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채소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인데, 이런 채소 소비의 1등 공신이 바로 장류다. 장의 깊은 감칠맛이 채소를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 최근 채식 열풍이 불면서 해외에서 김치, 나물, 비빔밥 등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 덕분에 간장, 고추장 등의 수출량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간장에는 한식 간장, 양조간장, 혼합간장, 산분해 간장, 효소분해 간장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각각 풍미가 다르고 어울리는 식품도 다르다. 하지만 간장 종류별 장점과 가치를 아는 소비자는 많지 않고, 간장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도 많다.

소비자가 용도에 맞게 간장을 선택하고, 간장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인이 즐기는 소스가 되기 위해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간장의 특징과 진실은 무엇일까?

자연과 시간의 힘으로 빚은 전통 한식 간장
조선 시대에는 간장의 숙성 정도에 따라 그 해 만든 장을 ‘햇장(청장)’, 2~3년 숙성시킨 장을 ‘중장’, 5년 이상 숙성시킨 장을 ‘진장’이라 했다. 진장의 맛 성분을 더 올리기 위하여 메주를 추가해 한 번 더 발효시킨 장은 겹장 또는 겹진장이라 했다. 제조 기간이 가장 짧은 청장은 색이 맑고 짠맛이 강해 국이나 탕에서 간을 맞추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다. 청장도 시간이 지나면서 맛과 색이 진해지는데, 깊은 풍미와 색이 필요한 요리에는 진장이나 겹장을 적절히 사용했다.

한식간장 장독대 /사진 제공=최낙언

옛날에는 “오래 묵힌 장이 좋은 장”이라고 했다. 숙성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연의 미생물과 시간이 콩 단백질을 더욱 많이 분해하여 감칠맛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이야르 반응을 통해 향과 색도 깊어졌다. 음식의 조리 과정 중 색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특별한 풍미가 나타나는 일련의 화학 반응인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은 일반적으로 160도 이상의 고온에서 잘 일어난다. 하지만 저온이라고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온이라면 불과 몇 분이면 일어날 반응이 일 년 또는 몇 년이라는 긴 시간을 통해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일어난다.

발효는 쉽지 않다. 과거에는 과학은커녕 제대로 가르쳐줄 선생님도 없었음에도 발효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발효식품이 주는 풍미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미생물이나 효소의 존재조차 몰랐던 시대에 발효란 시행착오의 연속이고, 자연의 신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워낙 세심한 정성을 쏟았기에 청결하지 못해 오염이 일어나면 퀴퀴한 이취가 나고 망치기 쉽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장 담그는 날은 목욕재계도 하고 주변을 청결히 하고 물은 심천수를 쓰거나 끓여서 사용할 정도로 깊은 주의를 기울였다. 과거의 한식 간장의 염도가 높은 것은 그나마 소금의 함량을 높이는 것이 실패를 줄이는 첫 번째 요건이었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개발된 간장의 대량화 및 다양화
어쩌면 과거의 장은 진흙탕에서 핀 난초처럼 잡균과 유해균의 뒤엉킴 속에서 우연히 피어난 것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발효의 비밀도 많이 밝혀졌고, 과학을 통해 좋은 간장이 만들어질 확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양조간장
인간이 미생물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미생물을 분리해 사용하는 기술을 알게 된 후 장류의 격이 달라졌다. 양조간장은 수많은 미생물 중에 콩을 분해하는 능력이 가장 큰 미생물을 선별하고, 이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할 수 있는 발효 조건 연구 등을 통해 탄생했다. 과거 서양에서 맥주나 와인을 만들 때 일어난 양조의 혁명이 장류에도 적용이 된 것이다. 양조간장은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 함량(Glutamic acid, Aspartic acid)이 2.0%로 한식 간장 대비 1.3배 높아 감칠맛이 높아졌다. 여기에 20% 정도 남아있는 덜 분해된 저분자 아미노산과 펩타이드가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낸다. 단백질 분해와 동시에 유산균의 발효도 일부 일어나 1.6%의 유기산을 가진다. 이런 유기산은 약간의 신맛을 주고 풍미를 높이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양조간장은 바로 찍어 먹는 용도나 무침, 샐러드드레싱에 잘 어울린다

효소분해 간장
미생물 연구가 심도 있게 이루어지면서 발효는 결국 미생물이 분비한 효소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 어떤 미생물이 어떤 조건에서 효소를 잘 분비하는지, 콩 단백질을 효과적으로 분해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효소 자체를 이용한 효소분해 간장이 탄생한 것이다. 간장의 기본 원리는 결국 콩의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것으로, 과거든 현대든 장은 이 목표를 향해 간 것이다.

산분해 간장
단백질의 분해법 중에 강산을 이용하는 제조법도 있다. 탈지 대두에 식용 염산을 넣고 고온에서 장시간 가열해 콩 단백질을 천연의 맛 성분인 아미노산 단계까지 분해한 다음, 수산화나트륨을 넣어 물과 소금으로 중화시키는 방법이다. 이는 우리 몸의 위가 음식물을 소화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위는 강한 염산을 분비해 미생물을 살균 하고 단백질 분해한 후에 수산화나트륨의 역할을 하는 중탄산나트륨을 분비해 중화하고, 나머지 효소작용으로 음식물을 완전히 분해한다.

이렇게 보면 산분해 간장은 도대체 맛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간장이다. 하지만 의외로 산분해 간장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많은 식품과 궁합이 잘 맞는다. 산분해 간장이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가장 맛있는 간장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뛰어난 단백질 분해율과 앞서 언급한 마이야르 반응으로 만들어진 풍미 물질 덕분이다.

구운 빵, 비스킷, 구운 고기, 연유, 볶은 커피, 군고구마, 군밤, 호떡, 부침개, 튀김 등의 고소한 로스팅 향은 마이야르 반응으로 만들어진다. 산분해 간장은 이런 향기 성분이 많아 고소한 참깨 향이나 김파래 맛으로 표현되며, 한국인이 좋아한다. 간장을 달여서 먹으면 맛있는 이유 중 하나도 마이야르 반응 덕분이다. 산분해 간장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감칠맛이 강하다는 것이다. 산분해 간장은 콩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85~90% 이상 분해되기 때문에 천연의 감칠맛이 가장 높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 양조간장의 단백질 분해율은 50~60% 수준이며, 한식 간장은 30~40% 수준이다.

산분해 간장은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 효소의 비용과 산분해공정의 비용을 고려하면 산분해 방법이 효소분해보다 2~3배 저렴하다. 가성비가 높아서 효소분해 간장보다는 산분해 간장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것이다.

산분해 간장의 오인과 오해
흔히 가장 오래전부터 해오던 방식인 전통 한식 간장 만들기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기술적으로는 꼭 그렇지도 않다. 사람들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면 그저 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양조간장 만들기도 한식 간장 못지않게 어렵고, 산분해 간장도 정교한 제어가 필요하다. 업체는 그동안 산분해 간장의 연구비로만 400억 이상을 썼다고 한다. 다시마 국물에서 MSG를 뽑는 것은 초등학생도 가능한 쉬운 공정이지만, MSG를 생산하는 것은 어지간한 발효전문가나 식품기업도 하기 힘든 공정이다. MSG의 사용이 쉽다고 MSG의 생산이 쉬운 것은 아닌 것과 같이 제대로 된 산분해 간장을 만들기는 정말 쉽지 않는데, 너무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라면 만들기가 파스타를 만들기보다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마트에 있는 다양한 간장 /사진 제공=최낙언

인터넷에 회자하는 산분해 간장에 대한 글들을 보면 위험한 화학약품인 염산을 이용하고, 콩기름을 짜고 나서 버려야 할 부산물인 콩깻묵을 이용한 간장이라는 등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내용의 것들이 있다. 산분해 간장에 사용하는 염산과 수산화나트륨은 식품첨가물로 허용된 것들이며, 이것들은 최종 식품에는 전혀 남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식품첨가물 중에 압도적으로 많은 양이 사용되면서 위생적이고 안전한 식품을 만드는데 기반이 되는 소재다.

지방을 제거한 탈지 대두를 깻묵, 콩 찌꺼기라고 하면서 그것 때문에 산분해 간장이 저렴하다는 코미디 같은 주장도 한다. 탈지 대두는 단백질만을 모은 것이라 콩보다 비싸고 지방인 콩기름보다도 훨씬 비싸다. 탄수화물은 두부를 만들 때도 제거되는 성분이고, 지방은 분해되면 좋지 않은 성분들이 만들어진다. 산분해 간장을 만들면서 가장 비싼 탈지 대두를 사용하는 것은 최근 논란이 있는 3-MCPD의 함량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서다. 3-MCPD는 지방과 소금(염소) 성분이 같이 있으면 가열할 때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물질이다. 다시 말하면 가정 내 조리과정에서도 만들어지는 물질이고, 빵류, 비스킷, 도넛, 햄 및 소시지 등에서도 검출된다. 모두 잘 관리하기에 안전한 것이지 산분해 간장에서만 만들어지는 물질은 전혀 아니다.

사실 소비자는 3-MCPD는 몰라도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간장으로 섭취되는 것은 유엔의 첨가물 전문가 협회(FAO/WHO JECFA)에서 정한 안전기준에 2ug/kg b.w/day의 1/1000 이하만 섭취된다. 그래서 2007년과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산분해 간장은 3-MCPD로부터 안전하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이렇듯 국내 제품이 안전하고 국제 안전 규격에도 잘 부합되기 때문에, 한국의 혼합간장과 HVP가 규격이 가장 까다롭다는 유럽을 비롯하여 전 세계로 수출이 가능한 것이다.

식품에 대한 불안감 조성은 이제 그만
세상에 그렇게 안전하기만 한 식품도 그렇게 위험하기만 한 식품도 별로 없다. 그저 여론에 따라 마치 위험성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할 뿐이다. MSG 유해성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무의미한 논란임에도 그동안 많은 이슈가 등장했다. 이제 겨우 MSG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논란이 없어지려는 지금 산분해 간장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소비자의 불안감만 키우는 일이다. 우리는 그동안 충분히 아니 지나치게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이제 부질없는 걱정은 버리고 간장은 요리 용도에 따라, 취향에 따라 편안하게 선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고자=편한식품정보 최낙언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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