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이데올로기가 정점에 있던 1970년대 구소련과 중국의 관계가 냉랭해졌을 무렵 미국과 중국의 외교관계에 일대 지진이 일어났다. 그토록 견고하게 유지되었던 중국의 죽의 장막을 2.5g의 탁구공이 뚫은 것이다.
정상회담의 전초전으로 1971년 4월 10일 미국 탁구선수단 중국방문이 있었고, 미국의 국무장관 키전저와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의 예비 회담을 거쳐 마침내 1972년 2월 마오저똥과 닉슨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있었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에도 치파오(旗袍)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있었으니 바로 이러하다.
양국 정상이 회담을 하게 되면 양국의 퍼스트 레이드는 주로 가벼운 주제로 환담을 하거나 방문국의 문화를 둘러 보는 게 관례다. 이러한 관례에 따라 닉슨의 부인이 중국의 전통의상을 감상하는 기회가 있었다. 이 때 서양인의 눈에 가장 매력적이고 가장 중국적으로 비쳐진 옷이 바로 중국의 팔등신 미녀가 입고 있던 치파오(旗袍)였다.
 
닉슨의 부인이 기자회견을 할 때 어느 기자가 “중국의 치파오를 보신 소감이 어떻습니까?”하고 질문하였다. 이 질문에 닉슨의 부인은 “중국의 인구가 이렇게 많은 이유를 몰랐는데 오늘 치파오를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라고 유머러스한 답변을 하였다. 그녀의 답변은 중국의 치파오가 너무나 섹시하여 성적 충동심을 유발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당연히 인구가 많아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우문현답이라고나 할까?
 
현재 치파오가 중국의 전통의상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오늘날과 같이 전통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된 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지 않다. 사실 치파오는 한족(漢族)의 전통 복장이 아니라 만족(滿族)의 전통복장이었다. 치파오의 원형은 긴 원피스형으로 말을 타기 좋도록 양 옆구리 선을 허리에서부터 밑으로 끝까지 길게 터놓았다. 그리고 허리에 혁대를 매고 속에는 반드시 바지를 입었었다. 이 옷을 한인(漢人)들은 치파오(旗袍)라고 불렀다. 따라서 치파오가 현재의 섹시한 형태로 변한 것은 청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한참 뒤의 일이다. 말타기 편하게 고안된 옷이 차츰 전쟁의 필요성이 없어지고 말타는 것조차 불필요하게 되자 여성 전용 옷으로 변하는 동시에 나날이 품이 좁아져 몸에 꼭 맞게 변하게 되었고 혁대도 바지도 모두 없어졌다. 그래서 현재의 치파오가 되었는데 중국 여성의 몸매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보일 듯 말 듯 엉덩이부터 발목까지 터져 있어 쭉 뻗은 각선미에 사내들의 뜨거운 시선이 꽂히고 있다. 한 겨울에도 치파오를 입은 여자가 춥지 않은 것은 뜨거운 시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닉슨 부인의 유머러스한 말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퍼스트 레이디에게도 그런 대답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홈으로 이동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