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죽나무 꽃 /사진=산림청

신록의 계절 여름에도 꽃은 피어난다. 재미있는 것은 초여름에 피는 꽃이 대부분 흰색이라는 것이다. 실제 많은 이가 초여름에는 찔레꽃, 함박꽃나무, 쥐똥나무, 산딸나무와 같이 흰색의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초여름에는 왜 유독 흰색 꽃이 많은 걸까?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한반도에 자생하는 수목 464종류의 개화시기 및 특성 분석을 통해 초여름에 흰 꽃 나무들이 많이 보이는 현상을 설명했다.

한반도 자생 수목(충매화 또는 조매화)에서 관찰되는 월 별 개화하는 꽃색의 구성 /이미지=산림청

한반도 자생 수목 중 꽃의 색이 유의한 의미를 가지는 충매화 또는 조매화인 수목은 464종류이다. 이들 중, 초여름(5월과 6월)에 개화하는 수목이 각각 49.6%(230종, 5월), 46.1%(214종, 6월)를 차지한다. 흰 꽃을 피우는 자생 수목은 초여름에 개화하는 전체 수목 종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풍부하다.

또한 흰 꽃을 피우는 수목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람 눈높이에 있거나 조금 높은 관목성 수목이므로(54.6%, 125종), 당연히 사람들 눈에 더 잘 띌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람들의 흰 꽃에 대한 짐작은 어느 정도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야외활동을 하는 산길과 식재 지역에 흰 꽃 수목들이 많이 자라고 있는 것 역시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산딸나무 /이미지=산림청

한편, 꽃의 색은 꽃의 생김새, 향기, 무늬 등과 함께 곤충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다. 곤충은 꽃으로부터 꿀과 꽃가루와 같은 먹이를 얻어 가고, 식물은 이들이 방문함으로써 우연한 확률로 꽃가루받이(수분)가 이루어진다. 곤충에 의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식물종은 지구상에 있는 현화식물 중 약 80%를 넘을 정도로 엄청난 비율을 차지한다.

꽃과 곤충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온 ‘색’ 신호체계는 곤충과는 전혀 다른 광 수용체를 가지는 우리 인간의 눈으로는 쉽게 인지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 눈에 흰색으로 보이는 꽃들이 곤충에게는 흰색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인간의 눈은 적색, 녹색, 청색 수용체를 가지고 있어, 가시광선 파장 영역대(빨주노초파남보)에 있는 모든 색을 식별할 수 있다. 하지만 벌의 눈에 있는 광 수용체의 수는 인간과 같지만, 이들은 청색, 녹색, 자외선 수용체로 구성되어 노란색, 녹색, 청색, 자외선만을 식별할 수 있고, 적외선에 가까운 빨간색은 식별할 수 없다. 반대로 나비는 근적외선을 넘어서 인간이 식별할 수 없는 원적외선까지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 눈에 빨간색으로 보이는 꽃에 이상하게도 벌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 반면, 우거진 숲속에서 핀 보라색 꽃에는 신기하게도 벌이 빈번하게 찾아온다.

섬쥐똥나무 /이미지=산림청

우리 눈에 흰색으로 보이는 꽃들은 인간은 눈에 있는 3개의 광 수용체(적색, 녹색, 청색)를 동일한 비율로 자극하기 때문에 흰색으로 보인다. 자외선 수용체를 가지고 있는 곤충에게도 흰색으로 보이려면 마땅히 녹색, 청색 수용체뿐만 아니라 자외선 수용체에도 동일하게 자극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흰 꽃들은 대부분 자외선을 흡수하기 때문에 곤충에게 흰색으로 보일 수 없다.

물론, 곤충 눈에도 흰색으로 보이는 꽃도 있다. 이렇게 보이는 꽃은 보통 자외선을 반사시키는 꽃이므로 곤충의 눈에 흰색으로 보인다. 하지만 곤충은 인간과 달리 명도를 정확히 구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흰색 꽃을 인지하기 어렵다.

국립수목원은 흰 꽃은 다른 색의 꽃보다 색소에는 적은 자원을 투입하면서 상대적으로 꿀, 꽃가루, 향기와 같은 다른 보상(reward)에 더 투자를 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까시 나무의 풍부한 꿀, 찔레꽃의 풍부한 꽃가루, 쥐똥나무의 강한 향기와 같은 예를 보더라도 흰 꽃은 꽃가루 매개자에게 줄 다른 선물을 챙겨 놓는다. 따라서 흰 꽃이 여전히 꽃가루받이 곤충 매개자들로부터 선택받는 이유는 이들이 곤충의 눈에 흰 꽃이 아니며 충분한 보상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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