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읽을만한 책] 뇌물의 역사
임용한, 김인호, 노혜경 저 | 이야기가있는집
인류의 역사와 그 시작을 거의 함께 했고 지금도 여전히 역사 전개의 주요 요소로 작동하고 있음에도,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늘 은폐의 대상이었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뇌물이다. 뇌물은 영어로 ‘bribe’(브라이브)라고 하는데, 이는 원래 자선이나 자비를 베풀 때 사용하는 선의의 물건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중세 유럽에서는 ‘선물’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고, 한국의 조선에서도 선물과 뇌물의 경계는 늘 모호하였다. 현대 한국사회의 이른바 ‘떡값’도 마찬가지다. 서로 부담 없이 관행에 따라 소소하게 떡값을 주고받는데, 뇌물이라 단정하기에는 대체로 액수가 적다. 그렇다고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대가성을 내포한 경우가 많은 탓에, 떡값을 뇌물로 볼지 선물로 볼지 그 경계와 기준은 여전히 애매하다. 그래도 어떤 거래가 일단 뇌물수수로 판정받으면, 그 범죄의 심각성과 부정적 파장은 매우 큰 편이다. 인류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도 뇌물이라는 주제가 역사 이해의 한 프리즘으로 전면에 등장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뇌물은 힘 그 자체보다는 필요에 따라 움직이기에, 인류문명이 지속되는 한 뇌물도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며, 그 완전한 근절은 솔직히 불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3,000년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뇌물의 실체와 그 작동 원리를 파헤친다. 고대 중국의 사례부터 시작하여, 중세와 근대의 유럽을 거쳐, 한국의 역사까지 섭렵하면서 말 그대로 ‘뇌물의 역사’를 탄탄하게 다룬다. 왜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뇌물이 근절되지 않는지, 어떤 중차대한 일을 추진할 때 왜 뇌물이 주요 수단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역사적 사례를 종횡무진으로 들면서 매우 맛나게 설명한다. 또한 이 책은 뇌물을 선악의 잣대로 다루지 않는다. 그동안 쉬쉬하던 뇌물을 역사공부의 한 주제로 담담히 끌어낸다. 이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양질의 교양서이다.| 추천자: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