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 소극장] '줄리&줄리아' 인생을 바꾼 그녀들의 레시피
"본 에퍼티(Bon Appétit)"
맛있게 먹으라는 짧은 인사말이 이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키 188cm에 인상 좋은 중년의 아주머니는 푸근한 미소를 날리며 이렇게 말한다. 요즘 인기 있는 셰프들처럼 현란한 손짓은 없지만,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조심조심 요리하는 그녀의 손길에는 정성스러움이 한껏 배어 있다. 미국 요리의 대모라고 불리는 실존 인물인 '줄리아 차일드'다.
1949년 프랑스,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낯선 땅으로 이사를 오게 된 줄리아(메릴 스트립 분). 영어밖에 할 줄 몰랐던 그녀는 남편이 나간 동안 할 일을 찾아보지만 마땅치 않다. 모자 만들기 수업도, 브릿지 수업도 그녀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러던 그녀의 인생을 바꾼 건 책 한 권, 바로 남편이 선물한 프랑스 요리 대백과였다.
"나 요리 학교에 다녀보면 어떨까요?"
남편에게 요리책을 선물 받은 줄리아는 본격적으로 프랑스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다. 프랑스 최고의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에 다니게 된 그녀는, 자신만의 낙천성과 끈기를 무기로 학교의 최고 우등생이 된다.
세월이 흘러 2002년 미국의 퀸즈, 여기도 일상이 따분하기만 한 한 여성이 있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소설 쓰는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전화 상담 업무를 하는 줄리(에이미 아담스 분). 그녀 일상의 유일한 돌파구는 다름 아닌 요리다. 매일 남편에게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며 스트레스를 풀던 줄리는, 어느 날 남편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인생이 뒤바뀌게 된다.
"블로그에 요리에 대해 써봐"
줄리는 남편의 권유에 따라 블로그를 열고 자신만의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다. '365일 동안 줄리아 차일드의 책에 있는 524개 레시피 정복하기!' 끈기 없는데다가 예민하고 가끔은 신경질적이기도 한 그녀, 과연 이 엄청난 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2009년 개봉한 영화 '줄리&줄리아'는 미묘하게 닮은 인생을 산 두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줄리와 줄리아, 두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4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게 하는 소재는 바로 요리. 영화는 줄리와 줄리아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균형을 유지하는데, 두 캐릭터의 모습을 비교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국 주부들이 프랑스 요리의 '프' 자도 모르던 시절, 고국의 여성들을 위해 900페이지에 달하는 요리책을 써낸 줄리아에게서는 위대함을, 그런 줄리아를 롤모델 삼아 자신을 채찍질하는 줄리에게서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주목할 또 한 가지는 다정함으로 무장한 그녀들의 남편 역할이다. 줄리와 줄리아의 남편은 두 여성이 요리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한 장본인이자 그녀들이 난관에 부딪히거나 평정심을 잃을 때마다 심적, 물적으로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여기에 아내가 만든 요리를 연신 '맛있다.' 연발하며 먹어주는 사랑스러움까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을 연출한 로맨틱 코미디의 거장 노라 에프론 감독은 요리 영화에서조차 로맨틱함을 적절히 버무리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들이 성공한 요인의 8할은 남편이다'라고 하는 외로운 싱글 여성들의 투정 섞인 질투를 들어야 했다.
영화 '줄리&줄리아'는 미국에서 흥행하며 숱한 뒷이야기도 낳았다. 줄리아가 저술한 요리책 '프랑스 요리 예술 마스터하기'는 베스트셀러 순위를 역주행하는 반면,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 건강을 해치는 요리법'이라는 논란도 동시에 불렀다. 줄리처럼 줄리아의 레시피를 따라한 뒤 블로그에 올리는 여성들도 늘어났다.
어찌 되었건 '줄리&줄리아'는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드는 영화라기보다는 음식을 만들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요리에 열중하는 두 여성을 보고 있노라면 당신도 당장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싶어질 것이다. 아는 게 없어서, 소질이 없어서 시작하지 못한다고? 그렇다면 줄리 남편의 이 말을 기억해 보라.
"줄리아라고 처음부터 요리사였나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