다. 감독님의 연출 의도대로, 두 사람은 사전에 한 번도 볼 수 없다가, 처음 현장에서 마주하게 됐다. 그렇게 만나게 된 배우 염혜란에 대해 김시은은 "굉장히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하게 됐다.
"어휴, '빛과 철'로 배우상은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저는 너무 고군분투했던 현장이라, 영화가 나왔고, 희주라는 캐릭터가 완성됐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했어요. 선배님께서 당연히 배우상을 받아야 하셨어요. 저는 이번 현장을 통해 선배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깊고 넓으신 것 같아요. 그건 연기력으로 한정된 말은 아니에요. 선배님 자체가 굉장히 수심이 깊은 바다같은 분이세요."
"제가 지나가는 말로 선배님께 '이번엔 좀 어렵다, 연기가 어렵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선배님께서 '그럴 때 좋은 연기가 나오는거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한 문장이지만,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정말 한 방울 액기스 같은 말이랄까요. 선배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 같았어요. 같은 고충이 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고요. 그 말이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빛과 철'은 김시은이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작품"을 찾을 때, 손을 내밀어 준 작품이었다. 그리고 정말 김시은은 '빛과 철'이 끝나고 "모든 연료가 다 고갈돼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더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경제적인 상황이나, 사람들의 관계들 때문에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 있더라고요. 그때 제가 수족관의 물고기 같이 느껴졌어요. 예전에는 막 알리고 싶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했다면, '빛과 철'이 끝나고 난 후에는 아무도 제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싶더라고요. 그만큼 지쳐있었어요. 외국으로 워킹홀리데이도 알아봤어요.(웃음)"
"사실 수족관의 고래는 행복하지 않잖아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저 김시은으로 잘, 자유롭게 살고 싶었어요. 힘든데 억지로 '척'을 하지 않고요. 힘든 채로 내버려두고 싶었어요. 궁금하더라고요. 제가 '연기'가 없이도 잘 살 수있는 사람인지가요. 그래도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가요. 그래서 쉼표를 찍어봤어요. 못해본 것들을 해봤어요. 2주 정도 스페인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사실 2주가 짧은 시간이지만 그걸 준비하는 한두달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라고요."
"예전에는 여행도 가지 못했어요. 그 시간 동안에 혹시라도 작품이 들어올까봐, 그래서 그 작품을 놓치게 될까봐요. 그만큼 욕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때 찍은 쉼표만으로도 마음이 나아졌어요. 여행이라는 것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로도 회복이 되더라고요. 제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에요. 덕분에 건강하게 에너지가 올라왔어요. 제목 그대로 제 자신에게도 '빛'이었고 '철'이었던 시간이네요.(웃음)"
김시은은 지난 2008년 연극 '아들과 함께 걷는길'로 데뷔했다. 이후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산채 아낙 역), '귀향'(분숙 역),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귀단 역), '모두의 거짓말'(강진경 역) 등의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쉼 없이 임했다. '혹시라도 내가 여행에 갔을 때 작품이 오면 어쩌나'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배우'의 길을 걸었다.
달라졌다. 말로 할 때와 글로 적힐 때 온도차로 두렵기만 했던 인터뷰에 임하는 마음도 달라졌다. '빛과 철'의 촬영 이후 "3년 동안 묵혀두었던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켜있던 복잡한 감정"들이 인터뷰를 준비하며 잘 풀어볼 수 있었다. 이제서야 '빛과 철'의 "매듭"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기에 제목처럼 '빛과 철'을 맛본 배우 김시은의 또다른 시작이다.
"배우라는 것이 한번에 확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아요. 쉼을 통해 저에게 다가오는 작품이 정말정말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예전에는 돈을 벌고 나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 상업 위주의 작품을 원한 적도 있었어요. 좀 더 비중있는 역에 욕심도 있었고요. 지금은 영화의 스케일보다는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좋은 이야기의 작품 속에 큰 역이든 작은 역이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올 한해는 정말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