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검은 쓰레기봉투를 뒤집어 쓴 채 달린다. 뒤이어 여자가 불쑥 튀어나오고,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린다. 그러다 멈춰서 티격태격 말다툼을 한다. 누가봐도 어색한 조합, 두 남녀는 이 동네의 '미친 X' 들이다.  

남자는 8개월간 정신병원에 있다 나온 팻(브래들리 쿠퍼 분)이고 여자는 문란한 생활로 회사에서 해고당한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분)다. 팻은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충격을 받은 뒤 시도때도 없이 폭발하는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분노조절 장애를 앓는다. 덕분에 직장도 잃고 아내도 잃었다. 티파니는 남편이 죽은 뒤 공허함을 이기지 못해 뭇 남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문란한 삶을 살고 있다.

팻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느꼈던 티파니는 첫 만남에서 "내 방에서 자고 가라"는 돌직구를 날린다. 하지만 팻은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야 비로소 티파니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다. (출처=영화의 스틸컷)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표면적으로는 남녀가 우연히 만나 → 티격태격 하다가 → 사랑에 빠진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기본 공식을 따른다. 그러나 이 영화가 식상한 로맨틱 코미디를 넘어서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두 남녀 주인공의 독특한 캐릭터와 '춤'이라는 매개체 덕분이다. 팻과 티파니가 서서히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두 남녀가 서로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팻은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고, 그녀를 되찾아옴으로써 자신이 정상인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그를 구원하는 것은 아내 니키가 아닌 티파니다. 티파니는 아내를 잊지 못하고 집착하는 그에게 함께 댄스 경연대회를 나가자고 제안한다. 바퀴 빠진 수레를 끄는 것처럼 삐걱거리던 팻과 티파니는 춤 연습을 통해 서로에게 맞춰나가는 법을 배운다. 

댄스 경연대회에 나가기로 한 팻과 티파니는 조그만 별채에서 만나 춤 연습을 한다. 춤에 열중한 두 남녀가 적막한 마룻바닥 위에 찍어내는 발자국 소리가 관객들을 설레게 한다. (출처=영화의 스틸컷)

영화의 타이틀에 쓰인 '실버라이닝'은 구름의 가장자리라는 의미다. 뒤에 가린 햇빛이 조금 새어나오는, 구름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때문에 '한 줄기 빛'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플레이북은 운동경기에서 쓰는 작전 따위를 일컫는 말.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두 남녀는 말 그대로 '한 줄기 빛'을 찾고자 하는 작전에서 완벽하게 성공을 이뤄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당신은 당신 인생의 '한 줄기 빛'을 찾았는가? 아직 찾기 전이라면 팻의 아버지(로버트 드니로 분)의 이 충고를 기억하기 바란다.

"누군가 손을 내밀려 할 때 마음을 알아채는 게 중요해.
내민 손을 잡아주지 않는 건 죄악이고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하는 또 한 가지는 15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무색할 만큼 '완벽한 케미'를 자랑하는 두 남녀 주인공이다. 브래들리 쿠퍼도 멋있지만, 제니퍼 로렌스는 영화 속에서 본인의 매력을 200%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완벽하다.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최연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안았다. 안젤리나 졸리, 앤 해서웨이 같은 할리우드 탑 여배우들이 티파니 역을 애타게 원했지만, 감독은 제니퍼 로렌스와의 첫 만남에서 그녀를 주연으로 점찍었다고 한다. 영화 속 팻과 티파니에 버금가는, 그야말로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다.

홈으로 이동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