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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을 연출한 김성호 감독은 극 중 나무 역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오디션에는 몇백 명이 몰렸고, 4차에 걸친 오디션을 진행했다. 그 고민의 결과는 '홍승희'였다. "나무가 가진 에너지"를 홍승희에게서 느꼈다. 그 에너지는 맑았고, 밝았고, 그러면서도 나무처럼 단단했다. '깡'승희라고 말한 이유다.
'무브 투 헤븐'은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유품정리사 그루(탕준상)가 그의 후견인 상구(이제훈), 친구 나무(홍승희)와 함께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이사를 도우며 그들이 미처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남은 이들에게 대신 전달하는 과정을 담았다. 죽음은 외롭게 다가오기도, 갑작스레 다가오기도 했다. 남은 이들은 죽은 자와 남겨진 물건으로 대화해야 했다.
홍승희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다. "마음이 아프고, 슬프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고, 웃기기도 했고요. 가장 크게 매력을 느낀 부분은 에피소드 식으로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잖아요. 그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접해보기도, 인터넷을 통해 보기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느낌이었고요. 그 자체가 큰 매력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공감했고, 슬펐고, 분노했고, 재미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
- ▲ 나빌레라·무브투헤븐 홍승희, “류준열 선배요? 친해지고 싶어요” move to ‘홍승희’ [픽콘 프로필]
홍승희는 나무 역에 오디션을 통해 발탁됐다. 1차부터 4차까지 진행된 오디션에 홍승희는 "많이 내려놓고" 임했다. "되면 좋고, 아니면 내 것이 아닌 거지"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오디션 1차 때 준비한 게 생각이 나는데요. 나무가 말이 되게 많아요. 쉴 새 없이 다다다다 얘기하는 부분도 많고. 대사가 긴 부분이 있거든요. 그 중 몇 개를 발췌해서 오디션 대본량이 꽤 많았어요. 그런데 어떤 걸 시키실지 모르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오디션에서 연기할 때, 대본을 안 보고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집중이 되거든요. 외워야 하는데 대사가 기니까 안 외워지는 거예요. 오디션을 앞두고, 저녁에 집 앞 대로변을 산책할 겸 걸으면서 소리 내서 대본을 외웠어요. 차들이 막 지나다니는 길 위에서 혼자 대본을 외우면서 걸었거든요. 그렇게 준비를 한 기억이 있어요."
나무(홍승희)는 그루(탕준상)를 지켜주는 친구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컸고, 그루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지고 있지만, 이상한 아이가 아닌 다르고 특별한 아이로 나무에게는 비쳤다. 그래서 수상한 삼촌 상구(이제훈)로부터 그루를 지켜내려는 책임감 강한 인물이다. -
홍승희는 나무에 대해 "그루의 사회적인 통역사"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그루가 가진 감정과 생각을 사회적인 언어로 전달해줄 수 있는 통역사 같은 친구라고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그걸 가장 중점으로 두고 생각했고요. 사소한 일들에 기죽지 않고, 밝고, 맞는 건 맞다, 아닌 건 아니다, 이렇게 소리칠 수 있는 당찬 친구라고 생각하고 나무를 준비했어요."
싱크로율도 높았다. 홍승희는 "어느 선을 넘어간 나무로서의 부분은 물론 만들어낸 거지만, 기반이 되는 만들어낼 수 없는 에너지는 제 자체가 그런 에너지를 가진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 에너지를 갖고 있어서 쫄 지 않고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100%는 아니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싱크로율이 꽤 높지 않나 싶습니다"며 웃음 지었다.
돈을 노리고 후견인을 승낙한 상구와 나무는 시종일관 부딪힌다. 불법 격투기 선수인 상구가 혹시라도 그루에게 위해가 될까봐 '다다다다' 많은 말로 경고를 전해야했다. 선배 이제훈에게 후배 홍승희는 그렇게 나무처럼 대했다. 홍승희가 '무브 투 헤븐'을 통해 연기적으로 얻게 된 부분을 "깡다구"라고 말하는 이유기도 했다.
"엄청 선배님이시잖아요. 그런데 제가 막 대들고, 소리치고, 해야 하는 장면이 많았거든요. 선배님께서 굉장히 자상하고 따뜻하게 '편하게 해'라고 말씀주셔서 제가 더 굴하지 않고 보여드릴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감사한 마음이 컸어요. 아무리 연기라지만, 현장에서 선배님께 소리치고 그런걸 해내면서 어떤 상황이 와도 자신감있게 해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약간의 걱정이 있었는데, 부담없이 연기를 하게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케미도 그렇게 살아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
죽음에 대한 여러가지 단면이 담겨 있다. 어떤 청춘은 돈을 벌기 위해 현장에서 일하다 정당한 댓가도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다. 어떤 엄마는 아들을 생각하며 홀로 죽음을 맞았다. 어떤 여자는 데이트 폭력으로 간절히 도움의 손길을 뻗었지만 결국 죽음을 맞게 됐다. 홍승희는 모든 에피소드를 떠나보내기가 힘들었다고 기억한다.
"다음 에피소드를 읽으려면 집중을 해야하는데, 앞선 에피소드를 보내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남는 에피소드를 하나만 꼽자면, 기사로도 많이 봤었지만, 남자친구로부터 죽음을 당했던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슬프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고, 그 에피소드가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뉴스와는 또 다른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무브 투 헤븐'을 통해 홍승희 역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사실 그냥 하루하루를 보내고, 살아있으니 사는 거잖아요. 살면서 뭔가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가 관련된 영상을 보거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잖아요. 그리고 그때 다시 한번 삶에 대한 소중함, 하루하루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런 부분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헛되게 보내지 말아야지. 오늘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
'무브 투 헤븐' 속에서 그루는 노란 상자에 죽은 이의 중요한 물건들을 담는다. 수많은 짐들 중 노란 상자 속에는 죽은 이의 시간이 담겨있는, 남겨진 이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담겨진다. 홍승희는 이 노란 상자 속에 자신의 어떤 물건을 담고 싶을까.
"촬영하면서도 문득 생각을 해봤거든요. 그런데 거창한 게 떠오르지는 않더라고요. 거창한 것보다 진짜 사소한 것들이 먼저 생각이 났어요. 그 사소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어쩌면 가장 소중하고, 가진 것 중에 가장 값진 게 아닐까 싶어요. 가장 먼저 넣을 것은 사진 같아요. 요즘에 '인생네컷' 진짜 많이 찍거든요. 보이면 찍어요. 그렇게 친구들과 찍은 많은 사진들, 가족과 찍은 사진들을 가장 먼저 담고 싶어요. 그리고 또 배우 길을 걸으며 쌓아온 대본들. 이런 것들을 박스에 담지 않을까 싶어요. 이 두 가지를 생각해봤습니다."
홍승희는 올해 tvN 드라마 '나빌레라'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을 통해 대중과 만났다. 두 작품 모두 청춘의 모습이었지만, 취업을 준비하며 벽에 부딪히는 은호('나빌레라')와 그루와 함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모험을 떠나는 나무('무브 투 헤븐')은 다른 결이었다.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고, 감사했어요. '나빌레라'에서 은호를 하면서, 수많은 심은호로 살아가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어요. 나무는 그루의 조력자 같은 느낌으로 세상으로부터 그루를 지켜주려는 친구로 느껴졌고요. 이 둘을 다르게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 두 친구가 각자 어떻게 살아가고, 이들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그런 것들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
앞선 인터뷰에서 홍승희는 올해 목표로 '햇빛이 잘 드는 남향집으로 이사가는 것'을 말했다. 자취 중인 그는 '나혼자 산다'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 출연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기회가 되어서 예능에서도 인사를 드리게 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다. 그의 남은 올해는 어떤 계획이 있을까.
"아직 정해진 것은 없어요. 빨리 정해져서, 올해가 가기 전에 찾아뵙고 싶어요. 지금도 가장 1순위는 사실 청춘물, 학원물을 해보고 싶어요. 나무와는 또 다른 밝음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 또 사연 있는 친구 역할을 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고요."(웃음)
홍승희는 겸손하게 전했지만 '무브 투 헤븐' 속에서 잠깐 등장하는 스킨 스쿠버 연기를 위해 자격증을 딸 정도로 연습했다. 작은 일에도 노력하는 홍승희가 '깡다구'로도 무장했다. 그의 밝은 에너지가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시청자들에게 전해줄 소중한 경험을 더욱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