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자의 ‘괜찮아, 떠나’] 스피어에서 마주한 오즈의 마법사, 그 전율의 75분
16K 화면·16만7000개 스피커… 오감을 점령한 몰입형 엔터테인먼트의 새 기준이 된 스피어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여행 트렌드 변화라는 파고 속에서도 '엔터테인먼트의 성지' 라스베이거스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스포츠와 컨벤션(MICE), 대형 공연을 결합한 라스베이거스의 복합 집객 전략이 2025년에도 빛을 발하며 전 세계 여행객들을 불러 모았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에 따르면 2025년 도시를 찾은 방문객은 총 3850만 명으로, 고금리와 정책 환경 변화 등 까다로운 대외 여건 속에서도 탄탄한 수요 기반을 이어갔다. 연간 평균 객실 점유율 80.3%는 미국 전체 호텔 평균(62.3%)보다 18%포인트 높은 수치로, 라스베이거스가 미국 관광 산업의 독보적 선두임을 입증했다. 그 중심에 2023년 9월 등장한 라스베이거스의 새 심장, 스피어(Sphere)가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축을 기울인 구(球)높이 112m, 너비 157m. 세계 최대 구형 건축물이라는 설명이 무색할 만큼, 실제로 마주한 스피어는 규모 이전에 분위기로 압도했다. 외관 전체를 뒤덮은 약 5만4000㎡의 LED 스크린은 시시각각 표정을 바꾼다. 거대한 눈동자가 깜박이다가 지구가 되고, 이모지 캐릭터 '오르비(Orbi)'가 된다.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어디서든 시선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하는 이유다.
건설비만 23억 달러(약 3조3000억원)가 투입된 스피어는 2023년 9월 29일 아일랜드 록밴드 U2의 공연으로 공식 개관했다. 그런데 스피어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공연 이전이었다. 2023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스피어의 외관 LED 스크린이 처음 점등됐다. 거대한 구 위로 지구와 눈동자, 이모지 캐릭터가 떠오르는 장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라스베이거스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까지 "저게 뭐야"를 외치게 만든 바로 그 장면이었다. 스피어는 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축물이 돼 있었다.
개관 첫해 스피어는 U2의 40회 레지던시 공연을 포함해 2024년 한 해 동안 1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빌보드 박스스코어 역사상 단일 공연장 연간 최고 매출인 4억 2,05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후 피시(Phish), 데드 앤 컴퍼니(Dead & Company), 이글스(Eagles) 등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레지던시가 이어지며 스피어는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이유 그 자체가 됐다. 구글의 '2024 올해의 검색 결과'는 스피어를 미국 최고 관광명소로 선정했다. 스피어는 라스베이거스가 카지노 도시에서 세계 최첨단 엔터테인먼트 도시로 탈바꿈하는 상징이 됐다.
숫자로 이해하는 스피어의 규모스피어의 스펙은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다. 외관을 덮은 엑소스피어(Exosphere)는 약 120만 개의 LED 픽셀 '퍽(puck)'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 LED 스크린으로, 2억5600만 가지 색상을 구현할 수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약 1만5000㎡(16만 평방피트)에 달하는 내부 LED 스크린은 16K 해상도로 360도 전방위에서 관객을 감싼다. 일반 영화관 스크린보다 수십 배 큰 화면이 천장과 양 벽면을 경계 없이 이어지며 공간 자체를 스크린으로 만든다. 1만7600개의 고정 좌석 어디서 봐도 시야가 끊기지 않도록 설계됐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1586개의 고정 스피커 모듈과 300개의 이동식 스피커, 그리고 16만7000개의 스피커 드라이버가 공연장 전체에 배치돼 있다. 이 시스템은 소리의 방향을 좌석별로 제어할 수 있어, 무대의 소리가 관객석 전체에 균일하게 퍼지는 것이 아니라 각 좌석으로 정확히 도달한다. 귓속으로 파고드는 소리가 아니라 공간 전체가 울리는 소리다. 여기에 좌석 진동 햅틱 시스템, 온도 변화, 향기 분사, 바람 기계까지 더해진다. 스피어가 '4D 몰입형 공연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스피어 안으로 들어가야 진짜다
스피어의 진가는 내부에 있다. 외관의 충격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현재 상영 중인 콘텐츠는 1939년 고전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스피어 전용으로 재편집한 버전이다. 원본 102분 분량을 75분으로 압축했다. 단순히 편집만 한 것이 아니다. 스피어의 360도 화면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AI 기술로 영상을 재구성하고, 원본 음악을 167,000개 스피커에 맞게 전면 재녹음했다.
80년이 넘은 클래식 영화가 최첨단 기술을 입고 완전히 새로운 경험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도로시가 허리케인에 빨려드는 순간이 백미다. 스크린 속 허리케인이 가까워지는 순간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닥친다. 좌석이 진동하기 시작하고 종이 낙엽이 관객석으로 날아든다. 순간적으로 내가 허리케인 안에 있다는 착각이 든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던지는 장면에선 폼 소재의 사과가 천장에서 실제로 쏟아지고, 관객들은 아이처럼 손을 뻗어 사과를 잡으려 한다. 마녀의 날치 원숭이 떼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드론으로 조종되는 원숭이들이 관객석 위를 실제로 날아다닌다.
어두운 숲 장면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이 보인다. 오즈의 마법사가 나타나는 순간엔 무대 바닥에서 불기둥이 치솟는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이다.
'오즈의 마법사'는 2025년 8월 28일 첫 상영 이후 누적 티켓 판매 200만 장, 매출 2억6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스피어의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스피어를 목적지로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여행객이 늘면서 스피어는 라스베이거스 관광 산업을 떠받치는 핵심 축이 됐다. 스피어가 네바다주 세수에 기여한 금액은 개관 후 1년 반 만에 5억 달러를 넘어섰다. 공연은 2026년 8월까지 연장됐다.
라스베이거스는 늘 새로운 '최초'와 '최대'를 만들어온 도시다. 그러나 스피어는 단순히 가장 크고 화려한 무언가가 아니다. 공연을 '관람'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은 공간이다. 카지노도, 쇼도, 맛집도 라스베이거스를 채우는 이유가 되지만, 지금 이 순간 라스베이거스를 가야 할 가장 강력한 이유는 스피어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전 세계 여행자의 버킷리스트를 바꾼 이 거대한 구(球) 앞에 서는 일은,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한다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스피어 전경 찍을 수 있는 사진 명당 = 스피어 전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면 윈 호텔 쇼핑몰과 팔라조 호텔을 연결하는 육교로 향하면 된다. 주변 건물에 가리지 않고 스피어 전면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이 육교는, 밤이 깊어질수록 표정을 바꾸는 스피어의 외관을 가장 선명하게 담을 수 있는 명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