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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로 보는 역사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가 탄생

기사입력 2017.11.27 10:44
  • / 사진 = 우정사업본부 사이트
    ▲ / 사진 = 우정사업본부 사이트
    1884년 11월 18일(음력 10월 1일) 역사적인 우정총국이 업무를 개시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가 탄생한다.

    홍영식(洪英植)을 중심으로 한 신진개혁파 정치 지도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1884년 11월 18일(음력 10월 1일) 역사적인 우정총국이 업무를 개시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가 탄생한다.

    철종 6년(1855년) 영의정 홍순목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홍영식은 남달리 총명하였고 개화의 선각자로서 한국 근대 우편과 통신의 창시자이다. 문위우표는 이 때 발행된 우표의 액면이 당시의 화폐 단위인 '문(文)'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때 우리 정부는 5종의 우표 인쇄를 일본 대장성인쇄국에 의뢰하여 우정총국의 개국과 동시에 발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우정총국 개국일까지 5문과 10문 2종만이 도착되어 한성(서울)과 인천 간에 체송된 우편물에 사용되었을 뿐 25문, 50문, 100문의 3종은 같은 해 12월 4일 발발한 갑신정변의 실패로 우정총국이 폐쇄되는 바람에 발행되지 못했다.

    20여 일의 단명에 그친 근대 우편제도

    1884년 11월 18일 우정 사업 개시와 함께 발행되었던 대한민국 최초의 문위우표가 갑신정변의 실패로 같은 해 12월 8일 왕명에 의하여 폐지됨으로써 모처럼 이룩한 신식 우정 사업제도는 불과 20여 일 만에 그 명을 다했다.

    우정 사업을 시작한 지 18일째 되던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설 축하연을 계기로 개화파의 홍영식,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이상재 등이 일으킨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여기에 가담한 자는 물론 이에 연루된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며 증거를 없애기 위하여 그 동안 오간 서신 등을 철저히 없애거나 불태워 버려 당시에 사용한 우편물의 실체봉투나 우편 사료가 될 만한 물증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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