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격차 좁혀진 소화성 궤양…초고령 여성서 역전에도 진료 지침은 ‘성별 공백’
68편 범위 문헌 고찰·국제 진료 지침 13개 분석
성별·폐경 여부, 공식 위험평가 체계에 반영 안 돼
고령 여성의 소화성 궤양 위험이 높아지고 있지만, 현재 주요 국제 진료 지침은 성별과 생애주기를 공식 위험평가 체계에 반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와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 김병욱 회장(가톨릭의대), 방창석 한림대의대 교수(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 진료 지침개발위원장) 공동 연구팀은 소화성 궤양의 성별 차이를 다룬 연구 68편을 종합 분석한 범위 문헌 고찰(scoping review)을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Gut and Liver에 지난 6월 30일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됐다.
분석 결과, 과거 약 2대 1 수준이던 소화성 궤양의 남녀 환자 비율은 최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좁혀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논문에 포함된 일부 국내 연구에서는 80세 이상 여성의 출혈성 소화성 궤양 발생률이 같은 연령대 남성을 넘어섰다.
전체 소화성 궤양 발생률과 질병 부담은 여전히 남성이 높았다. 다만 남성의 소화성 궤양 발생률이 여성보다 빠르게 낮아지면서 고령층에서는 남녀 격차가 줄었다. 일부 연령대와 질환 유형에서는 여성의 발생률이 남성보다 높아지는 변화도 나타났다.
중증 합병증이 발생한 뒤의 예후에서도 성별 차이가 보고됐다. 논문이 인용한 국내 전국 단위 연구에서는 출혈성 소화성 궤양 환자의 30일 사망률이 여성 3.20%, 남성 1.83%였다. 천공성 소화성 궤양 환자의 30일 사망률은 여성 10.03%, 남성 2.03%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폐경 이후 에스트로겐 감소로 위·십이지장 점막의 보호 기능이 약해지고, 고령 여성의 약물 사용이 늘어나는 점 등이 이러한 변화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논문이 인용한 국내 연구에서는 65세 이상 소염진통제 사용자의 약 75%가 여성이었다. 수술로 조기 폐경을 경험한 여성은 같은 연령대의 폐경 전 여성보다 소화성 궤양 위험이 약 38% 높았다. 고령 여성에서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 사용이 늘어나는 점도 출혈과 합병증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요인으로 제시됐다.
치료 효과에서도 성별에 따른 차이가 관찰됐다.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3개 연구를 종합한 탐색적 분석에서는 양성자펌프억제제(PPI)가 여성의 위장관 출혈 위험을 24%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RR 0.759, 95% CI 0.623-0.925). 반면 남성에서도 위험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는 않았다(RR 0.797, 95% CI 0.631-1.008). 연구팀은 분석에 포함된 연구가 3편에 불과해 확정적인 결론이 아니라 추가 검증이 필요한 가설 생성 수준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고령 여성의 위험 증가와 성별 차이를 보여주는 근거가 축적되고 있지만, 주요 국제 진료 지침에는 이러한 변화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연구팀이 소화성 궤양과 상부위장관 출혈, 위장 보호 관련 주요 국제 진료 지침 13개를 검토한 결과, 성별이나 폐경 여부, 호르몬 상태를 공식 위험평가 변수로 포함한 지침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지침은 고령, 궤양 병력, 소염진통제(NSAIDs)와 항혈전제 사용 등을 주요 위험 요인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성별과 생애주기에 따른 위험 변화는 반영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최근 축적된 근거를 토대로 성별과 폐경 여부 등 생애주기를 고려한 진료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병욱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 회장과 방창석 진료 지침개발위원장은 “현재 약제성 소화성 궤양 진료 지침을 새롭게 개발하고 있으며, 성별과 폐경 여부 등 호르몬 상태를 중요한 변수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항혈소판제나 항응고제를 사용하는 고령 여성은 중증 합병증과 사망 위험이 높은 만큼, 70세 이상 여성에서는 위산분비억제제 등 위장 보호 전략과 성별에 따른 약물 반응을 함께 고려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질병관리청과 국립보건연구원의 ‘성차 기반 소화기계질환 진단·치료 기술 개선 및 임상 현장 적용’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논문에는 연구와 관련한 이해충돌이 없다고 명시됐다.
다만 이번 연구는 연구 설계와 대상이 서로 다른 기존 연구 68편을 종합한 범위 문헌 고찰이다. 성별이나 폐경이 소화성 궤양 발생과 합병증을 직접 유발한다는 인과관계를 확인한 연구는 아니다. 또한 PPI의 성별 차이는 3개 연구를 종합한 탐색적 분석 결과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성별과 생애주기를 반영한 위험평가 체계와 진료 지침의 임상적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