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읽을만한 책]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
박형진 저 | 열화당
극젱이, 끙게, 번지, 주루막, 부뚜, 어리, 부리망. 이 단어들은 무슨 뜻일까? 아니, 어느 나라 말들일까? 21세기한국의 도시인들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이들 용어의 뜻을 알고 있을까? 메, 개상, 길마, 맞두레, 자새, 통가리, 워낭. 이들 단어는 또 어떤가? 이쯤 되면, 그 의미는 잘 모르더라도 이들이 한국어 낱말임을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다. 혹시 농촌생활에 필요한 어떤 도구 이름 같다는 짐작도 가능하다. 이런 짐작도 어쩌면 ‘워낭소리’라는 영화 덕분인지 모르겠다. 앞에 열거한 단어들은 모두 농촌의 삶 내가 밴 추억의 낱말, 곧 갖가지 도구 이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 같은 먼 옛날의 도구만은 아니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농촌에서는 일상처럼 다루던 것들이다. 어쩌면 지금도 동네에 따라서는 집집마다 몇 개씩은 갖고 있는 ‘현재형’ 도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을 살피는 일은 단순히 농촌의 풍경을 되돌아보는 의미를 넘어, 급격한 산업화를 겪은 대한민국이 밟아온 삶의 여정을 역사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흙과 함께 삶을 영위해 온 한국인의 경험을 농기구라는 미시사적 접근을 통해 모아 정리한 글이 바로 이 책이다. 기계화로 인해 지금은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서 우리와 일상을 함께 하던 것들에 대한 은은한 역사서이다. 사진도 많이 수록해 각종 도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뿐 아니라 읽는 이의 흥미도 돋운다. 30년 넘게 농부로 사는 동안 온몸에 각인된 삶의 흔적들을 저자가 직접 감칠맛 나게 글로 엮은 수작이다. 병원에서 태어나 아파트에 살면서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21세기 한국인들이지만, 우리들 마음 깊은 곳에는 늘 ‘흙’에 대한 향수와 회귀본능이 꿈틀거린다. 시간이 없어 죽겠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며 회색빛 도시에서 쳇바퀴를 도는 우리네 현대인이 잠시 마음속 짐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기 좋은 책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도, 다 읽고 책을 덮을 때는 마음에 전해오는 여운이 깊고도 길게 남을 그런 책이다.| 추천자: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