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프로젝트 보라'의 <무악舞樂>을 보고, 듣다

전설이 돼 버린 작곡가 윤이상의 <무악>에서 받은 영감에서 탄생한 작품 <무악舞樂>이 지난 11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남산골한옥마을 서울남산국악당 무대에서 초연됐다.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이곳을 선택한 ‘아트프로젝트 보라’의 선택은 탁월했다. 아트프로젝트 보라를 이끌고 있는 안무가 김보라의 설명에 따르면 <무악>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음악과 춤, 장르와 장르간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기 때문이다.


사진=아트프로젝트 보라 제공

이전에도 안무가 김보라와 무용가이자 작곡가인 김재덕의 콜라보를 경험해 보지 못한 건 아니지만, 이번 작품은 단순한 공연 그 이상이 느껴지는 경이로움이 있었다. 현대무용은, 그 태생이 관객을 낯선 경험으로 인도하기 마련인데 그렇다 한들 짜인 안무와 사용한 음악이 일정한 스토리텔링을 이룬다는 상관 관계를 크게 벗어나는 법이 ‘대부분’ 없었다.

<무악>은 도입부나 오브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 클리셰나 일부 형식을 제외하면 기존의 장르로는 규정짓기 어려운 과감한 구성과 설계, 안무와 음악, 그리고 무대가 관객으로 하여금 그야말로 온 신경과 감각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신기하고 재미가 있었다.

<무악>의 가장 큰 즐거움이자 독특함은 음악과 안무가 어떠한 일체감도 이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악이라고는 하지만 멜로디를 찾아볼 수 없고 동양의 것인지 서양의 것인지 구분조차 힘이 든다. 안무도 마찬가지다. 춤이라고 해야 할지 마임이라고 해야할지, 무용수들은 정해진 동작, ‘움직임’을 구사하기는 하나 기존의 멋들어진 안무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정한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대신, 움직임 자체가 하나의 소리이자 음악이 되어 멜로디나 스토리라인이 없는 무대의 빈공간, 빈 네러티브를 절묘하게 채워간다. 음악과 ‘움직임’, 그 움직임에서 발생한 소리, 다시 그 소리에 반응해 만들어지는 스토리를 조합해 어떤 맥락을 만드는 건 순전히 관객의 몫이 된다. 그러니 보는 사람, 아닌 듣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관객의 감각이 수용하는 수준에 따라 이야기는 끝없이 만들어지고 확장된다.

오랜만에 무대에 심취해 느낀 만족감은 다행히 필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공연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는 본 공연의 만족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하는데 관객 대다수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사회자가 시간이 다 됐음을 알리고 나서야 질문이 멈출 정도였다.

김보라 예술감독은 “(그것이 무엇이 됐든)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했다. 아무리 잘게 해체되고 변해도 ‘인간’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듯, 어떤 형태를 취하든 춤과 음악이라는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한히 자유롭고 즉흥적일 것만 같던 무대는, 실은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음악과 무대, 소품에 반응해 움직임 하나 하나를 전부 설계했다고 말했다. 그는 “움직임 자체보다 움직이는 시간, 타이밍에 더 집중했다. 아주 약간이라도 그 동작이 느리냐, 빠르냐에 따라 느껴지는 감각이 크게 차이가 났다”고 설명했다.

그와 관객과의 대화에서 드러난 작품의 목적은 명확했다. '감각의 확장'이다. 인간의 감각은 무한한데 일상에서는 매우 제한된 영역에서 제한된 기능만으로 사용한다. 김보라 예술감독은 <무악>을 통해서 관객의 감각을 활짝 열고 새롭게 보고, 듣고, 느끼기를 원했던 것이다.

인간은 먹기 위해 일하거나 일하기 위해 먹는 게 아니라, 태어난 생명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 낸다. 예술은 그런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도구이자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한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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