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읽을만한 책] 글쓰는 여자의 공간
타이나슐리 저/남기철 역 | 이봄
‘서재’ 하면 곧 남자의 공간이 연상되는 환경에서, 여성 작가들은 어디에서 글을 썼을까? 박완서 선생은 아이들이 어릴 땐 식탁 주변을 맴돌며, 때론 방바닥에 엎드려 글을 썼노라 했다. 방송작가인 친구는 베란다 구석자리가 명당이었다 하면서, 마감에 쫓겨 안방 병풍 뒤에 모신 아버지의 주검 옆에서도 글을 쓴 적이 있다는 살벌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서양이건 동양이건 버지니아 울프처럼 일찍이 ‘자기만의 방’을 가진 여성 작가는 드물었다. 그래서일까, 110년이 넘는 노벨문학상 역사상 여성 작가가 14명에 지나지 않는 이유가.
글쓰기는 누가 뭐래도 고독하며, 고도의 몰입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 책은 서양의 여성 작가 35인의 그 치열한 작업 공간을 들여다보는 카메라이다. 저자 타니아 슐리는 편집자 출신의 작가답게 광범위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 등을 통해 작가들의 개성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만 보아도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영감을 받을 것이다. 당당하다. 눈빛이 강하다. 그녀들이 앉아있는 그 공간의 무게와 밀도가 우리를 잡아당긴다.
가사(家事)를 거부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는 주로 카페에서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났다. 열아홉 살에 『슬픔이여 안녕』으로 일약 스타가 된 프랑수아즈 사강은 담뱃불로 탁자를 지져대며 타자기를 두드렸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토니 모리슨의 작업실은 가족들이 깨어나기 전의 식탁이었다. 그녀는 오히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글을 쓰지 않았다고, 여건을 핑계대지 말라고 준엄하게 말한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카소, 마티스 등 당대 화가들의 걸작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아틀리에가 작업실이었다. 화가들의 실험정신을 세례 받은 스타인은 화단의 큐비즘을 언어의 무대로 가져왔다.
이제는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 누구의 글이든 실리는 시대, 당신은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 가운데 어느 유형인가? 카페? 술집? 피시방? 도서관? 식탁? 나만의 아지트? 근사한 서재? 어디서든 명작은 태어나리…
| 추천자: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출판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