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미술과 근대미술의 경계! 대한제국 ‘어진’은 어떻게 변했나?
조선 시대 궁중 미술은 엄격한 규범과 보수성으로 전통을 지켜왔지만,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으로 전환된 후에는 궁중 미술에도 변화가 생겼다. 국가적으로 어렵던 당시의 상황 속에 황권을 강화하려는 고종의 의도가 반영되고, 서양 및 일본 미술 등의 사실적이고 세밀한 화풍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궁중 미술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그림으로 손꼽히는 왕의 초상화 ‘어진(御眞)’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고종은 1987년 나라의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자신의 지위도 왕에서 황제로 높였다.
1901년 채용신이 그린 고종의 어진을 후대에 다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전통적인 어진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검은 익선관을 쓰고 노란색 황룡포를 입은 고종은 금박으로 용머리를 장식한 붉은 어좌에 근엄한 모습으로 앉아있는데, 황색의 용포(龍袍)와 의장물은 황제와 황후에게만 허용되는 것으로 대한제국 이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왼쪽 다리를 따라 늘어진 호패에는 고종이 왕이 된 날짜가 적혀져 있으며, 고종의 얼굴과 의복도 서양식 명암법을 사용하여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묘사된 것도 이전과는 달라진 부분이다.
또 다른 고종 어진에서도 대한제국 궁중 미술의 달라진 화풍을 엿볼 수 있다. 1918년경에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초상화에는 붉은 강사포를 입은 채 어좌에 앉아있는 고종이 그려져 있다. 고종은 황제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12량의 돌기가 있는 검은 통천관을 쓰고, 양손에는 1자 2치의 백옥으로 만든 규를 들었다.
이 그림은 전통 초상화와 달리 짙고 화려한 색채를 사용했으며, 배경에 휘장이 쳐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의복과 휘장에서는 서양식 명암법이 두드러지며, 어좌의 용머리 표현도 전통 방식이 아니다. 그림은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이 일본에서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도 하는데, 1966년에 한국으로 작품이기에 일본인 화가가 그렸을 가능성도 있다.
대한제국 궁중 미술의 달라진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 고종의 어진 두 점은 2019년 2월 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MMCA) 덕수궁관에서 진행 중인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 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