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 “피지컬 AI, 외식업 판도 바꾼다”
햄버거 패티 조리 로봇 ‘알파그릴’, 韓·美 50개 매장서 검증
“식당은 작은 공장… 휴머노이드 아닌 특화 로봇이 답”
제조 인프라 강점 한국, 피지컬 AI 승산 충분
인공지능(AI)이 PC와 스마트폰 화면 밖을 나서 실제 물리 세계에 들어오고 있다. 지난 6일부터 나흘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강조된 피지컬 AI가 대표 사례다.
이번 CES에선 피지컬 AI의 사례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대거 등장했다. 현대차, 테슬라, 중국 유니트리 등이 선보인 이 로봇들은 사람처럼 움직이며 제조, 의료 등 사람의 손이 필요한 분야에 AI를 접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피지컬 AI는 아직 미래의 일일까?
아니다. 국내에선 주방에서 작동하는 피지컬 AI가 이미 상용화됐다. 한국 스타트업 에니아이가 개발한 햄버거 조리로봇 ‘알파그릴’이 그 주인공이다. 이 기술은 지난해 2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다쏘시스템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5’에서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제너럴 세션에 올랐다. 당시 이강규 에니아이 기술담당은 F&B(외식업) 분야에서 피지컬 AI의 가능성을 발표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알파그릴은 뉴욕 타임스퀘어 쇼룸과 미국 2개 매장에서 실제 운영되며 패티 조리시간 70% 단축이라는 성과를 입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롯데리아, 맘스터치 등 누적 50개 매장에 설치돼 작동 중이다. 휴머노이드가 미래를 논할 때, F&B 주방의 피지컬 AI는 이미 현재를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는 “휴머노이드가 미래라면, 모듈형 조리로봇은 이미 현재”라고 말했다. 그를 만나 피지컬 AI의 현재와 F&B 분야의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 주방이 증명한 피지컬 AI의 현재
2025년 2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다쏘시스템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5 제너럴 세션에 한국 기업이 발표자로 섰다. 글로벌 제조업 컨퍼런스에서 한국 스타트업이 단독 세션을 갖는 건 이례적이었다. 이강규 에니아이 기술담당은 이 자리에서 햄버거 조리로봇 알파그릴을 공개하며 F&B 자동화의 미래를 제시했다.
이 기술담당은 “주방 내 로봇 자동화에 집중하고 있다”며 “테슬라가 자율주행 분야의 AI에 몰두하는 것처럼, 우리는 AI 자동화로 주방 효율성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1년이 지난 지금, 그 선언은 데이터로 입증됐다. 뉴욕 웨스트 해버스트로의 TFS 매장에서 알파그릴은 시간당 최대 200개의 패티를 구워내며 실전에서 검증받고 있다. 위·아래로 그릴이 있어 양면 동시 조리가 가능하며, 사람이 별도로 패티를 뒤집거나 압착할 필요가 없다. 한 번에 총 8개 패티를 양면 조리할 수 있고, 조리 후 서빙까지 자동으로 이뤄진다.
TFS 매장 도입 후 패티 조리시간은 70% 단축됐고, 조리 품질은 일관되게 유지됐다. 피크타임 병목이 완화되고 직원들의 체력적 부담도 눈에 띄게 줄었다.
황 대표는 현장의 반응을 전했다. “A매장에서 테스트 후 B매장으로 옮기려 했는데, A매장에서 반대해서 새로 구매했다”며 “한 번 써보니 없으면 안 된다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이 기술은 F&B 분야에서 피지컬 AI의 확장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현재 알파그릴은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누적 50개 매장에서 운영 중이다. 한국에서는 롯데리아, 맘스터치, 프랭크버거 등 주요 브랜드 매장에, 미국에서는 버거 매장 1곳과 퓨전 한식 레스토랑 1곳에 설치돼 있다.
특히 한식 레스토랑에서는 불고기, 제육볶음, 항정살 두부 조리에도 활용되며 햄버거를 넘어선 가능성을 입증했다. 황 대표는 “햄버거를 시작으로 했지만, 그릴을 사용하는 곳이라면 다 들어갈 수 있다”며 “한식, 양식, 중식 등 다양한 메뉴로 확장 가능하다는 걸 현장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 식당은 작은 공장, 주방에 적합한 로봇 필요
에니아이가 F&B 분야에 피지컬 AI를 접목한 이유를 묻자 황 대표는 “식당은 결과적으로 작은 공장”이라고 답했다. 그는 “주문받아서 조리하고 완성하는 흐름이 공장의 생산 라인과 닮아 있다”며 “패티 굽기, 뒤집기, 타이밍 관리처럼 반복적이고 표준화가 가능한 공정이 명확하고, 인력 의존도가 높아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자동화 필요성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F&B 피지컬 AI를 선도할 수 있는 이유도 설명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로봇 도입률이 가장 높다”며 “큰 시장은 보유하고 있지만 인력은 지속 줄고 있어 비즈니스를 이어가기 위해 로봇 도입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제조 공장, 물류 공장 다음이 F&B”라며 “외식업은 공장의 생산 라인을 쪼개서 소비자 주변에 갖다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대표는 피지컬 AI를 바라보는 자신의 철학도 분명히 했다.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화제를 모았지만, 그는 다른 접근을 택했다. “옛날 마차를 타던 시절로 돌아가 보면, 로봇을 사람이나 동물을 모방해서 만든다고 하면 자동차가 아니라 로봇 말을 만들어 마차를 끌게 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건 상당히 비효율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애플리케이션마다 가장 효율적인 로봇 형태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범용적인 일을 해야 하는 영역은 휴머노이드가 효율적이지만, 특정 기능을 잘 수행해야 하는 영역은 사람 모양일 필요가 없다”며 “주방은 제한된 공간에서 위생, 안전, 속도가 동시에 요구되는 환경이기 때문에 기존 주방 동선과 설비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에니아이 로봇은 패티를 빠르게 굽기 위해 설계됐다. 대표 사례가 로봇팔 대신 각 조리 기능을 모듈 단위로 나눠 병렬 구동하는 구조인 모듈형 병렬 구동 방식이다. F&B 주방의 공간 제약을 고려해 설계했다. 황 대표는 “일반적인 협동 로봇팔 대비 주방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작고, 동작 간 간섭이 적다”며 “햄버거는 빠르게 나와야 한다는 소비자 인식이 강한 만큼, 조리 속도는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출시한 ‘뉴 알파그릴’은 주방에 더 특화한 양산형 제품이다. NSF(미국 위생·식품 안전 인증)와 UL(전기·기계 안전성 인증)을 획득해 미국 외식 매장의 기준을 충족했다. 외관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를 개선했고, 스패츌링 동작 속도와 온도 센서 구성도 고도화했다.
F&B 품질 관리의 핵심인 마이야르 반응 분석 기술도 개발 중이다. 현재 프로토타입 단계인 이 기술은 비전 센서로 조리 전후 패티를 촬영해 표면의 색상과 형태 변화를 분석하고, 매장 기준 도달도를 점수화한다.
황 대표는 “고깃집에 가면 고기 잘 굽는 후배가 있는 테이블이 인기 많다”며 “같은 고기인데 누가 굽느냐에 따라 맛이 다른데 그 편차를 로봇은 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조리 결과를 감각이 아니라 데이터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F&B 산업에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 동물성 기름 대응 케이블까지 개발, F&B에선 필수
사실 주방에서 로봇을 활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수 있다. 기름이 로봇에 튀어 고장이 나거나 반대로 로봇이 비위생적이면 음식에 지장이 갈 수 있어서다. 에니아이는 이러한 문제를 모두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례로 햄버거 패티의 경우 10~20%는 소지방으로, 조리 중 녹으면서 동물성 기름이 전선에 묻는 문제가 생긴다. 일반 산업용 케이블은 이런 환경을 고려하지 않아 경화되거나 흡수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에니아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케이블 레시피까지 자체 개발했다.
황 대표는 “전기 전선을 일반 산업에서 공장에서 찍어서 만들면 동물성 기름에 노출될 일이 별로 없다”며 “패티를 조리하면 소지방이 녹으면서 유지가 되고, 그런 동물성 기름이 전선에 다 묻게 되는데 이런 것까지 해결하는 원천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는 많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에니아이의 기술 차별성은 F&B 환경에 특화된 디테일에 있다. 주방은 고온, 유증기, 반복 세척 등 일반 제조업과 다른 극한 환경이다. 황 대표는 이런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다쏘시스템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활용했다고 밝혔다. “설계 단계에서 모든 상황을 가정하기 어려운 주방 환경을 고려해 하나의 플랫폼에서 설계 변경과 검증을 빠르게 반복할 수 있는 플랫폼을 사용했다”며 “개발부터 제조, 필드 서비스까지 데이터가 끊김없이 연결되면서 실제 현장 환경에 맞춰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에니아이는 매장 관리를 위한 기술도 개발했다. F&B 환경의 높은 변동성을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인 알파 클라우드(Alpha Cloud)다. 그릴 온도, 모터 움직임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황 대표는 “주방 환경에서는 고온, 유증기, 잦은 세척 등 변수가 많아 장비 상태가 빠르게 변할 수 있다”며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대응하는 시스템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 “F&B 피지컬 AI, 한국이 선도해야”
황 대표는 올해 미국 시장에 상당한 리소스를 집중할 계획이다. 미국 엔터프라이즈 비즈니스와 직접 세일즈 인력을 충원하고, 딜러 세일즈 파트너들과 계약을 맺어 외식업 유통 및 판매를 병행한다. F&B 시장이 가장 큰 미국에서의 성공이 글로벌 확장의 열쇠다.
황 대표는 “미국은 시장 규모가 크지만, 고객사 검증 절차가 상대적으로 까다롭다”며 “한국은 기술 도입이 빠른 편이지만, 미국은 보수적인 의사결정을 한다. 하지만 일단 도입하고 나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패티 고기 종류가 더 다양하고 소비자 취향에 따라 굽기 정도를 세분화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조리 조건의 폭이 넓고, 이를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자동화에 대한 요구도 더 크다”고 덧붙였다.
현재 회사는 대형 버거 프랜차이즈와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실제 운영 성과가 검증된 매장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확장을 목표로 한다.
그는 한국이 F&B 피지컬 AI를 선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강점으로 제조 인프라, AI 인재, 오픈된 시장을 꼽았다. 하지만 정부 지원 방향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피지컬 AI는 데이터 확보, 개발, 연구실 테스트, 실제 필드 테스트, 판로 개척까지 모든 단계에서 물리적 환경이 필요하다”며 “기존 AI 회사 지원 방향과는 달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AI 센터 같은 곳은 일반 사무실과 같은 모습”이라며 “피지컬 AI를 국가 단위로 제대로 하려면 물리적인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F&B 환경을 재현할 수 있는 테스트 공간, 고온·유증기 환경에서 검증할 수 있는 시설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F&B 자동화의 미래에 대해 완성도 우선, 확장은 그 다음이라는 전략을 제시했다. “완성도를 우선 높인 후 우리의 기술이 진짜 F&B 산업 자체를 바꾸는 수준까지 올라오면 하나하나 확장해 나가려고 한다”며 “기술 기업이지만, 연구개발만으로는 시장을 만들 수 없고, 실제 고객 환경에서 검증되고, 사업적으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기술의 의미도 커진다”고 밝혔다. 또 “조리 자동화가 필요한 글로벌 외식 시장에서 현실적으로 선택받는 표준 솔루션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