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류 시장의 변화, “순하게, 색다르게” 열풍
소주, 맥주로 대변되던 국내 주류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장기 불황과 ‘알뜰, 실속, 웰빙’을 지향하는 음주 문화 변화로 인해 최근 국내 주류 시장의 소비행태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닐슨코리아가 발표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불황이면 술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난다는 정설을 뒷받침하듯 국내 주류시장은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주류시장의 판매 및 물량 성장률을 살펴보면 주류 소비행태는 과거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위스키다. 한국주류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위스키 출고량은 2010년 252만 상자에서 2013년 185만 상자로 3년 만에 22.6% 감소했다. 불황으로 인해 사회 전반의 유흥 분위기가 위축되고, 주폭(酒暴) 등 음주 폐해를 근절하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해져 주로 접대 및 회식용으로 소비되던 고가의 위스키 소비량이 줄어든 것이다. 가급적 순한 술로 술자리를 즐기자는 주류 문화의 변화도 한몫 했다. 위스키 판매 감소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돼 국내에서 위스키를 판매하고 있는 업체들은 위스키 국내 생산을 중단하고 전량 수입하는 것을 검토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위스키의 판매 감소와는 달리 보드카, 럼, 진, 데킬라 등의 화이트 양주 시장은 최근 30% 이상 급격하게 성장했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출고된 화이트 양주는 41만 764상자(1상자=9ℓ)로 전년(31만 3039상자)에 비해 31% 증가했다.
화이트 양주 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것은 위스키에 비해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데다, 젊은 층 사이에서 보드카를 음료와 섞어 마시는 ‘칵테일 문화’가 크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이트 양주는 상대적으로 즐기는 음주를 선호하는 젊은 소비층에게 어필해 와인, 샴페인의 뒤를 잇는 매력 있는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순한 술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기호도 주류 시장의 변화를 가속화시켰다. 과거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21도였지만, 2006년 20도, 2007년 19.5도, 2012년 19도로 점차 낮아졌고 현재는 18도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부드러운 소주를 선호하는 젊은 고객들의 입맛에 따른 변화였다.
회식 자리에 단골로 등장하는 폭탄주에도 이런 변화의 흐름이 반영되고 있다. 과거 양주, 소주, 맥주 등이 주를 이뤘던 폭탄주의 주 재료가 탄산수나 홍초, 과일즙, 에너지 음료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는 것. 술과 술을 섞은 폭탄주에 비해 덜 지치고 오래 마실 수 있다고 하여 많은 이들이 찾는 최신 폭탄주는 맛이 강조되고 알코올 도수를 낮춘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저도주의 대명사인 맥주 소비 역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주류산업협회 조사결과 2012년 연간 기준 가정용 맥주 판매는 사상 처음 유흥용(49.7%)을 넘어섰고, 닐슨코리아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3년에는 편의점 캔맥주가 가장 많이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간소화 된 회식문화와 캠핑과 파티 등 가족 레저 시장이 커지면서 가정용 맥주 판매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최근 일고 있는 수입 맥주 열풍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맥주 수입량은 2010년 4,871만 리터에서 2013년 9500만 리터로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중저가 와인 역시 가정용으로 인기를 끌며 2012년 소주를 밀어내고 국내 주류시장 판매비중 2위를 차지했다.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술 자체의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한 애주가들의 증가와 보다 순하고 색다른 맛을 추구하는 음주문화에 힘입어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국내 주류시장. 국내 주류시장의 변화는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