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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 2008), '밀정'(2016) 등 각기 다른 장르와 스타일의 영화의 공통점은 바로 '김지운 감독'이다. 스타일리쉬함은 김지운 감독의 작품에 뒤이어 붙는 수식어였다. 그런 그가 첫 시리즈물에 도전했다. 애플TV+ '닥터 브레인'을 통해서다.
김지운 감독은 "모든 게 새로웠던 것 같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영화를 하던 패턴이 있었는데, 드라마는 주어진 시간에 영화의 두세 배를 찍어야 하지 않나. 미장센 등을 신경 썼다기보다 스토리를 정확히 전달하자는 것을 중심적으로 생각한 것 같다. 찍어야 할 분량, 보여줄 분량이 많아서 영화보다 기민하게 판단해야 했고, 빠르게 결정을 해야 했다. 그런 게 큰 차이였던 것 같다."
'닥터 브레인'은 천재 과학자 세원(이선균)이 자신의 아내(이유영)와 아들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위해 타인의 뇌를 동기화하며 진실에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는 홍작가가 쓴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뇌, 동기화 등 어려울 수 있는 소재에 대해 김지운 감독은 "흥미로웠다"라고 선택한 이유를 전했다. -
"일단 사람의 뇌를 들여다본다는 소재가 무척 흥미롭지 않나. 그림을 봤는데, 그래픽 노블 같은 느낌이었다. 제가 좋아하는 누아르 풍의 음영과 명암이 강조되는 스타일 속에서 극과 인물의 심리에 중점을 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이 웹툰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가기만 해도 잘 보여줄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뇌과학이라는 어려운 소재에 대해 "이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 다가갔다. 뇌과학 서적을 비롯해 뇌과학이라는 분야를 대중적으로 전달해 준 정재승 박사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일단 '사람의 뇌,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를 풀어야 했다. 뇌과학책에서 보니, 이런 실험도 있었다. 실험자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그 사진을 보고 생각을 하라고 하고, 뇌파를 연결해 모니터에 이미지를 띄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사진과 80% 흡사한 이미지가 떴다. 이런 실험 등을 전제로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하고, 스토리와 플롯이라는 전제하에 더 개연성 있도록 풀어가려고 노력한 것 같다." -
촬영할 분량이 많았다. 그래서 배우들과의 작업 속에서 더욱 인상 깊은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감정이 없는, 그러면서도 극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주인공 고세원 역을 맡은 배우 이선균에게 깊은 신뢰감을 전했다.
"고세원이라는 인물은 뇌의 이상 구조 때문에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비대하게 크고, 그로 인해 감정이나 두려움을 다루는 뇌의 부분이 위축되어 있는 설정이다. 차갑고, 무거운 느낌의 역할을 이선균이 잘 표현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너무 인물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고, 표현을 하지 않으면, 작품을 보는 관객이 따라가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조금씩 더 온기를 줘보자, 온도를 높여보자'는 이야기를 하며 고세원을 만들어갔다. 현장에서 캐릭터 고유의 설정을 유지하며, 이런 디렉션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이선균같이 스펙트럼이 넓고, 이해력이 뛰어난 배우이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선균은 약간 중산층의 평범한 스탠더드, 호감형의 중년의 남자 같은 면을 편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이 배우에게 진입장벽이 높지 않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좋은 장점이 있는 배우인 것 같다. '닥터 브레인' 작업을 통해 이를 본인 스스로 증명한 것 같다." -
김지운 감독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닥터 브레인'에서 연출이었고, 각본, 프로듀서의 역할까지 임했다. "한 편을 온전히 알게 된 느낌"이라고 이에 대해 밝혔다.
"감독만 했을 때는 신경 안 써도 될 부분들에 대한 것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계속 가져가야 해서 어떤 부분에서는 집중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지만, 한 편의 드라마, 영화, 콘텐츠가 나오는 전 과정을 꿰뚫어 보며 좀 더 전체적인 균형을 잡는 것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좀 더 스토리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또렷하게 선명해진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닥터 브레인' 시즌 2에 대한 생각도 있을까. 김지운 감독은 구체적인 질문보다 시즌 1의 엔딩이 시즌 2를 예고하기보다 "관객이 '이건 또 누구의 머릿속이 아닐까?'라는 재미난 상상을 하길 바랐다"라고 밝혔다. 최근 50분의 중단편 영화 '온택트'(2020)부터 시리즈물인 '닥터 브레인'까지 연이어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김지운 감독은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그 도전은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제 전작을 보면, 계속해서 장르를 바꿔왔다. 전작에서 액션을 했다면, 그것과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한 인물의 감정을 쫓아가는 작품을 하다가, 좀 더 뻥 뚫린 넓은 공간에 있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 '놈놈놈'을 하게 되는 식이다. 이미 완성된 작품, 대중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에 기대어 성공이 보장된다고 해도, 그것은 내가 작업하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사실 호기심이다. 다음이 궁금하기 때문에 영화적 감수성이 뭉쳐지고, 저 배우가 이 캐릭터를 하면 어떨까라는 새로운 궁금증이 다음 작품을 하게 되는 힘이 되고, 동력이 되는 것 같다."
한편, '닥터 브레인'은 지난 11월 4일 애플TV+를 통해 공개됐다. 애플TV는 손바닥만큼 작은 크기의 하드웨어다. 이를 통해 4K의 해상도, 돌비 애트모스 등 최상의 화질과 음질을 경험할 수 있다. 기존 애플 제품과 연동이 되는 것도 장점. 애플TV+는 넷플릭스, 웨이브 등의 OTT 서비스의 형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애플TV+는 애플TV 외에도 다양한 디바이스에서 접속해 이용할 수 있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