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망막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통해 파킨슨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단서가 제시됐다. 뇌 신경세포가 본격적으로 퇴행하기 이전 단계부터 망막에서 신경 기능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다.

연세대학교 용인세브란스병원(병원장 박진오) 안과 지용우 교수와 문채은 박사후연구원, 이승재 전임의 연구팀은 파킨슨병 모델에서 망막의 기능적·구조적 변화가 뇌신경 퇴행 이전 단계부터 나타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npj Parkinson’s Disease’에 최근 게재됐다.

파킨슨병은 뇌에서 알파-시누클레인(α-synuclein)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면서 신경세포 기능이 점차 저하되는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파킨슨병 환자 수는 2024년 기준 약 14만3441명으로, 2020년(12만5927명)보다 약 14% 증가했다.

망막은 발생학적으로 뇌와 같은 중추신경계 일부다. 비교적 간단한 비침습적 검사로 구조와 기능을 반복적으로 관찰할 수 있어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변화를 탐지할 수 있는 장기로 주목받아 왔다. 다만 기존 연구에서는 파킨슨병 환자의 망막에서 기능 저하와 구조 변화가 보고됐지만 이러한 변화가 질병의 어느 시점부터 시작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파킨슨병 관련 단백질인 알파-시누클레인이 과도하게 축적되도록 만든 A53T 변이 마우스 모델을 활용해 질병 초기와 진행 단계에서 나타나는 망막 변화를 분석했다. 생후 6개월과 16개월 개체를 비교해 망막 기능과 구조, 분자 수준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조사했다.

파킨슨병 모델 마우스에서 망막 시냅스 단백질 변화와 염증 반응이 나타난 모습. /사진=용인세브란스병원

망막전위도(ERG) 검사 결과, 내망막 기능을 반영하는 진동소파전위(Oscillatory Potentials)가 초기 단계부터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파킨슨병과 관련된 신경 기능 이상이 망막 시냅스 수준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시작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면역형광 분석에서는 알파-시누클레인 단백질의 축적과 함께 아교세포의 염증 반응이 관찰됐으며, 광수용체 시냅스 단백질 감소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가 질병 초기 단계부터 망막 시냅스 수준의 손상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빛간섭단층촬영(OCT) 분석에서는 질병 진행에 따라 망막 신경섬유층·신경절세포층과 광수용체층이 점차 얇아지는 변화가 나타났다. 반면 시냅스가 밀집된 내망상층은 두꺼워지는 양상이 관찰돼 망막 여러 층에서 구조적 변화가 동반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단백질체 분석에서는 질병 단계에 따라 산화 스트레스, 염증 반응, 에너지 대사, 세포 골격 등과 관련된 단백질들이 단계적으로 변화하는 양상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가 파킨슨병과 관련된 망막 변화에 다양한 생물학적 과정이 관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망막 영상은 비교적 간단한 안과 검사로 구조와 기능을 반복적으로 관찰할 수 있어 전신 질환을 탐지하는 바이오마커로 활용되고 있다. 망막 영상을 분석해 안질환을 진단하거나 심혈관 질환 위험을 예측하는 인공지능(AI) 기반 기술도 개발되는 등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접근이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에도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용우 교수는 이번 연구가 망막 변화가 파킨슨병 말기에 나타나는 부수적인 현상이 아니라 뇌신경 퇴행 이전 단계에서 시작되는 조기 병리 현상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임상 연구를 통해 망막 변화가 파킨슨병의 조기 선별이나 질환 진행 모니터링에 활용될 가능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연구는 동물 모델을 이용한 실험 결과로 실제 파킨슨병 환자에게서도 같은 변화가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한 추가 임상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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