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눈동자'에서 형사 미경 역을 맡은 배우 김영아 / 본인 제공

*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눈동자'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배우 생활 30여 년 만에 처음 형사 캐릭터를 맡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남자 형사에 비해 부각된 여자 형사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영화 '눈동자' 속 캐릭터를 보고 배우 김영아가 스스로 질문했다. '눈동자'는 시력을 상실해 가는 서진(신민아)이 쌍둥이 동생 서인의 죽음 뒤 숨겨진 진실을 바로 마주 보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다. 그 속에서 김영아가 맡은 형사 '미경'은 사건을 해결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사건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서진이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에 가깝다. 그렇기에 미경 하면 떠오르는 장면도 "괜찮아요?"라며 손을 내미는 모습이다.

김영아가 영화 '눈동자'에 대해 갖는 첫인상 속에는 그렇게도 지켜주고 싶어 했던 서진 역의 배우 신민아가 있다. 그는 "'눈동자' 전에 '악연'에서 짧게 만났다. 배우들이 현장에서 처음 만나면 어색하고, 서로 탐색하고, 그런 지점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신민아와) 보자마자 좋았다. 그래서 헤어질 때 '아쉬워요'라며 헤어졌다. '다음에 길게 보자'라고. 그런데 신기하게 '눈동자'에서 제가 쭉 곁을 지켜주는 인물을 맡았다. 짧게 만났을 때 좋은 느낌의 배우와 긴 시간 붙어있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저희 MBTI가 하나만 빼고 갔다. 그래서 더 잘 맞았나 보다"라고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 지었다.

영화 '눈동자' 스틸컷 / 쏠레어파트너스,(주)바이포엠스튜디오

신민아와의 인연만큼이나 김영아에게 특별했던 건 '미경'이라는 인물이었다. 데뷔 후 30년 가까이 배우 생활을 했지만, 형사 역할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질문 역시 '어떻게 연기할까'가 아니었다.

"영화 속 여자 형사는 왜 인정받기 어려울까." 그는 그 이유를 '남자 형사처럼 보이려는 데 있다'라고 분석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믿을 수 없는 이야기(Unbelievable)'를 봤는데 여자 형사들이 한국 작품에서 보던 모습과 달랐다. 정장을 입고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보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들이었다. '스토킹 피해자를 가장 든든하게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니 엄마나 언니 같은 존재가 떠올랐다. 그래서 미경도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진이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다."

새로운 해석이 관객에게 받아들여질지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시사회 이후 형사 역할을 많이 해본 배우에게 "지금까지 본 여자 형사와 달라서 좋았다. 극의 중심을 잘 잡아줬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안도했다. 김영아는 "그 말을 듣는데, 개인적인 나의 목표를 이룬 것 같았다"라고 당시의 마음을 전했다.

영화 '눈동자' 스틸컷 / 쏠레어파트너스,(주)바이포엠스튜디오

그 목표를 만들어낸 건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었다. 김영아는 연극영화과 입시에 실패한 뒤, 입학하게 된 다른 대학교에서 복학생 선배들의 권유로 대학 축제 무대를 서게 됐다. 그 무대를 본 사람에게 뮤지컬 제안을 받고, 그 뮤지컬 무대 위 자신을 본 연출에게 극단을 제안받았다. 실험적인 작품을 올리는 극단 생활을 이어가다, 이후 다시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며 배우의 길을 이어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매체 연기로 넘어올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다. "그 얼굴로는 안돼, 고치고 와", "무슨 자신감이야?"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매체를 떠나 공연 무대에만 섰다. 40대가 되어서야 드라마 '미스 마: 복수의 여신'으로 다시 매체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멜로가 체질'의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소진 역을 만나며 전환점을 맞았다. "'멜로가 체질'은 저를 개성으로 봐준 첫 작품이었다. 그전까지는 이 업계를 떠나야 하나 고민한 적도 많았는데, 그 작품을 만나면서 '나도 계속할 수 있겠구나'라는 용기를 얻었다."

jtbc '멜로가 체질'(좌), MBC '언더커버 하이스쿨' 속 배우 김영아의 모습 / 해당 드라마 영상 캡처

힘들었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곁을 지켜준 남편이자 배우 진수의 존재였다. 두 사람은 대학로에서 배우들에게 필요한 발레 수업 중에 만났다. 호감 가득한 첫 만남은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여러 차례 만남을 갖다 마음을 확인하고 부부의 연까지 맺게 됐다. 현재 배우인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매니저이자 팬이다. 처음 배우 김영아의 인터뷰 제안을 한 것도 남편이자 배우이자 그의 매니저인 진수였다. 그는 넷플릭스 미국 시리즈 '더 리크루트' 시즌2 현장에도 함께했다. 당시를 그는 "(김영아가) 연기하는 것을 보고 감독님의 태도가 바뀌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여기에서도 통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더 리크루트 2'가 공개된 후, 함께한 동료 중 세 명이나 '김영아를 꼭 봐야 한다'고 샤라웃(공개적으로 칭찬) 해주셨다"라고 기억했다.

김영아는 "미국에서는 얼굴 근육을 많이 사용하는 연기를 한다. 그분들에게는 제 연기가 낯설었을 수도 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렇다고 따라가려 하지 않았다. 반반 섞어서 사용한 것 같다. '미국 작품에 나간다고 미국처럼 할 것이냐, 한국에서처럼 할 것이냐'라고 물었을 때, 따라 한다고 그렇게 될 수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적당히 녹여서 갈 수 있었다"라고 미국 촬영 현장을 떠올렸다.

영화 '눈동자'에서 형사 미경 역을 맡은 배우 김영아 / 본인 제공

형사 역할을 맡으면서도, 미국 촬영 현장에 임하면서도, 그는 '처음'을 '두려움'으로 대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기보다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임했다.

"매번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뭘 하든 하나씩 비틀어 보려고 한다. 똑같이 하면, 주워 먹는 느낌이 들더라. '멜로가 체질'에서도 정말 짧게 나왔다. 그런데 아무리 짧은 장면이라도, 그 장면에서 대사가 단 두 마디밖에 없더라도, '이 두 마디 기억에 남게 하자'고 생각했다. 짧은 장면이라도 하나 정도는 다르게 해보자. 그 마음이 지금까지 저를 버티게 해준 것 같다."

김영아는 "매일매일 해도,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데 조금씩 발견하는 게 있다. 어미와 쉼표까지 스스로 찾아가는 거다. 지루한 작업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매일 속에서 발견하는 것들이 있다"라고 자신만의 생각을 전한다. 그렇게 김영아는 '눈동자' 속 여형사를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자신만의 답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그가 찾아낼 답들에 신뢰감 가득한 눈으로 기대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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