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자의 ‘괜찮아 떠나’] 잠들지 않는 도시의 또 다른 유혹, 라스베이거스의 ‘맛’에 반하다
분수 쇼 보며 즐기는 프렌치 비스트로부터 미쉐린 2스타 인도 요리까지, 호텔별 필수 방문 레스토랑
카지노와 화려한 쇼의 대명사 라스베이거스가 이제 '세계 최정상급 미식 성지'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LVCVA)에 따르면, 2025년 소셜미디어상에서 가장 화제가 된 키워드 2위는 스피어나 F1이 아닌 바로 '미식'이었다. 라스베이거스가 전 세계 여행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목적지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실제로 라스베이거스는 2024년 '세계 50대 레스토랑' 시상식을 성황리에 개최한 데 이어, 2025년 12월에는 16년 만에 미쉐린 가이드가 화려하게 복귀하며 미식 도시로서의 공신력을 확인했다. 2026년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세미파이널리스트에는 역대 최다인 14개 부문이 이름을 올리며 미식 경쟁력을 증명하고 있다. 연간 3800만 명의 압도적인 수요는 세계적 셰프들을 스트립으로 불러 모았다. 런던 미쉐린 2스타 인도 레스토랑 '짐카나'와 뉴욕 에스더 최 셰프의 '목 바'가 입성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제 라스베이거스에서 식탁 위 세계 일주는 더 이상 비유가 아닌 현실이다. 지난 2월, 이 뜨거운 미식의 최전선에 직접 뛰어들었다.
씨저스 팰리스에서 시작하는 맛있는 하루
라스베이거스 최대 규모 호텔 씨저스 팰리스(Hotel Caesars Palace)는 그 자체로 하나의 미식 지도다.
셀러브리티 셰프 보비 플레이(Bobby Flay)가 이끄는 '브라세리 B(Brasserie B)'는 씨저스 팰리스 안에서 하루를 시작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2023년 12월 문을 연 이 프렌치 파리지앵 스테이크하우스는 보비 플레이가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French Culinary Institute) 출신답게 정통 파리 브라세리 스타일에 자신만의 담대한 풍미를 더했다.
아침·점심·저녁·브런치까지 하루 종일 운영한다. 대표 메뉴는 고베 소고기를 사용한 스테이크 프리트(Steak Frites)와 홀 랍스터(Whole Lobster)이며, 아침에는 에그 베네딕트와 프렌치 토스트가 인기다.
같은 씨저스 팰리스 호텔 안, 달콤한 아침 한 끼를 원한다면 '도미니크 안셀(Dominique Ansel)' 베이커리로 향하면 된다.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를 수상한 셰프 도미니크 안셀이 2022년 씨저스 팰리스에 연 첫 라스베이거스 매장이다. 그가 뉴욕에서 처음 선보여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크로넛(크루아상과 도넛을 결합한 이 디저트)은 이 베이커리의 대표 메뉴다.
라스베이거스 최고의 전망을 즐길 수 있는 프렌치 비스트로
저녁 식사 장소로 향한 곳은 패리스 라스베이거스 호텔(Paris Las Vagas) 안에 있는 프렌치 비스트로 '몽 아미 가비(Mon Ami Gabi)'였다. 이름처럼 프랑스 감성이 물씬 풍기는 이 식당을 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이 뷰를 가진 식당은 여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왼쪽으로는 파리 라스베이거스 호텔의 에펠탑이, 정면으로는 벨라지오 분수가 동시에 시야에 들어온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야외 분수 쇼를 식사 내내 안주 삼을 수 있는 곳이다. 테라스 좌석은 선착순인 만큼 분수 쇼 시간에 맞춰 일찍 자리를 잡아야 한다.
프랑스 출신 에그제큐티브 셰프 뱅상 푸셀이 이끄는 주방의 시그니처 메뉴는 미드웨스트산 프라임 비프를 직접 손질해 구워낸 스테이크 프리트와 그뤼에르 치즈를 듬뿍 올린 프렌치 어니언 수프다. 분수 쇼가 시작되는 순간 테라스의 대화가 일시에 멈추고, 모두의 고개가 같은 방향으로 돌아갔다. 라스베이거스에서만 가능한 저녁이었다.
벨라지오 호텔의 온실 정원을 바라보며 즐기는 브런치
다음 날 점심은 벨라지오 호텔 안에 있는 '새델스(Sadelle's)'로 향했다. 뉴욕 소호의 인기 카페를 운영하는 메이저 푸드 그룹이 2018년 라스베이거스에 낸 분점으로, 벨라지오 온실 & 보태니컬 가든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벽면 가득 유리창 너머로 화려하게 꾸며진 온실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마다 주제를 달리하는 온실은 그 자체로 라스베이거스의 숨은 명소다. 2월에 방문했을 때는 ‘설(Lunar New Year)’을 주제로 한 화려한 조형물들이 온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핑크색 양복 차림의 직원들이 테이블 사이를 오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메뉴는 뉴욕 스타일의 올데이 브런치다. 연어와 홀란다이즈 소스를 얹은 에그 베네딕트, 훈제 연어와 크림치즈를 곁들인 베이글 플래터, 시나몬 향이 가득한 스티키 번이 시그니처다. 화려한 온실을 배경으로 여유 있게 브런치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아리아 리조트의 인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저녁은 아리아 리조트의 '짐카나(Gymkhana)'였다. 2025년 12월 3일 문을 연 이 레스토랑은 스트립 내 카지노 호텔 최초의 인도 파인다이닝이라는 역사적 타이틀을 달고 있다. 런던 메이페어에 본점을 둔 짐카나는 2014년 미쉐린 1스타, 2024년 2스타를 획득한 인도 요리의 정수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짙은 초록색 문과 라자스탄 스타일의 유리 샹들리에, 가죽 벤켓 좌석이 눈을 사로잡는다. 식당 앞에는 짐카나 그린 컬러로 랩핑된 1990년식 롤스로이스 실버 스퍼가 주차돼 있다.
숯불 탄두르 화덕에서 구워낸 탄두리 마살라 램 촙, 토마토·호로파·크림 소스의 치킨 버터 마살라, 라스베이거스 전용 메뉴인 와규 키마 나안이 대표 메뉴다. 인도 요리에 대한 선입견을 허무는 정교하고 깊은 맛이었다. 개업 직후 1월까지 예약이 모두 마감될 정도로 라스베이거스 미식 씬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한식이 생각난다면...호텔 푸드 홀에서 먹는 김치 라멘
라스베이거스의 미식 경쟁은 파인다이닝에서 푸드홀로도 이어진다. 씨저스 팰리스 호텔의 '셀러브리티 푸드홀' 안에 자리한 '목 바 바이 에스더 최(Mok Bar by Esther Choi)'는 가벼운 한 끼를 원할 때 찾기 좋은 곳이다.
뉴욕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한식 셰프 에스더 최의 시그니처 레스토랑으로, 라스베이거스가 뉴욕 외 첫 번째 진출지다. 2024년 가을 오픈 이후 씨저스 팰리스 푸드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너가 됐다. 고추장 돼지 육수에 브레이즈드 포크와 표고버섯을 넣은 라멘, 불고기 라이스볼, 군만두가 인기 메뉴다. 세계 최고의 카지노 호텔 안에서 먹는 한식의 맛이 낯설지 않은 건, 에스더 최의 손맛이 서울 어느 골목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 로어 이스트사이드의 감성을 스트립에서
씨저스 팰리스에서의 셋째 날 저녁은 '스탠튼 소셜 이탈리안(Stanton Social Italian)'이었다. '푸드 네트워크(Food Network)' 경연 프로그램 쇼핑드(Chopped)로 유명한 셰프 크리스 산토스와 타오 그룹 호스피탈리티가 함께 만든 레스토랑으로, 뉴욕 로어 이스트사이드의 오리지널 스탠튼 소셜에서 영감을 받았다.
200석 규모의 공간은 루비 레드·사파이어 블루·골드가 어우러진 아르데코 인테리어로 쇼걸의 분장실을 연상케 하는 화려함이 가득하다.
프렌치 어니언 수프 덤플링, 랍스터 맥 앤 치즈, 버섯 타코가 인기 메뉴다. 토마호크 스테이크는 테이블 사이드에서 뼈째 매달아 불꽃으로 마무리하는 극적인 연출로 눈길을 끈다.
베네시안 호텔에서 즐긴 4코스 미식 투어
라스베이거스 미식 여행의 백미는 베네시안 호텔에서의 푸디투어였다. 이탈리아 베니스를 테마로 한 이 거대한 호텔은 그 자체가 하나의 미식 지도다. 가이드와 함께 호텔 내 레스토랑들을 순서대로 돌며 각 코스를 즐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4개 코스를 거치며 호텔 안에서 이탈리아, 미국, 아시아를 넘나드는 맛의 여정이 펼쳐졌다. 2025년 6월에는 뉴올리언스·LA·뉴욕의 셀렉트 레스토랑을 한데 모은 '비아 비아 푸드홀(Via Via Food Hall)'도 새로 문을 열어 베네시안의 미식 스펙트럼을 한층 넓혔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이 미식으로 경쟁하는 시대, 한 호텔 안에서 세계 음식 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이제 라스베이거스 여행의 빠질 수 없는 코스가 됐다. 카지노 칩을 내려놓고 포크를 들 때, 라스베이거스는 전혀 다른 도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