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洞)이름은 왜 ○○일까요? ⑪ 동대문구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이름을 우리는 단순히 그냥 '인식'하고 있다. 사람의 이름을 지을 때 어떻게 살았으면 한다는 의미를 부여해서 이름을 짓듯이, 각 지명의 이름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우리 동(洞)이름은 왜 '○○'일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된 '지명 이름의 유래 찾기'. 동대문구의 지명 이름 유래를 정리했다.
이문(里門)
조선 시대 때 이 마을에 이문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문이란 도둑을 단속할 목적으로 마을 입구에 세운 문을 말한다. 전국적으로 마을 입구에 이문을 세운 곳이 많았기에 이문이라는 이름으로 유래된 동네가 많이 있다.
휘경(徽慶)
조선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묘소인 휘경원이 이 곳에 있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휘경원은 현재는 경기도 고양시에 이장되어 있다.
회기(回基)
조선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회묘(懷墓)가 이 곳에 있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회묘동(懷墓洞)이라 불렀으나, 한자 표기를 많이 하던 시절에 회(懷)가 어렵다하여 회(回)로 바꾸어 회묘동(回墓洞)으로 바꿔 불렀다. 이후 묘(墓)가 마을이름으로 적합하지 않다하여 지금의 회기(回基)로 바꾸게 되었다.
청량리(淸凉里)
이곳에 있던 청량사(淸凉寺)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량사는 청량사가 있던 바리산의 수목이 울창하고 샘이 맑았고, 늘 시원한 바람이 불어 청량이라 붙였다고 한다.
제기(祭基)
조선 시대 때 이 마을에 풍년들기를 기원하던 제단인 선농단을 만들고, 왕이 친히 제사를 지내던 자리라 하여 '제터' 또는 '계터'라고 부른 데서 유래하였다.
신설(新設)
조선 중기 동부 숭신방에 새로 설치된(新設)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용신(龍新)
이 동은 용두동과 신설동이 통합되어 만들어져 붙여진 이름이다.
전농(典農)
조선 시대 왕의 친경지였던 전농(典農)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장안(長安)
조선 시대 목마장으로 유명했던 장안벌(장안평)에서 유래되었다.
답십리(踏十)
조선 초기 무학대사가 왕도를 정하려고 도성에서 10리 떨어진 이곳을 밟았다는데서 유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