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봄 길에 더 또렷해진 선택… '볼보 XC90'
볼보자동차의 플래그십 SUV 'XC90'은 2002년 첫선을 보인 이후 오랜 시간 안전성과 실용성을 중심으로 존재감을 이어온 모델이다. 화려함보다는 차분한 디자인과 공간 활용, 탑승자를 고려한 설계가 특징으로 꼽힌다. 경쟁이 치열한 국내 수입 SUV 시장에서도 꾸준히 선택받아 온 배경 역시 이 같은 성격과 맞닿아 있다.
이번에 만난 신형 XC90은 지난해 7월 출시된 부분변경 모델로, 큰 틀을 유지한 채 디테일을 다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동화 흐름을 반영한 디자인 요소와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선, 소재 구성 변화 등이 핵심이다. 특히 봄나들이 등 야외 활동이 늘어나는 시기에는 차량의 기본기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도심을 벗어나 교외로 향하는 과정에서 2열과 3열까지 이어지는 공간 활용성과 안정적인 승차감은 차량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경쟁 모델과 비교하면 방향성은 더욱 뚜렷하다. 주행 성능에 무게를 둔 BMW X5, 안락한 승차감을 강조한 메르세데스-벤츠 GLE와 달리 XC90은 균형 잡힌 주행 감각과 실용성, 안전에 초점을 맞춘다. 계절적 요인과 사용 환경까지 고려하면, 어떤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외관은 웅장한 체격감 위에 절제된 균형감을 더한 인상이다. 현대적인 플래그십 SUV의 비율 위에 볼보자동차 특유의 간결한 디자인 언어가 더해지면서, 과장되지 않은 고급스러움이 드러난다. 전동화 흐름을 의식한 듯한 디테일 요소들도 곳곳에서 확인되며, 브랜드가 지향하는 변화의 방향성을 은근하게 드러낸다.
전면부 변화는 신형 XC90의 인상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와 함께 범퍼, 펜더, 보닛 등 주요 요소들이 새롭게 다듬어졌다. 특히 프론트 그릴은 단순한 디자인 변경을 넘어 차량의 표정을 결정짓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사선 형태의 메시 인서트 패턴은 단정하면서도 입체적인 느낌을 주며, 브라이트와 다크 두 가지 테마에 따라 크롬 또는 블랙 하이글로시로 마감돼 서로 다른 분위기를 형성한다.
잠금 및 해제 시 순차적으로 점등되는 웰컴 및 페어웰 라이트 시퀀스는 기능적 요소를 넘어 감성적인 연출에 가깝다. 차량에 다가서는 순간과 떠나는 순간까지 일종의 의식처럼 구성된 점은 최근 프리미엄 SUV들이 강조하는 경험 중심 설계 흐름과 맞닿아 있다.
후면부는 전체적으로 정돈된 인상이다. 리어 램프는 톤이 한층 깊어지며 야간 주행 시 존재감을 드러낸다. 과도한 장식 대신 빛의 흐름과 윤곽으로 형태를 강조한 점은 북유럽 디자인 특유의 절제된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
테마 구성은 외관 성격을 더 명확하게 나눈다. 밝은 크롬을 활용한 브라이트 테마는 전통적인 고급감을 강조하는 반면, 블랙 하이글로시 중심의 다크 테마는 보다 현대적이고 차분한 인상을 만든다. 같은 차체지만 마감 방식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는 구조다.
휠 디자인 역시 변화 폭이 크지는 않지만 한층 더 우아하고 강인한 실루엣을 완성한다. 폴리싱 처리된 알루미늄, 블랙 하이글로시가 대조를 이루는 다이어몬드 컷 디자인은 독창적이고 기술적인 이미지를 더한다. 20인치와 21인치 휠 구성에 따라 시각적인 비례감도 달라져, 트림별 성격 차이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실내는 외관처럼 과시적인 변화보다는 익숙한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질감과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인상이다. '스칸디나비안 럭셔리'라는 표현이 단순한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는 점은, 실제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자연스럽게 체감된다. 수평형 대시보드를 중심으로 한 레이아웃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소재와 디테일에서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대시보드에는 새로운 세로형 송풍구 디자인과 함께 100% 재활용 폴리에스터를 사용한 텍스타일, 그리고 은은한 간접 조명이 더해진 우드 데코가 조화를 이룬다. 화려하게 드러내기보다 빛과 질감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우드 데코는 브라운 애쉬와 그레이 애쉬 두 가지로 구성돼 실내 색감에 따라 서로 다른 인상을 만든다.
야간에는 앰비언트 라이트가 실내 윤곽을 부드럽게 드러낸다. 강하게 드러나는 조명이 아니라, 시선이 닿는 부분만 은근하게 강조하는 방식이라 장시간 운전 시에도 부담이 적다. 센터 콘솔은 구조가 일부 조정되면서 무선 충전 패드의 위치와 컵홀더 배열이 개선됐고, 소소하지만 실제 사용 과정에서 체감되는 편의성이 높아졌다. 자잘한 수납공간도 늘어나면서 실내 정돈감이 한층 좋아졌다.
시트에 앉는 순간의 인상은 이 차량의 성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나파 가죽 시트는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착좌감을 동시에 제공하며, 신규 컬러인 카다멈을 포함해 선택 폭도 넓어졌다. 장거리 이동을 전제로 한 설계답게, 오래 앉아 있어도 부담이 덜한 구조다.
디지털 환경 역시 과장되지 않은 범위에서 실용성을 강화했다. USB C타입 포트는 1열과 2열 모두에 배치됐고, 무선 충전 기능도 안정성과 반응 속도를 개선한 모습이다. 스티어링 휠의 새로운 아이언 마크와 크롬 인서트가 가미된 도어 패널, 맞춤형 터널 콘솔 상단 등은 전체적으로 절제된 고급감을 유지한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의 변화도 있다. 실내 공기질 관리 시스템은 미세먼지 유입을 줄이고,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장거리 이동 시 체감 차이를 만든다. 기능 자체는 익숙하지만, 그 작동 방식은 더 정교해진 느낌이다.
사운드 시스템은 실내 분위기를 완성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다수의 스피커가 차량 구조에 맞춰 배치돼 어느 좌석에서도 일정한 음향 밸런스를 유지한다. 과장된 저음이나 인위적인 공간감보다는, 비교적 자연스러운 울림을 지향한 세팅이다. 실내 전반은 화려함보다는 '오래 타도 피로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방향성에 더 가깝다.
신형 XC90에서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디지털 사용자 경험이다. 특히 한국 시장을 겨냥해 티맵(TMAP) 모빌리티와 공동 개발한 커넥티비티 시스템은 핵심 경쟁력이다. 새롭게 적용된 차세대 사용자 경험인 Volvo Car UX는 운전자가 더 많은 정보를 더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센터 디스플레이는 11.2인치 독립형 고해상도 스크린으로, 기존 대비 픽셀 밀도가 21% 향상돼 눈에 띄게 선명하다. 길을 찾거나 차량 기능을 조작할 때도 응답 속도나 시인성 면에서 큰 만족감을 준다. 12.3인치 운전자 디스플레이와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는 주행에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위치에 띄워준다. 그 덕분에 시선을 도로에서 뗄 필요가 없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국내 최고 수준의 티맵 오토 내비게이션과 음성 인식 기반의 누구 오토다. 한국어 인식률은 96% 이상으로, 복잡한 발음이나 자연어 명령도 꽤 정확하게 인식한다. 여기에 티맵 스토어를 통해 다양한 써드파티 앱을 설치할 수 있고, 네이버 차량용 웨일 브라우저까지 탑재돼 차량에서 직접 유튜브, OTT, 음악 스트리밍, 웹툰, SNS 등 대부분의 온라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유튜브 화질도 만족스럽다.
스마트폰의 UX를 차량 안으로 가져온 셈인데, 단순히 미러링하는 수준이 아니라 차량 중심에 맞춰 완전히 통합된 형태다. 게다가 웹 기반 개방형 생태계를 지원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서비스가 추가될지 기대하게 만든다.
스마트폰과의 연결성도 강화됐다. 볼보 카스 앱을 통해 차량 도어 잠금·해제, 주행 전 온도 설정 등이 가능하다. 주행 중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차량 내 볼보 어시스턴스 버튼 하나로 24시간 긴급 출동, 사고 접수, 서비스센터 연결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에서도 차별화된다. 최대 15년간 무상 제공되는 OTA(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차량을 항상 최신 상태로 유지해 주며, 5년간 디지털 서비스 패키지도 기본으로 포함된다.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자동차 시장 흐름을 신형 XC90이 가장 잘 보여주는 셈이다.
2열은 전장 4955mm, 전폭 1960mm, 전고 1775mm, 휠베이스 2984mm 차체 크기로, 성인이 탑승하면 레그룸과 헤드룸이 넉넉하다. 열선시트와 전용 송풍구, 공조 장치, 충전 포트, 컵홀더 및 팔걸이, 햇빛 가리개 등 필요로 하는 품목도 알차게 넣었다. 트렁크는 기본 670리터이며, 2·3열 시트를 접으면 1950리터로 늘어나 캠핑, 차박, 짐이 많은 가족 여행에도 무리 없이 넓고 편안한 환경을 제공한다.
신형 XC90은 가솔린 기반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B6)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T8) 두 가지로 나뉜다. 시승차는 B6 트림이다. 직렬 4기통 2.0리터 싱글터보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 그리고 전자식 AWD 시스템이 조합돼 최고출력 300마력, 최대토크 42.8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 시속 100km까지 도달 시간은 6.7초다. 복합 연비는 9.5km/l(도심: 8.4km/l, 고속도로: 11.3km/l)다.
운전을 위해 탑승하면 몸을 감싸듯 포근하게 지지해 주는 시트가 인상적이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실내로 유입되는 엔진음은 거의 없고, 전반적인 정숙성이 뛰어나다. 초반 가속은 부드럽고 민첩하다. 특히 시속 60~80km 구간에서의 정숙성은 인상적이며, 엔진과 조화를 이루는 8단 자동변속기의 반응도 빠르고 자연스럽다.
고속도로에 진입해 가속 페달을 조금 더 깊게 밟아보니 힘이 묵직하게 전달된다. 더 인상적인 건 진동 없는 주행 감각과 조용한 실내다. 풍절음과 고주파 소음은 A·B필러와 파이어월에 추가된 흡음재 덕분에 확실히 억제됐고, 고속에서도 실내는 고요하다.
코너에서는 전자식 AWD 시스템과 에어 서스펜션의 조화가 돋보인다. 차체의 기울어짐이나 언더스티어 없이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며, 스티어링 휠의 반응도 정교하다. 특히 울트라 트림에 기본으로 탑재된 에어 서스펜션은 요철을 부드럽게 넘기고, 고속 주행 시 자동으로 차고를 낮춰 안정감을 더한다.
도심 속 저속 주행에서도 거친 움직임 없이 부드럽게 흐른다. 제동 시에는 회생 제동을 통해 에너지를 회수하고, 이 에너지는 가속 시 다시 사용되어 효율과 반응성을 높인다. 오르막길에서는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 없이 묵직하게 밀고 나가며, 요철이 많은 노면에서도 서스펜션이 충격을 잘 흡수해 실내의 승객은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스티어링 휠의 버튼 하나로 활성화되는 반자율주행 기술 파일럿 어시스트는 차선 내에서 차량의 위치를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앞 차량이 정지하면 함께 멈추고, 다시 출발할 때도 부드럽게 이어지며 장거리 주행에서 운전자의 피로를 확연히 줄여준다. 여기에 반대차선 접근 차량 충돌 회피, 사각지대 경보 및 조향 어시스트, 후측방 경보 및 후방 추돌 경고, 교차로 경보 및 긴급 제동 서포트 등 다양한 안전 사양이 함께 탑재돼 주행 전반에서의 안정감을 더한다.
전체적으로 신형 XC90은 단순히 출력 수치나 마력만을 내세우는 SUV가 아니다. 진정한 프리미엄 SUV란 무엇인지, 운전자와 탑승자가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짚어낸 모델이다. 정숙함, 부드러움, 고급스러운 승차감, 그리고 세련된 주행 보조 시스템까지 조화롭게 담아내며, 도심에서든 고속도로에서든 안락하고 여유로운 주행을 제공한다. 특히 넓은 공간과 높은 안전성, 탑승자 중심의 편의 사양까지 고루 갖춰 패밀리카로서도 손색이 없는 완성도 높은 SUV다.
신형 XC90의 판매 가격은 B6 AWD 플러스 트림 8820만원, B6 AWD 울트라 트림 9990만원이며, T8 AWD 울트라 트림은 1억162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