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제내성균 감염 부담이 높은 아시아 지역에서 항생제 신약 도입이 전반적으로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약 개발 부족이 아니라, 각국의 허가 절차를 중심으로 한 제도 구조가 접근 시점을 늦추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서울병원 허경민 교수, 중앙대병원 이영호 교수 연구팀이 아시아 항생제 내성 감시 네트워크(ANSORP)와 함께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은 신규 항생제 22개 가운데 아시아 10개국에서 허가된 약제는 13개에 그쳤다. 연구 결과는 항균제 분야 국제학술지 International Journal of Antimicrobial Agents에 게재됐다.

아시아 10개국 항생제 신약 허가 현황. 국가별로 허가된 신약 수에 큰 차이를 보이며, 한국은 2개에 그쳤다. /이미지=삼성서울병원, 자료=ANSORP

연구에 따르면 국가별로 허가된 항생제 신약 수는 중앙값 3.5개(1~6개 범위)에 불과했으며, 대부분 국가에서 미국 승인 이후 실제 허가까지 3~5년의 시차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러한 허가 기반 접근성은 국가의 경제 수준과도 뚜렷한 연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연구팀은 국내총생산(GDP), 약가 수준, 의료체계 유형과 신약 수 사이에 유의한 상관관계가 없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한 재정 여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별 규제 및 도입 구조가 접근 시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한다.

연구에서 포함된 신약은 다제내성균 치료를 위해 개발된 신규 화학구조(NME) 항생제로, 세프타지딤/아비박탐, 세프톨로잔/타조박탐 등 베타락탐/베타락타마제 억제제 계열이 비교적 많은 국가에서 허가됐지만, 카바페넴 내성 아시네토박터균(CRAB)에 효과를 보이는 일부 약제는 일본·싱가포르·대만 등 제한된 국가에서만 허가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결과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신약이 개발된 이후 실제 각국에 도입되기까지 제도적 지연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이러한 지연이 치료 시 선택 가능한 항생제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같은 구조적 한계는 기존 연구에서도 지적돼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는 보고서 ‘Stemming the Superbug Tide’에서 항생제 시장이 기존 의약품과 달리 수익 구조가 제한되는 특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도 항생제를 공중보건적 자산으로 규정하며 기존 시장 구조만으로는 공급 유지에 한계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는 기존 방식과 다른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England)는 항생제 사용량과 관계없이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구독형 모델’을 도입해 공급을 유지하는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며, 미국 보건복지부(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도 유사한 보상 체계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국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이후에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 등재와 약가 협상을 거쳐야 실제 처방이 가능한 구조로, 신약 도입까지 추가적인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다만 이번 연구는 각국의 ‘허가 여부’를 기준으로 접근성을 분석한 것으로, 실제 임상에서의 사용 가능성이나 보험 적용 여부까지는 반영되지 않았다. 국가별 규제 환경 차이 역시 완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항생제 신약 접근성 문제가 단순한 개발 부족이 아니라, 허가와 보상 체계를 포함한 제도 전반의 구조와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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