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이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내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룹은 해당 마케팅의 고의성을 입증할 증거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지만, 마케팅 검증과 내부 통제 체계의 구조적 허점을 인정하며 쇄신을 약속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26일 서울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과 광주 시민, 국민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 “고의성 판단 유보”…휴대전화 미제출로 조사 한계

신세계그룹은 사건 발생 직후인 지난 19일부터 일주일간 내부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대상은 마케팅 기획 실무진과 결재라인 임직원 등 총 15명으로, 이메일과 업무용 노트북 포렌식, 사내 메신저 분석, 대면조사 및 교차 검증이 이뤄졌다.

조사 결과 논란이 된 ‘5·18 탱크데이’ 마케팅은 스타벅스코리아 커머스팀이 제안해 팀장, 담당 임원, 본부장, 대표이사를 거쳐 최종 승인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프로모션 논란과 관련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김경희

관련자들의 업무용 기기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현재까지 고의성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관련 직원 5명 가운데 3명이 개인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았고, 사내 메신저 기록도 단기간만 보관돼 초기 기획 과정의 대화를 확인하지 못하는 등 조사에 제약이 있었다고 그룹은 설명했다.

조사 과정에서는 일부 직원들이 논란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정황도 확인됐다. 그러나 신세계그룹은 이를 근거로 사전 공모나 특정 의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관련 직원들은 “기존 홍보 문구와의 운율을 맞추는 과정에서 작성된 문구로, 5·18은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며 고의성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그룹은 고의성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유보한 채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 4단계 승인도 걸러내지 못한 시스템…내부통제 부실 드러나

조사 결과 스타벅스코리아의 검증 체계 부실이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됐다.

해당 마케팅은 팀장, 담당 임원, 본부장, 대표이사로 이어지는 4단계 승인 절차를 거쳤지만 어느 단계에서도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승인권자는 디자인 시안이 담긴 첨부파일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결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과거 운영되던 법무 검토와 사회공헌(CSR) 관련 검증 절차도 누락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룹은 마케팅의 신속성과 실적 중심 문화가 우선되면서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검토하는 과정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최초 기획 단계에서 실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던 사안”이라며 “이번 사태는 특정 개인의 일탈보다 조직 차원의 검증 체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 임직원들이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열린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김경희

신세계그룹은 온라인상에서 제기된 일부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탱크 텀블러의 503mL 용량은 17온스(oz)를 환산한 수치이며, 제품명 역시 해외 제조사가 실제 물탱크 디자인에서 착안해 사용해 온 명칭이라는 설명이다.

미니 탱크 텀블러의 4월 16일 출시와 탱크 듀오 세트의 21% 할인율 역시 행사 일정과 가격 조정 과정에서 결정된 것으로 특정 역사적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 재발 방지·조직문화 개선 착수…신뢰 회복이 과제

정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룹 전반의 내부 통제와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전면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신세계그룹 구성원 모두가 우리 사회의 역사와 희생을 기억하고 국민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겠다”며 “내부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준도 더욱 높이겠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은 앞으로 마케팅 기획과 승인 과정에서 역사·사회적 민감성을 검토하는 절차를 강화하고, 법무·CSR 검증 체계를 포함한 내부 심의 프로세스를 전면 재설계할 계획이다. 또한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역사 인식 교육과 사회적 책임 교육을 확대해 조직문화 개선에도 나설 방침이다.

질의응답 과정에서는 광주 방문 가능성도 언급됐다. 그룹 측은 “현재는 철저한 진상 규명이 우선”이라면서도 “적절한 시점이 되면 광주를 찾아 직접 사과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세계그룹은 이번 사안과 관련한 조사 및 후속 조치 내용을 미국 스타벅스 본사와 공유하고 있으며, 향후 내부 통제 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오늘의 사과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삼겠다”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도록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마케팅이 여러 단계의 검토와 승인 과정을 거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걸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업 내부 통제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세계그룹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조직문화 개선과 검증 체계 재정비를 약속한 가운데, 향후 후속 조치의 실효성과 신뢰 회복 여부가 과제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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