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읽을만한 책]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강명관 저 | 휴머니스트
조선 후기(17-19세기)는 그저 낙후되었다가 끝내 무기력하게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던 시기였을까? 아니면 상공업과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화폐경제를 일으키는 등 스스로 근대를 향해 나아가던 시기였을까? 이렇게 극명하게 상반되는 조선 후기의 이미지는 지금도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다. 전자가 조선시대의 고루함을 드러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부각하려는 이들의 생각이라면, 후자는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한국 문명의 내재적 발전을 강조하려는 자들의 입장이다. 조선왕조의 실상은 하나인데, 그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적대적인 두 개의 틀로 나뉜 꼴이다.
이 책은 특정 시각이나 이념을 앞세워 조선시대의 역사를 임의로 재단한 기존의 접근을 지양하고, 조선 후기 당시의 현실에서 조선 후기를 조망한다. 그 소재는 당시 사람들이 경험하고 사용한 서양의 몇몇 기물인데, 이는 조선의 사고체계와는 크게 다른 서양 문명이 만들어낸 기물을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수용하고 인식했는지를 살피는 방식을 통해 조선 후기 지성사와 생활사의 추이를 거시적으로 살피고 해석하는 좋은 접근법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한문 자료의 치밀한 해석을 통해 조선 후기의 모습을 천착하여 꾸준히 소개해온 전문학자로, 특히 이 책은 미시적 접근을 통해 거시적 해석을 이끌어낸 수작이다.
저자가 소개한 다섯 가지 서양 기물은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 양금(洋琴) 등인데, 모두 보고 듣는 기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가 이런 점을 특별히 의식하고 선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보고 듣는 것은 어떤 사람이 외부의 상황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 지식인들은 이 보고 듣는 기물들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그런 기물들의 배후에 깔려있는 철학과 과학기술에까지 관심을 보였을까? 아니면 그 희한함과 편리함에만 매료되었을까? 이 책은 바로 이런 질문에 심도 있는 답을 제공함으로써, 근대라는 폭풍을 앞둔 조선 후기가 한국 문명의 전체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해석하고 평가한다. 비슷한 경험이 반복해 이어지는 이 글로벌시대 한국인으로서 읽을 가치가 충분한 우량도서이다.
| 추천자: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