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이미'에 스며든 렌, 핫하고 독하고 우아한 드랙퀸으로
획일화된 미래 속에서 한 줄기 자유를 탐하는 한 소년이 있다. "남의 허락을 왜 기다려?"라는 절친의 응원과, "하고 싶은 것 다 해!"라는 엄마의 사랑 속에서 소년은 그렇게 피어났다.
어떤 소재보다도 핫하고 발칙한 하이틴 뮤지컬이 한국에 상륙했다. 뮤지컬 '제이미'는 졸업을 앞둔 17살 제이미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드랙퀸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은 신나는 팝 음악과 역동적인 스트리트 댄스로 휴머니티가 담긴 이야기를 재치있게 풀어냈다.
2011년 영국 BBC에서 방영된 제이미 캠벨의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한 '제이미'는 2017년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이후 2018년 올리비에 어워드 5개 부문 노미네이트를 시작으로, 왓츠온스테이지 어워드에서 3개 부문을 수상하며 오픈 런을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초연을 시작한 뮤지컬 '제이미'는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매력을 그대로 옮겨왔다. 이에 국내 뮤지컬 팬들은 웨스트엔드의 무대를 온전히 국내서 만끽할 수 있게 됐다.
작품은 적성검사 결과를 받아든 제이미와 친구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은 진로 교사 헷지는 가수, 연예인, 스포츠 선수라고 답하는 이들에게 "현실감 있게 좀 살자!"고 외친다.
제이미의 결과지에는 '포크레인 기사'가 적혀 있다. 그는 자신의 진짜 꿈 '드랙퀸'을 숨긴 채 "배우가 되고 싶다"고 답한다. 그런 그의 꿈에 불을 지핀 건 바로 엄마 마가렛이다. 열일곱 번째 생일을 맞은 아들을 위해 빨간 하이힐을 선물한 것. 아들의 정체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엄마 덕에 제이미는 꿈에 다가갈 희망을 얻는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제이미는 학창시절 마지막을 장식할 졸업 파티에 드레스를 입고 가기로 마음먹는다. 이를 위해 드랙샵 빅토르 시크릿에 방문한 제이미는 주인 휴고를 만나고, 전설적인 드랙퀸 '로코 샤넬'이었던 휴고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휴고는 제이미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레드 드레스를 빌려주고, 드랙쇼 데뷔를 제안한다.
제이미는 드랙쇼를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고, 이 소식에 교내는 온통 제이미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소식이 선생님의 귀에 들어가게 되자, 헷지 선생은 제이미에게 '졸업 파티에 정상적으로 입고 올 것'을 강요한다.
극 중 제이미는 수려한 외모뿐 아니라 따스한 심성과 재기발랄한 면을 가졌다. 그래서 적나라한 농담과 욕설도 상스러워 보이지 않게 하는 마력이 있다. 언제나 하늘을 찌르는 하이 텐션으로 주위를 밝히는 제이미는 때론 편견 앞에서 작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게이라는 놀림도 특유의 똘끼로 거뜬히 받아치며 단단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제이미의 성장사를 그린 작품은 마치 하이틴 영화를 보는 듯한 넘버와 스트리트 댄스로 가득차 있다. 왁킹, 비보잉 등 다채로운 안무를 선보이는 앙상블이 눈을 즐겁게 했고, 마가렛의 젊은 시절을 노래하는 부분은 현대무용을 차용해 세련된 무대를 완성했다.
도전을 몸소 보여주는 제이미는 이번 작품으로 스펙트럼을 넓힌 렌의 모습과 닮아있다. 2012년부터 뉴이스트 멤버로 활동한 렌은 드라마 '전우치'와 웹드라마 등에서 짧은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그런 그가 데뷔 9년 만에 뮤지컬에 도전하면서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았다.
프레스콜에서 렌은 "평소에 제 재능과 끼,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힐을 신을 때만큼은 비욘세가 되어 무대를 휩쓸어보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실제로 '제이미' 무대 위 렌은 여태껏 보여주지 못한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듯 보였다. 섬세한 손짓, 하이톤의 목소리, 파격적인 패션으로 아이돌로서 보여준 무대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십대들의 플레이 리스트에 있을 법한 팝 음악과 안무는 렌이 '제이미'에 잘 스며들게 했다. 렌은 오프닝 넘버부터 앙상블과 군무를 선보이며 당돌한 매력을 표현했다. 다음 넘버 'The Wall In My Head'에선 잔잔한 감정선으로 한 편의 모놀로그를 완성했다. 1막 초반부터 마치 장르를 오가는 듯한 소화력이 돋보였다. 특히 렌은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넘버 'Ugly In This Ugly World'에서 호소력 짙은 보컬을 선보이며 타이틀롤로서의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배우들의 빈틈 없는 실력은 뮤지컬 '제이미'를 봐야 할 이유 그 자체다. 올해 스무 살인 문은수는 이미 일곱 개의 뮤지컬에 출연한 바 있는 실력파 배우다. 제이미의 절친 '프리티' 역을 맡은 그는 깨끗하면서도 전달력 있는 목소리와 성량으로 관객을 매료했다. 제이미의 엄마 '마가렛'으로 변신한 김선영은 완벽한 강약 조절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말이 필요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이외에도 최호중(휴고 역)과 정영아(레이 역), 김지민(헷지 역), 조은솔(딘 역)은 개성 짙은 캐릭터로 작품을 풍성하게 채웠다.
뮤지컬의 본고장 웨스트엔드를 휩쓸고 아시아 최초로 국내 초연을 시작한 뮤지컬 '제이미'는 오는 9월 11일(금)까지 LG아트센터에서 상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