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재명, '소리도없이'와 '비밀의 숲'이 동시에 하는 말
"보이는 대로 보지 말고, 그 이면도 바라볼 수 있고, 보이는 것이 확실하다면 행동해야 하고."
영화 '소리도 없이'를 자신의 SNS에 소개한다면 어떤 언어로 표현하고 싶냐는 말에 배우 유재명이 답했다. 사실 길게 답한 내용 중 가져온 한 줄이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비밀의 숲'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유재명을 봤다. 그리고 영화 '소리도 없이'를 통해 유재명을 처음 만나게 됐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배우 유재명은 캐릭터 창복과 많이도 닮아 있었다.
영화 '소리도 없이'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캐릭터의 직업부터 독특하다. 창복(유재명)과 태인(유아인)은 범죄조직의 뒤처리를 해주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때리기 좋게 사람을 묶어두고, 작업이 완료되면, 시체를 예의를 갖춰 묻는다. 분명히 범죄에 가담하는 나쁜 일인데, 다리 불편한 창복과 말 못하는 태인이 돈을 벌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을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운명처럼 저에게 시나리오가 왔고 경건한 마음으로 한 줄씩 읽는데, 되게 지문이 많은 시나리오였어요. 지문을 따라가다 빠져든 것 같아요. 익숙한 듯 한데, 낯설었어요. 낯설다가 기묘해지고, 기묘해지다가 충격적이고, 그런데 웃기고. 중간 이후로 이야기들이 예상할 수 없게 전개됐어요. 그리고 예상할 수 없이 엔딩이 등장했어요. 도대체 이 감독님은 무슨 분이지? 궁금했어요. 홍의정 감독님의 영화 '서식지'를 찾아봤어요. 그 영화도 대단해요."
창복과 태인은 범죄조직과 약속된 작업이 없을 때면, 계란을 판다. 트럭을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계란 얼마예요?" 묻는 무리에게 "8천만원요"라는 너스레로 상대한다. 범죄조직의 일을 처리할 때도 그 트럭을 이용한다. 시체를 태우고 이동하기에 적당히 넓은 크기다.
"창복의 키워드는 '평범함'이었어요. 가장 어려운 말 같아요. 사실 모든 극화된 이야기는 극성, 장르성을 띄는데 창복은 극성이 있지만 평범한 인물인거예요. 하루하루 열심히 계란 팔고, 청소하자. 돈이 모이면, 너도 가게차리고 살자. 평범한 소시민이죠. 특별한 신념이나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인거죠. 사실 '이태원 클라쓰'의 장회장은 극성이 분명하잖아요. 그건 열심히 분석해서 노력하면 되는데, 평범함은 다른 결이거든요."
"친밀감을 주는 것이 중요했어요. '8천만원'도 제 애드리브였어요. 보조촬영 연기자 분이 너무 연기를 잘하셔서 저도 모르게 나왔어요. 분석보다는 집중의 상태에서 나왔어요. 그게 또 소소한 재미겠죠. 정확한 디테일을 만들어냈을 때, 그리고 '계란이 왔어요' 녹음도 제가 직접 했어요.(웃음)"
보통 인물을 만들 때 전사를 이야기해 본다. 시나리오에 담겨있지 않은, 창복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에 대한 탐구다. 유재명 역시 "전사를 중요시하는 배우 중 하나"라고 스스로 말한다. 하지만, 창복만큼은 전사가 중요하지 않았다.
"삶의 이력이 사람의 습관을 만들어요. 배우는 또 인물의 그런 디테일을 잡아가야 하고요. 그런데 감독님과 미팅을 통해,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현재가 중요한 사람인 것 같아요. '소리도 없이'가 설명을 하지 않잖아요. 느닷없이 일어나는 현재 시점의 일들을 담죠. 본능적으로 전사가 없으면 불안하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감각, 육감, 직감, 현재 시점을 이해하는 방식이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소리도 없이'는 홍의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첫 장편영화다. 배우 유아인과 유재명이 주연을 맡은 작품이지만 제작비도 작았다. 촬영 일정도 빠듯했다. 30회차. 약 30일 동안 영화 한 편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완성된 작품은 작지 않다. 높은 출연료를 받지 않았지만, 유재명은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말했다.
"예산이 많은 영화도, 항상 예산이 부족해요. 일정을 여유있게 짠다고 해도, 항상 밭은 일정이고. 어렵지 않은 현장이 어디있겠냐만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현장이었어요. 좋은 작품을 위해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의 지혜를 모아서 촬영해야 했어요. 홍의정 감독님의 '오케이'가 정말 소중한 영화였던 것 같아요. 어려운 환경에서 어렵게 찍었지만,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됐잖아요. 그걸로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긴 하다고 생각해요."
범죄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선한 미소와 말투로 그려낸 독특한 영화다. 유재명은 '소리도 없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합리화와 어떤 양심과 어떤 선택으로 경계에 머물러 있는지. 어떤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판단 기준이 언론을 통해 접한 내용이 되잖아요. 그런데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는 거죠. 저 사건의 당사자가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법적 기준에서 범죄자로 확실하게 정리가 되기 전까지 선입견을 품지 말자.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양심이지 않을까."
"휩쓸리듯 편승하지 않고, 내 중심을 지켜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집중하는게 더 양심적이지 않을까요. 그건 '비밀의 숲'의 테마같기도 해요. 보이는대로 보지 말고, 그 이면도 바라볼 수 있고, 보이는 것이 확실하다면 행동해야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