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묘하게 닮아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와 '인셉션'
※ 이 기사에는 영화 '인터스텔라'와 '인셉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연일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놀란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과 강렬한 CG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에 생기를 불어 넣었고, 현재 연구되고 있는 과학 이론을 근거로 만들어져 영화 속 이야기가 단지 상상의 세계가 아닌 실제 존재하는 세계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인터스텔라'를 본 관객들은 놀란 감독의 전작 '인셉션'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2010년, 기발한 아이디어로 흥행을 이끌어낸 ‘인셉션' 포맷의 상당 부분을 이번 영화에 가져왔지만 그런 포맷뿐만 아니라 이번 영화는 스토리가 가미되어 '인터스텔라'만의 스타일로 풀어냈다.
◇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
'인터스텔라'와 '인셉션'은 현실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 핵심 플롯이다. '인터스텔라'에서는 다른 은하계로 넘어갈 수 있는 가장 빠른 통로로 '웜홀'이 나온다. 웜홀(worm hole)은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킵 스티브 손의 이론으로 우주의 시간과 공간에 있는 벽의 구멍을 말한다. 이 구멍을 통해 정반대 편으로 이동하면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는 이론으로 벌레가 사과의 정반대 편으로 이동할 때 가로질러 가는 것에서 착안된 것이다.
'인셉션’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다른 사람의 꿈 속에 들어가서 그의 생각을 훔친다. 이 때 꿈 속으로 들어가는 폼(form)이 웜홀에 그것과 유사하다. '인셉션'에서의 이론에 따르면 마음은 계속해서 꿈 속에서 세계를 창조하며 인지를 하고, 마음은 그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것이 창조된 꿈 속인지, 현실인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그 과정의 한가운데인 꿈과 현실 사이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
◇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스케일
'인터스텔라'에서 웜홀을 통해 처음 들어간 행성에서 주인공들은 상상도 못할 거대한 파도를 경험한다. 쓰나미를 능가하는 CG로 만들어진 큰 파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거대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후에 도착한 얼음 행성에서도 마찬가지로 거대한 풍광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이는 놀란 감독의 '인셉션'에서 이미 경험한 영상이다.
'인셉션'에서는 꿈 속 세상이 가상세계인만큼 마음대로 창조할 수 있다. 그래서 '인셉션'에서 보게 되는 명장면에서는 프랑스 파리의 도시가 마치 하늘에 거울을 걸어놓은 것처럼 상하대칭으로 보이고 위에 자리잡은 파리에서도 차들은 거꾸로 달린다. 좌우에도 마찬가지다. 놀란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 무한 반복되는 이미지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는 상대적인 시간으로 가득 찬 블랙홀에 빠지게 된다. 이 곳에서 쿠퍼는 자기가 겪어온 시간들을 볼 수 있게 되는데 무한 반복되는 '인터스텔라'의 이 장면은, ‘인셉션’에서 꿈의 내부를 창조하는 법을 배우는 애리어든이 처음으로 만들어보는 꿈 속 장면과 흡사하다. 이 장면에서도 놀란 감독은 무한히 반복되는 이미지를 썼는데, 이같은 무한반복 이미지는 '인터스텔라'와 '인셉션'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감독의 영원함에 대한 고뇌와 그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 현실과 다른 공간에서의 시간 흐름
'인터스텔라'와 '인셉션'에서 나타나는 유사한 플롯은 차원 간의 시간 차이에서도 나타난다. '인터스텔라'에서는 행성의 1시간이 지구에서 7년이고, '인셉션'에서는 현실에서 3~4시간 잠든 시간이 꿈 속에서의 40시간과 같다. 여기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보다 많은 시간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고 싶은 놀람 감독의 연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두 영화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현실과 또 다른 차원의 경계의 모호함'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인셉션'에서는 토템(팽이)은 현실과 꿈을 구분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토템이 돌다가 중력의 힘에 의해 멈추면 현실이고 영원히 멈추지 않으면 꿈 속이다. '인셉션'의 마지막 장면에서 토템이 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할의 끝을 보여주는 데, 모든 상황이 끝나고 주인공 코브가 돌린 토템은 영화의 마지막을 알리는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인터스텔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차원의 은하계를 여행하고 돌아온 주인공 쿠퍼는 자기도보다 더 늙어버린 딸 머피를 대면하게 된다. 결국 쿠퍼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향해 웜홀로 떠나간다. 어느 것이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장면이 또 연출된 것이다.
◇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건 해결의 강력한 동기
두 영화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또 다른 주요 플롯은 바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쿠퍼의 딸 머피에 대한 애틋함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고, '인셉션'에서도 코브의 죽은 아내와 남아있는 두 아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야기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두 영화 모두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주인공에게 주어지며 사건을 해결하는 동기가 된다. 놀란 감독 스스로은 "어릴 때 보았던 SF영화들이 가족영화로의 정신이 끌렸다"며 "<미지와의 조우>나 <죠스>는 가족영화다. 누군가 가족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왠지는 모르겠지만 부드러운 무언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땐 훌륭한 센스를 지닌 가족영화들이 있었다. 그 어떤 다른 종류의 블록버스터보다 더욱 통렬하고 예리하며 도전적이었다. 나도 그것을 잡아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인터스텔라'는 우주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 위에 얹은 현존하는 과학 이론은 영화가 허구가 아닐 수도 있음을 강조했고, 자칫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 우주과학 이야기는 블랙홀, 파도행성, 얼음행성과 같은 거대한 CG로 관객의 시각을 자극하며 풀어갔다. 또한, 주인공 쿠퍼와 그의 딸의 만남에 눈물을 흘렸다는 관객평이 많았다는 점은 관객들의 감성적인 부분까지도 잘 터치한 감독의 연출력을 높게 평가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인셉션'의 성공에 이은 '인터스텔라'의 성공은 결국 관객들이 원하는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낸 놀란 감독만의 예리한 연출력이 진가를 발휘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