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금’은 어떻게 ‘사과’로 오해받게 되었을까?
우리나라 최대 사과 재배지인 대구가 ‘능금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탓인지, 능금을 ‘사과의 재래종’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능금’이 ‘사과’와 비슷한 것은 사실이지만, 능금과 사과는 엄연히 다른 식물이기 때문이다. 또, ‘능금’을 일반 ‘사과’와는 다른 ‘토종 사과’라고 여기는 이들도 많지만, 능금과 사과 모두 중국에서 들어온 수입종으로 이 역시 잘못이다.
송나라 손목의 ‘계림유사(鷄林類事)’에는 고려의 임금(林檎)이 언급되어 있다. 임금은 지금의 능금으로, 18세기 초에 재배가 성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의보감에서는 능금을 ‘나무는 사과나무(柰樹)와 비슷한데 열매는 둥글면서 사과(柰)와 같다. 음력 6~7월에 익는데 내금(來禽)이라고도 한다. 어느 곳에나 다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남강만록(南岡漫錄)’에는 조선 인조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사과를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남강만록에는 ‘사과(査果)는 모양은 능금과 흡사하나 크기는 능금의 수배가 되며 맛은 단맛이 담담하고 시고 떫은 맛이 없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렇듯 조선 시대에 능금과 사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과일이었고, 조선 시대에는 사과보다 역사가 깊은 능금이 더 익숙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9세기 초 사과의 개량종이 들어와 성행하며 능금과 사과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개량종 사과에 상품성이 밀린 능금과 재래종 사과를 재배하는 농가가 전멸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또, 중국에서도 사용하는 능금의 이명인 沙果(사과)와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개량종 사과를 뜻하는 한자 査果(사과)의 발음이 같은 것도 능금과 사과의 혼란을 초래했다.
능금은 사과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열매의 크기는 어른 손톱 정도로 훨씬 작다. 요즘은 능금을 실물로 볼 기회가 많지 않지만, 능금이 사과라는 오해는 더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