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최대 난제 ‘데이터’, 버추얼 트윈이 해결
엔비디아와 협력, 단순 복제 넘어 ‘지식의 선순환’으로
일자리 대체 아닌 ‘동반자’, 스타트업엔 혁신의 기회

배재인 다쏘시스템코리아 CRE 본부장은 “AI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충분한 데이터가 필요한데, 지금 클라우드에 올라와 있는 물리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며 피지컬 AI 시대 버추얼 트윈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동원 기자

“물리 세계에서 작동하는 인공지능(AI)은 틀려서는 안 됩니다. 인명을 해치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죠. 하지만 현실에서 로봇이 완벽하게 작동할 수 있는 충분한 물리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가상 환경에서 데이터를 생성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지난해 12월 AWS 리인벤트에서 만난 아미트 고엘 엔비디아 로보틱스 총괄의 말이다. 챗GPT와 같은 대화형 AI는 틀려도 사람이 검토해 고치면 되지만, 물리 세계에서 오답은 곧 사고이자 비용이라고 지적했다. 이 ‘완벽한 AI’를 만들기 위해 엔비디아는 ‘옴니버스’ 플랫폼을 활용한다고 밝혔다. 현실의 물리 데이터를 복제하고 AI를 학습시켜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피지컬 AI 승부처가 ‘누가 더 정교한 가상 세계를 보유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현실의 시행착오를 수천만 번의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고, 부족한 물리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대 설계·시뮬레이션 생태계를 보유한 다쏘시스템은 이 거대한 흐름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6’에서 배재인 다쏘시스템코리아 본부장은 그 해답을 제시했다. 엔비디아와의 전략적 협력부터 인력난에 직면한 한국 제조업이 버추얼 트윈과 AI의 결합으로 찾을 수 있는 ‘골든타임’에 대해 들어봤다.

◇ 피지컬 AI 최대 난제 ‘데이터’, 버추얼 트윈이 해결

피지컬 AI 시대, 배 본부장이 가장 우려한 것은 데이터 부족 문제다. 그는 “피지컬 AI를 구현할 물리 데이터가 부족한 데 버추얼 트윈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사실 그것이 핵심”이라며 “AI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충분한 데이터가 필요한데, 지금 클라우드에 올라와 있는 물리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이 데이터 부족이 피지컬 AI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로봇 시장은 끊임없이 ‘트라이 앤 에러’를 반복해야 하는 영역인데,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기엔 비용과 시간, 안전 문제가 따른다”며 “버추얼 트윈 안에서 데이터를 생성하고 AI를 학습시키는 것, 그게 해법일 것 같다”고 말했다.

아미트 고엘 엔비디아 로보틱스 총괄은 지난해 1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AWS 리인벤트에서 “현실에서 로봇이 완벽하게 작동할 수 있는 충분한 물리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이 때문에 가상 환경에서 데이터를 생성하는 것이 필수”라고 밝혔다. /김동원 기자

실제로 로봇이 어떤 형태로 발전할지, 어떤 환경에서 특화된 로봇이 필요할지를 찾기 위해서는 컨셉 설계부터 생산까지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배 본부장은 “이 과정에서 버추얼 트윈과 AI가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쏘시스템은 이번 행사에서 레오(Leo)와 마리(Marie)라는 두 개의 AI 버추얼 동반자를 공개했다. 레오는 설계 과정에서 엔지니어를 돕는 AI로, 컨셉 검증부터 상세 설계까지 지원한다. 마리는 더 비판적이고 정확한 검증을 담당하는 AI다.

배 본부장은 “엔지니어링 솔루션의 AI는 일반 대형언어모델(LLM)과 달라야 한다”며 “틀림을 허용하지 않는 정확성이 필요하므로 페르소나를 명확히 구분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AI는 다쏘시스템이 30~40년간 축적한 설계 데이터와 노하우를 학습했다. 여기에 고객 기업의 자체 데이터를 더해 맞춤형 학습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 과제는 데이터 거버넌스… 클라우드 도입으로 AI 환경 독려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선제 조건이 있다. ‘데이터 거버넌스’다. 배 본부장은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쌓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제대로 분류되고 공유되며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며 “한국 중견·중소기업은 협업 문화가 부족하고 사일로화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커버하는 환경에서는 지식과 노하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서 “협업을 위한 데이터 거버넌스가 이뤄져야 AI가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다쏘시스템은 2018년부터 3D익스피리언스 클라우드를 통해 고객이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올릴 수 있도록 독려해 왔다. 2023년부터는 솔리드웍스를 구매하는 모든 고객에게 클라우드를 기본 제공하고 있다. 배 본부장은 “AI가 출시됐을 때 고객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은 그래도 만들어졌다”며 “이제 AI에 대한 니즈가 강해지면 고객들이 더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활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왼쪽)와 파스칼 달로즈 다쏘시스템 CEO(오른쪽)는 이번 행사에서 25년 협력 관계 중 최대 규모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다쏘시스템 출장기자단

◇ 엔비디아와 ‘AI 팩토리’ 협력… “단순 복제 넘어 지식 순환으로”

다쏘시스템과 엔비디아의 협력 내용에 관한 의견도 오갔다. 이번 행사에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방문해 다쏘시스템과의 25년 협력 관계 중 최대 규모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양사는 ‘AI 팩토리’ 구축에서 협력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배 본부장은 “엔비디아가 가장 최첨단의 제조 기술을 구현하는 AI 팩토리를 만들고 있고, 거기에 우리의 AI와 플랫폼 솔루션이 활용되고 있다”며 “최첨단 공장을 만드는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옴니버스와 버추얼 트윈이 모두 가상 환경을 구현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협력과 경쟁의 경계선이 궁금해진다. 이에 대해 배 본부장은 “버추얼 트윈의 차별점은 그 안에서 지식과 노하우가 스스로 만들어지고 순환되는 ‘생성형 경제’에 포커스를 맞춘다는 점”이라며 “단순히 공장을 디지털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에서 지식이 생성되고 재활용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한국 중소기업의 절규 “AI, 일자리 대체 아닌 ‘부족한 손길’ 채울 것”

배 본부장은 한국 시장에 대한 다쏘시스템의 기대는 크다고 밝혔다. “전 세계 로봇 기업의 66% 이상이 카티아(CATIA)와 솔리드웍스를 사용해 설계하고 있다”며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면서 가장 역동적인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배재인 다쏘시스템 CRE 본부장은 “AI가 인력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동반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원 기자

그는 한국 중견·중소기업들의 특수한 상황을 지적했다. “대기업은 AI로 인력이 줄어들까 걱정하지만, 중견·중소기업은 반대로 사람을 뽑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AI가 인력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동반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장비 업체처럼 고투마켓(Go-to-Market) 시간이 짧은 비즈니스에서 AI의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했다. “설계가 생산 요청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AI 버추얼 동반자를 활용하면 고투마켓과 고투밸류(Go-to-Value)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라이프사이언스(의료기기) 분야도 AI 활용이 유망한 영역으로 꼽았다. “의료기기는 나라마다 규제가 다른데, 초기 개발 때부터 모든 규제를 고려하기는 어렵다”면서 “AI를 활용하면 규제 리스크를 미리 확인하고 줄일 수 있어, 수출이나 비즈니스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는 특히 스타트업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은 축적된 데이터가 부족해 AI 활용이 어려울 것 같지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쏘시스템이 30~40년간 쌓아온 설계와 데이터 운영 노하우를 레오를 통해 기본적으로 제공한다”며 “스타트업은 ‘나쁜 버릇’ 없이 베스트 프랙티스를 처음부터 배울 수 있어, 오히려 레거시를 가진 기업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다쏘시스템코리아의 스타트업 프로그램 신청 기업은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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