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가의서'→'응답하라1994'→'미스터션샤인'…유연석의 '짝'사랑법
짝사랑 전문 배우는 분명 아니다. 그런데 왜 이 배우의 '짝사랑' 모습은 유독 강렬하게 남아 있을까. '응답하라1994'의 칠봉이가 '미스터션샤인'의 구동매로 돌아왔다. 다시 한번 애틋한 사랑을 가슴 속에 품고.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로 데뷔한 유연석은 오랜 기간 배우 경력을 쌓아온 만큼, 대표작이 없는 배우는 아니다. 물론 2013년 방송된 tvN '응답하라 1994'가 유연석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 맞지만, 그 이전과 이후에도 대표작으로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응답하라1994'의 칠봉이를 유연석의 인생 캐릭터로 꼽는 경우가 많다. 유연석을 떠올릴 때 '짝사랑 남'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는 이유다. 이러한 유연석이 최근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만난 것 같다. '미스터 션샤인' 구동매 역할이다. 그런데 또다시 짝사랑 남 역할이다. 왜 '유연석의 짝사랑'은 더 사랑받는 걸까.
사실 '칠봉이' 캐릭터가 유연석이 맡은 첫 '짝사랑 남'은 아니다. 유연석의 절절한 짝사랑 연기를 보고 싶으면 MBC에서 방영된 '심야병원'을 추천하는 사람이 많다. 극 중 유연석이 맡은 윤상호는 인생이 꼬이며 조직폭력배의 삶을 살게 된 인물이지만, 여주인공 나경(류현경)을 향한 진실하고 순정된 짝사랑으로 호평을 얻은 바 있다.
◆ 애매하게 끝났던 짝사랑…'구가의 서' 박태서
캐릭터 설정부터 비중 있게 짝사랑에 대해서 언급했던 것은 '구가의 서' 속 박태서 역할이 먼저였다. 특히 '건축학 개론'에서 수지가 짝사랑했던 선배로 나왔던 유연석이 반대로 수지를 짝사랑하는 역할이 됐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구가의 서' 공식 홈페이지 설정에 따르면, 박태서는 최강치(이승기)의 친구이자 연적으로 담여울(배수지)에 호감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인 박태서가 담여울을 보면 굳은 표정이 풀어지고 친절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러한 설정을 드러낸 바 있다.
극 중반에는 여울의 아버지이자 태서의 스승인 담평준(조성하)가 여울과 태서의 혼인을 추진하기도 하고, 태서는 여울과 강치의 관계를 알면서도 정혼 관계가 되는 것에 대해 내심 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삼각관계 설정에 불을 붙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박태서에 걸려있던 암시(세뇌)가 풀리면서 강치의 친구로 끝까지 남으며, '짝사랑 남' 역할은 애매하게 끝을 맺는다. 그래서인지 '짝사랑 남'으로 '구가의 서' 박태서 캐릭터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라던 '응답하라 1994' 칠봉이
짝사랑을 사람으로 바꾸면 이런 느낌일까. 이제 '짝사랑 남'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 같은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 이야기다. 특히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라는 그 한마디 말 때문인지 여전히 칠봉이의 사랑은 끝나지 않은 것 처럼 아련하게 느껴진다.
극 중 유연석이 맡은 칠봉이(본명 김선준)는 대학 최고의 투수로 고등학교 시절 7연속 완봉승을 거두었다고 해서 칠봉이라는 별명이 붙은 인물이다. 이종사촌인 빙그레를 따라 하숙집에 오게 된 인물로, 하숙집 딸인 나정(고아라)을 짝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나정에게는 처음부터 쓰레기(정우)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놓고 보면 칠봉이의 자리는 없다. 그럼에도 끝까지 칠봉이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짝사랑이 그만큼 절절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칠봉이의 짝사랑은 갈수록 안타까움을 더한다. 특히 나정이와 쓰레기가 사귄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인터뷰 자리에서 야구계의 유명한 명언인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나정에 대한 사랑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명장면이다. 그렇게 나정이에 대한 칠봉이의 짝사랑은 계속된다.
그리고 '응답하라1994' 측의 낚시 역시 계속됐다. 밀레니엄 전날 모이기로 한 약속일에 나정과 칠봉 둘만 모여 새해를 맞이하는 장면, 면허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함께 전주로 내려가 고백을 하는 장면 등으로 기대감을 더했지만 결국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나정이 쓰레기에 대해 여전히 애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칠봉이는 7년에 걸친 긴 짝사랑을 끝낸다. 이에 칠봉-나정을 응원하던 누리꾼들은 7년 동안 봉이라서 '칠봉'이냐는 등의 한탄을 하기도 했다.
이후 결혼한 나정-쓰레기 부부에게 자신의 집을 시세보다 싸게 전세로 내준 장면이 등장하며, 남편 찾기의 낚시로 쓰였던 칠봉이가 나정이의 집을 익숙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떡밥이 풀리게 된다. 애틋했던 짝사랑의 결말이 '첫사랑DC'라니 칠봉이 캐릭터를 응원했던 팬들에게는 아쉬운 결말이다.
◆ 태생부터 짠내…사랑에 전부를 건 '미스터 션샤인' 구동매
태어나기를 백정의 아들로 태어난, 태생부터 짠내캐가 여기 있다. 여기에 짝사랑 설정까지 더해졌다. 이러한 캐릭터와 유연석이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낼까 궁금했다. 칠봉이와 비슷한 애절한 짝사랑 캐릭터를 감히 예상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역시 뚜껑을 열어 봐야 안다. 칠봉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짝사랑 캐릭터가 유연석의 연기로 탄생됐다.
구동매는 어릴 적 자신을 진실된 마음으로 도와준 고애신(김태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 조선으로 돌아오는 인물이다. 하지만 구동매는 '변절자'가 되어 돌아왔고, 그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는 짝사랑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고애신의 치맛 자락을 잡고 한 구동매의 "그저 있습니다"라는 말이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드러낸다.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도, 다가갈 수 없는 그런 관계다. 닿을 수 없기에 더욱 절절한 순애보다.
이러한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지난 12~13회였다. 12회에서 동매는 우연히 애신의 부모 위패가 있는 장소를 알게 되고, 그 장소에서 고애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구동매는 "제가 제일 처음으로 벤 이가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애기씨였습니다"라며 과거 어린 동매가 애신을 처음 만나 '호강에 겨운 양반 계집'이라고 말했던 것에 대해 후회한다.
이어 동매는 "고르고 골라, 제일 날카로운 말로 애기씨를 베었습니다. 아프셨을까요"라며 "여직 아프시길 바라다가도, 아주 잊으셨길 바라다가도"라며 모순된 심경을 읊조린다. 또한, 애신이 하고 있는 의병활동에 대해서도 "제가 다 숨겨주고 모른 척 해도 안되는 거겠지요"라는 진심을 드러낸다.
다음 회에서 애신이 동매를 찾아와 자신을 일본에 팔아 넘길 것이냐고 묻자, 동매는 "아니요. 아무 것도요. 그저 있을 겁니다"라며 애신을 못 본 척 하고 넘어가기로 결심한다. 이에 애신은 동매에게 돈 주머니를 툭 던졌고, 동매는 동전 하나만을 꺼내며 돈은 달에 한 번씩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애신은 "지금 나를 평생 보겠다는 건가"라고 묻고, 동매는 "예. 그 말입니다. 애기씨께서 저를 계속 살려 두신다면요"라고 속마음을 전한다.
이 동전은 지난 26일 방송된 16회에서 다시 등장한다. 동매와 애신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된 셈이다. 이날 방송에서 동매는 애신의 집의 담을 넘어, 그의 조부에게 애신의 집이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린다. 애신의 조부는 동매를 의심하지만, 동매는 애신이 준 동전을 떠올리며 "제가 받은 돈이 있어서 당분간 조선인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유연석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김태리를 도우며 애틋하고 애잔한 순애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 지금보다 더 멀어질까봐 걱정하며 마음 아파하는 감정을 눈빛과 표정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며 깊은 여운을 선사했다.
한편 유연석이 출연 중인 tvN '미스터 션샤인'은 신미양요(1871년) 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떨어진 한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로, 매주 토일 밤 9시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