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안에서 환자를 실시간으로 지켜본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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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한림대성심병원 7층 병동 간호 스테이션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환자 A 씨의 심박 수치가 급격히 떨어졌다는 알림이었다. 간호사는 병실로 달려가기 전, 스마트폰으로 환자의 심전도를 실시간 확인했다. 이상 신호는 명확했고, 즉시 담당 교수 판단하에 심박동기 삽입 시술이 이뤄졌다. 다음 날, 환자는 안정적인 상태로 회복했다.
스마트워치처럼 개인 건강 데이터를 수집하는 웨어러블 기기는 이미 일상화됐지만, 병원 진료에 직접 연결되기는 어렵다. 의료기기 인증, 법적 책임 구조, 데이터 신뢰성, 수가 적용 등 복합적인 제도적 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웨어러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이를 진료에 직접 연계하는 병원 사례는 드물다. 이번 편에서는 한림대성심병원이 도입한 병원형 웨어러블 시스템 ‘씽크(thynC)’를 통해, 가능성과 과제를 함께 살펴본다.
병동 안으로 들어온 웨어러블
씽크는 의료용 웨어러블 기기다. 10g 미만의 초경량 센서를 환자 몸에 부착해, 심전도·체온·산소포화도·호흡수·혈압 등 주요 활력 징후를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이 데이터는 병동 내 무선 네트워크(BLE·Wi-Fi)를 통해 간호 스테이션이나 의료진의 스마트폰으로 전송되며, 전자의무기록(EMR)에도 자동 저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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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는 활력 징후를 측정한 뒤 수기로 입력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데이터 누락이나 표기 오류가 발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씽크 도입 이후 자동 연동이 가능해지면서 오류가 줄고, 간호사들은 직접 간호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됐다.
한림대성심병원 오신명 수간호사는 “예전에는 환자가 증상을 말해야만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수치 변화만으로 먼저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염병 병실처럼 직접 접촉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병실 밖에서 환자 상태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변화다.
기술적으로도 차별성이 뚜렷하다. 센서는 환자가 움직여도 데이터 손실이 없도록 설계됐으며, 환자 위치 추적과 낙상 감지 기능도 내장돼 있다. 저장된 데이터는 고급 암호화(AES), 통신 무결성 검증, RAID 기반의 이중 저장 체계를 통해 안전하게 관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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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병동의 현실적 적용과 효과
현재 씽크는 한림대성심병원 42병상에 적용돼 있으며, 2021년 7월부터 2025년 7월 초까지 누적 4,683건의 센서 착용이 이뤄졌다. 병동 외에도 응급실, 투석실로 사용 범위가 확대됐고, 외래 및 퇴원 환자까지 관리하는 ‘병원 전주기 스마트 모니터링’ 체계 구축도 추진 중이다.
실제로 의료진은 응급 상황에서의 대응 속도와 정확성 향상에 의미를 두고 있다. 한림대성심병원 부정맥센터 한상진 센터장은 “기존에는 병동 내 장비에서만 심전도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뇌경색 환자의 심박 이상을 감지하고 즉시 응급 처치에 나선 경험을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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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사례로, 실신 원인을 찾지 못한 고령 환자가 입원 직후 씽크를 통해 부정맥이 확인돼 응급 심박동기 삽입으로 위기를 넘긴 경우도 있었다. 이 외에도 심전도 이상을 조기에 감지해 약물 투여나 긴급 시술로 이어진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하루 평균 알림 발생 건수는 환자 수나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 정량화는 어렵지만, 의료진은 “이상 신호에 즉각 대응할 수 있어,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데 실질적인 변화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기술에서 예측으로: 진료의 전환점
씽크는 단순 모니터링을 넘어, 예측 기반 진료 도구로 확장하고 있다. 개발사인 씨어스테크놀로지는 씽크를 통해 수집된 생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심정지 예측 ▲악성 부정맥 감지 ▲심방세동 조기 진단 알고리즘을 개발 중이다.
한상진 센터장은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 상태를 예측하는 AI 진단 모델이 가능해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외래 환자와 재택 환자까지 모니터링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현재 씽크는 수가 적용을 받는 의료기기로 운영되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제도적 과제도 많다. 의료기기 인증과 데이터 상호운용성 확보, 법적 책임 구조의 명확화, 수가 체계 고도화 등이 그 과제다.
기술적 한계도 존재한다. 의료진은 환자의 체형이나 자세에 따라 심전도 노이즈가 발생하거나, 충전식 배터리 잔량 표시, 방수 기능, 제세동기와의 연동 등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직 남은 과제들, 그리고 첫걸음
전편(Part 2-2)에서는 웨어러블 데이터가 병원 진료에 연계되지 못하는 제도적 장벽을 짚었다. 이번 편은 그 장벽을 실질적으로 넘기 시작한 현장의 사례다.
아직 모든 병원이 이런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아니지만, 웨어러블 데이터는 더 이상 병원 밖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기술력과 신뢰, 그리고 제도의 다리가 함께 놓인다면, 웨어러블은 병원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의료의 일상’이 될 수 있다. 그 시작점에 바로, 스마트 병동이 있다.
※ 이 기사는 디지틀조선일보 창립 30주년 특집 ‘에이지테크 시리즈’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