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만악에서구하소서', 황정민·이정재·박정민의 하드하드보일드 세계
인남(황정민)은 길을 따라 내려간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일본 도쿄 위의 길이다. 하늘은 푸르다. 다만 그 위에 전깃줄이 분주하게 갈라져있을 뿐이다. 마치 그것을 다 헤치고 나가야, 하늘에 닿을 수 있는 인남의 운명 같다.
인남은 시대가 변하며 더이상 나라에 쓸모가 없어 버려진 인물이다. 그는 그 이후에도 손에 피를 묻히는 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일을 마친 시점, 호프집 벽에 붙어있는 바다 사진, 그걸 본 순간 은퇴 후 삶을 계획한다. 그전에는 정말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지막 미션이 문제였다. 마지막 살인 대상은 일본의 거물급 야쿠자였고, 인남은 그를 제거했다. 그런데 그의 형제인 레이(이정재)가 인남을 뒤쫓기 시작했다. 형님의 복수라기보다, 사냥할 대상을 찾는 맹목적인 인물에게 인남이 포착됐다. 인남은 바다로 향하려는 순간, 태국에서 옛 연인(최희서)의 연락을 받는다. 그리고 한국에서 옛 연인을 시신으로 마주한 뒤, 태국으로 향한다. 레이 역시, 인남의 뒤를 쫓는다.
영화는 사람 남자를 스크린에서 담아온 화법을 따른다. 다만, 한 걸음씩 더 고민해서 따른다. 말보다 눈빛으로 표현한다. 하드보일드. 영화는 하드보일드 문법을 따른다. 하드보일드는 완숙된 계란을 뜻하는 말이다. 계란은 삶을 수록 더 단단해진다. 비정, 냉혹이런 뜻의 문학적 용어로 쓰이는 이유다.
그래서 말대신 냉철하고 무감한 태도로 영화는 흐른다. 거친 인물이 시선이 멈추는 곳, 그곳에 감정이 있다. 인남의 각기 다른 감정을 보여줘야 하는 일본, 한국, 태국. 세 곳의 로케이션이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인남이 머무는 각기 다른 색의 하늘에는 그의 감정이 있다. 이를 홍경표 촬영 감독이 담아낸다. 영화 '기생충'의 촬영을 맡았던 이다.
또,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몸으로 부딪힌다. 영화 '신세계'의 두 배우가 한 작품에서 만났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액션에 더 무게를 두고 임했다. 실제로 이정재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니, 정말 내일이 없는 '다만 악으로 임한' 액션을 선보인 두 사람이다. 그리고 영화는 두 사람이 부딪힐 때의 진동과 퍼지는 먼지, 부서지는 것들에 대한 섬세한 포착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인남이라는 이름처럼, 사람 남자의 이야기를 피비린내와 함께 펼쳐놓는다. 영화에는 세 남자가 들장한다. 인남, 레이, 그리고 유이(박정민). 배우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은 각각 다른 길을 가는 세 남자를 스크린에 담는다.
다만, 황정민은 영화 '베테랑', '신세계' 등에서 보여준 말맛을 내려놓는다. 대신 액션의 맛에 무게를 쏟는다. 굳이 비교하자면, '검사외전'처럼 말을 거둔 모습이다. 부성애로 극을 끌고가는 감정선만은 황정민 특유의 묵직한 눈빛으로 몰입하게 될 것.
이정재는 '다만 악'으로 살아가는 레이 역을 맡아 스타일부터 함께 고민했다. "리즌 더즌 매터(Reason doesn't matter.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의 맹목적인 모습은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사냥의 시간' 속 한(박해수)을 떠올리게도 한다.
박정민이 맡은 유이는 여자로서의 삶을 꿈꾸는 남자다. 박정민은 단발머리의 가발을 쓰고 핫 팬츠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등장한다. 과하면 불편하고, 모자라면 심심한 역할을 박정민 특유의 에너지로 이끌고 간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연출한 홍원찬 감독은 "원죄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다른 사람을 구하게 되며 본인도 구원받는 이야기임을 보여주기 위해 주기도문에서 제목을 착안했다"고 했다. "장르에 충실하고 이국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캐릭터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홍원찬 감독의 바람은 그대로 이뤄졌다. 하지만, 어딘가 다른 작품들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되는 것은 또 다른 가능성으로, 혹은 아쉬운 지점으로 관객에게 남을 수 있다.
한편,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영화 '신세계' 이후로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된 배우 황정민과 이정재로 기대감을 높였다. 두 사람은 확실한 에너지로 스크린을 채운다. 이들의 강렬하고 뜨거운 힘은 오는 8월 5일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상영시간 108분. 15세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