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헬스

AI 영상 진단, 의료의 판을 바꾸다

기사입력 2025.11.18 06:00
에이지테크 Part 3-1
97% 정확도, 40% 시간 단축…AI 영상진단으로 본 디지털 의료기기 혁신
  • AI 영상 진단은 국내 AI 의료 기술 가운데 가장 빠르고 넓게 상용화가 이뤄진 분야다. 2018년 AI 의료기기가 처음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등록된 AI 기반 영상 진단 소프트웨어는 186개를 넘어섰다. 폐암, 유방암, 뇌출혈 등 주요 질환의 진단 정확도는 97~99%에 달하며,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판독 시간이 40% 이상 단축됐다. AI 영상 진단이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의료 시스템의 흐름을 바꾸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기사에서는 기술 진화부터 산업 변화, 제도 과제, 임상 현장의 변화까지 AI 영상 진단이 어떻게 의료의 판을 바꾸고 있는지 살펴본다.

  • 이미지=AI 생성
    ▲ 이미지=AI 생성

    기술 진화: 판독에서 의사결정으로

    도입 초기 AI 영상판독 기술은 병변의 존재 여부를 표시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병변 범위 정량화, 위험도 예측, 과거 영상과의 비교·분석 등 기능이 고도화하며 ‘판독 보조’에서 ‘진단 의사결정 지원’으로 단계가 이동하고 있다. 단일 시점의 영상만 해석하던 기술은 이제 과거·현재 영상을 함께 분석해 변화량과 진행 속도까지 파악하며 임상 판단을 돕는다.

    적용 범위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초기에는 흉부 엑스선과 CT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MRI, 초음파, 안저 영상, 유방촬영술 등 대부분의 영상 진단 영역으로 넓어졌다. 한 영상에서 여러 질환을 동시에 탐지하는 멀티모달 AI도 등장했다. 당뇨망막병증·황반변성·녹내장을 90% 이상의 정확도로 분석하는 안저 영상 기반 AI가 대표적이다.

    최근 영상 진단 AI는 단일 장기·단일 질환 중심 분석을 넘어 ‘환자 단위의 종합 리스크 프로파일’을 제시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부 솔루션은 영상 데이터와 기본 활력징후, 과거 병력 등을 결합해 ▲악성 가능성 ▲병변 성장 속도 ▲추가 검사 필요성 등을 예측하며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이는 AI가 단순히 ‘영상의 픽셀’을 읽는 도구를 넘어 의료 데이터를 통합해 ‘진단의 앞단’을 재편하는 기술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 구조: 의료기기 시장의 중심축 변화

    영상 진단 AI의 고도화는 의료기기 산업 구조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기기 판매’ 중심 모델에서 SaaS(Software as a Service) 기반 구독형 모델이 확대하며, 의료기기 시장의 중심축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루닛, 뷰노, 딥노이드, 코어라인소프트, 뉴로핏 등은 폐암·유방암·심혈관·뇌 질환 등 특화 영역에서 SaaS 기반 영상 진단 AI를 개발하며 국내외 시장 확장을 시도 중이다. 이들 상당수가 전통적 의료기기 제조사가 아닌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는 점은 산업 구조 변화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SaMD(Software as a Medical Device) 특성을 반영한 업데이트·보안 패치·유지보수 기준 마련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기술이 빠르게 고도화되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규제·운영 기준도 함께 정비돼야 하기 때문이다.

    도입 환경도 변화했다. 초기에는 상급종합병원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영상의학 전문의 확보가 어려운 지역·중소 병원까지 확산하고 있다. 이는 향후 시장 확대의 중요한 동력이 될 전망이다.

    제도·정책: 규제 혁신은 빨라졌지만, 수가는 제자리

    정부도 기술 확산 속도에 맞춰 제도 정비를 이어가고 있다. 식약처는 AI 적용 의료기기 분류를 11개에서 153개로 확대했으며, 2022년에는 한국 주도로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MDRF)의 머신러닝 의료기기 기준안을 승인받았다. 2025년 1월에는 생성형 AI 기반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도 세계 최초로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닥터앤서’ 프로젝트를 통해 AI 진단 소프트웨어 개발을 지원해 왔고, 혁신의료기기 제도는 조기 시장 진입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AI 영상 진단 확산의 가장 큰 병목은 건강보험 수가다. 식약처 허가 제품이 186개에 달하지만, 보험수가를 인정받은 사례는 극히 일부에 그친다. 이로 인해 많은 기업이 매출 구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국내 임상 레퍼런스 부족은 해외 진출에도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SaMD 특성에 맞춘 규제 기준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지속적 업데이트·보안 패치·클라우드 기반 운영 등 기술적·법적 책임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알고리즘 설명 가능성, 의사-환자 관계 영향 등 윤리적 기준도 확립되지 않았다.

    정부는 건강보험 등재 기준 개편을 논의 중이며, 임상적 유효성이 검증된 AI 기술에 대해 시범 수가나 별도 보상 체계를 검토하고 있다.

    임상 변화: 품질 표준화와 접근성 확대

    AI 영상 진단 기술은 의료 패러다임을 ‘사후 대응’에서 ‘사전 개입’ 중심으로 전환하는 흐름을 견인하고 있다. 조기 진단은 생존율 향상뿐 아니라 의료비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 폐암·유방암 등 중증 질환에서 AI는 수 밀리미터 크기의 병변도 탐지해 조기 발견 가능성을 높인다.

    의료 형평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전문 인력 확보가 어려운 지역·중소 병원에서는 AI 기반 판독 시스템이 일정 수준의 진단 품질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여러 지역 의료기관에서는 흉부 엑스선 AI를 도입해 폐렴·폐결절·흉막질환 등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선별하며 전문의 부재 시 판독 지연을 줄이고 있다. 숙련도에 따라 편차가 컸던 판독 품질이 일정 수준으로 표준화되면서 지역 의료기관의 진단 접근성 역시 한층 높아졌다.

    의사와 환자 간 소통도 개선되고 있다. AI가 병변 위치·의심도 등 시각화된 정보를 제공하면서 의사는 더욱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고, 환자의 이해도와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준비된 기술, 남은 과제는 확산

    AI 기반 영상 진단 기술은 이미 임상 현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러한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으로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가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수가 체계 정비, SaMD 특화 규제 기준 확립, 중소·지역 의료기관 도입 기반 마련 등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기술의 방향성은 이미 정해졌지만, 그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제도와 현장이다. 의료 패러다임 전환의 분기점에 선 지금, 기술 발전이 만들어낸 가능성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제도적으로 풀어갈지가 향후 변화를 좌우할 전망이다.

    ※ 본 기사는 디지틀조선일보 창립 30주년 특집 ‘에이지테크 시리즈’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