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구시가지부터 럭셔리 호텔까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하노이 여행기’
베트남이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지 오래다. 2024년 베트남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457만 명으로, 전체 외국인 방문객의 26%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2위인 중국(374만 명)을 80만 명 이상 앞서는 수치다. 인천에서 직항으로 5시간이면 닿는 지리적 이점, 합리적인 물가, 그리고 비자 면제 혜택까지 더해지며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여행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했다. 그 중에서도 천년 고도 하노이는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독특한 매력으로 여행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 11월 말부터 12월 초, 하노이를 방문해 도시가 품은 매력을 직접 경험했다.
용의 형상을 한 호수 위의 궁전 ‘JW 메리어트 하노이’
하노이 남뜨리엠군, 도심에서 서쪽으로 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JW메리어트 하노이는 그 존재감부터 남다르다.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2017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하노이 방문 시 투숙했던 이 호텔은 이제 각국 정상들의 정례 숙소로 자리잡았다.
세계적인 건축가 카를로스 자파타(Carlos Zapata)가 설계한 호텔 건물은 베트남 문화의 상징인 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유려한 곡선의 외관은 베트남의 장대한 해안선을 형상화했으며, 호수를 따라 펼쳐진 8층 높이의 구조물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궁전을 연상시킨다.
호텔에 도착하면 모든 방문객에게 '웰컴 엘릭서(Welcome Elixir)'를 제공한다. 로즈마리를 베이스로 한 이 시그니처 음료는 호텔 내 JW 레이크사이드 가든(JW Lakeside Garden)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허브로 만들어진다. 긴 비행 후 이 한 잔의 엘릭서는 여행의 피로를 씻어내고 새로운 도시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해주는 의식과도 같았다.
호텔은 450개의 객실을 보유했으며, 최소 객실 면적이 48㎡로 하노이에서 가장 넓은 규모를 자랑한다. 최근 리노베이션을 마친 56개의 스위트룸은 현대적 우아함과 베트남 전통 디자인 요소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6층에 위치한 이그제큐티브 라운지는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컨티넨탈 조식부터 애프터눈 티, 이브닝 칵테일까지 하루 종일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노이의 겨울을 밝힌 크리스마스 빌리지
호텔은 매년 연말 연례 행사인 '크리스마스 오브 원더스(Christmas of Wonders)'를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는 하노이 시민들이 함께 즐기는 도시의 축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광활한 호텔 정원은 거대한 크리스마스 빌리지로 완벽하게 변신해 있었고, 주말 오후의 정원은 마치 하노이의 모든 가족들이 모인 듯한 인파로 가득했다.
호텔 앞에 설치된 대형 무대에서는 끊임없이 공연이 이어졌다. 베트남 전통 무용부터 K-POP 댄스 커버, 캐럴 합창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특히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신나게 율동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얼굴에도 미소를 띄게 했다.
'산타 키친(Santa's Kitchen)'이라 명명된 다이닝 부스는 그야말로 먹거리의 천국이었다.
JW메리어트 하노이의 미쉐린 셀렉티드 레스토랑인 'French Grill by Jean-François Nulli'에서 특별히 준비한 크리스마스 한정 메뉴는 긴 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았다. 프랑스 출신 셰프가 베트남 로컬 식재료로 재해석한 크리스마스 요리는 하노이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산타마켓(Santa's Market)'은 또 다른 볼거리였다. 수 십개의 부스에서는 베트남 전통 수공예품부터 크리스마스 장식품, 수제 초콜릿,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까지 다양한 상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호숫가를 따라 마련된 특별 체험 구역은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공간이었다. 조랑말 승마 체험, 산타와 함께하는 포토존,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 클래스 등 다양한 액티비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호안끼엠에서 시작된 천년 고도의 산책 ‘하노이 구시가지 투어’
구시가지 도보 투어는 하노이 여행의 정수다. 호안끼엠 호수(Hoan Kiem Lake)에서 시작된 구시가지 도보 투어는 베트남 천년 역사의 켜를 하나씩 벗겨가는 시간 여행이었다. '환검호'라는 뜻의 호안끼엠은 15세기 레 왕조의 레러이 왕이 중국 명나라를 물리친 후 신검을 거북이에게 돌려주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택시에서 내리자 호수 주변은 이미 활기로 가득했다. 베트남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는 젊은 커플부터 호숫가 벤치에서 베트남 전통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 사람들까지. 관광지이기 이전에 시민들의 일상 공간으로 살아 숨 쉬는 이곳의 모습은 하노이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었다.
호수 중앙의 작은 섬에 자리한 옥산사(Ngoc Son Temple)로 가는 빨간색 목조 다리 '테 훅(The Huc)'은 햇살을 받아 더욱 붉게 빛났다.
1886년 완공된 성 요셉 대성당(St. Joseph's Cathedral)은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성당이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모델로 한 네오고딕 양식의 이 건축물은 높이 64.5m의 쌍둥이 종탑이 인상적이다. 세월의 흔적으로 검게 변색된 외벽은 오히려 장엄한 분위기를 더한다.
성당 앞 광장은 하노이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주변으로 세련된 카페와 상점들이 이어진다.
성당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콩카페(Cong Caphe)는 베트남 전역에 체인을 둔 카페 브랜드다. 베트남 전쟁 시기를 콘셉트로 한 인테리어와 진한 로부스타 원두를 사용한 커피는 베트남만의 독특한 카페 문화를 보여준다.
베트남 연유커피(Ca Phe Sua Da)를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 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진한 커피와 달콤한 연유의 조합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우유가 귀했던 베트남에서 연유로 대체하면서 탄생한 창의적 산물이다. 이처럼 하노이 곳곳에는 외세의 영향을 주체적으로 소화하고 재창조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구시가지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기차마을(Train Street)이었다. 정식 명칭은 트란푸(Tran Phu) 거리지만, 집과 집 사이 불과 1미터 간격으로 기차가 지나가는 독특한 풍경으로 '기차마을'이라 불린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인 1902년 건설된 이 철도는 하노이와 호치민을 연결하는 남북 종단 철도의 일부다.
현재도 이 철도에는 기차가 다니고 있다. 기차가 다가오면 카페 주인들이 일제히 손님들에게 안전선 뒤로 물러나라고 외친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와 함께 선로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하면,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 순간을 기다린다. 거대한 기차가 굉음을 내며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불과 50cm 앞을 지나가는 기차의 속도감과 압도감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철로는 다시 관광객들이 사진을 남기는 공간이 된다. 위험해 보이는 공간에서도 나름의 질서와 리듬을 만들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베트남인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적응력을 보여준다.
호텔에서 만난 미식과 웰니스의 세계
미쉐린 가이드가 2023, 2024, 2025년 연속 선정한 'French Grill by Jean-François Nulli'에서의 저녁 식사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프랑스 출신 셰프가 베트남 로컬 식재료를 활용해 만든 프렌치 요리는 두 문화의 완벽한 융합을 보여주었다.
호텔의 조식 뷔페 역시 특별했다. 하노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은 베트남 전통 요리부터 서양식, 일식, 한식까지 다양한 메뉴를 제공한다. 특히 주문 즉시 만들어주는 쌀국수 '포'와 프랑스식 크레페, 그리고 호텔 정원에서 직접 재배한 허브를 사용한 신선한 샐러드는 아침을 시작하기에 완벽한 선택이었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더욱 반가울 '신라면'을 즉석에서 조리해 제공하는 서비스는 인상적이었다. 한식 코너에는 김치, 깍두기를 비롯해 비빔밥을 해 먹을 수 있는 나물류도 갖춰져 있었다.
JW 메리어트 하노이가 다른 럭셔리 호텔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정원이다. JW 레이크사이드 가든은 하노이에서 유일하게 호숫가 정원을 보유한 호텔로, 도심에서 불과 8km 떨어진 곳에서 이런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JW Herb Garden과 JW Greenhouse에서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사용되는 허브와 채소를 직접 재배한다. 로즈마리, 바질, 민트, 레몬그라스 등 20여 종의 허브와 토마토, 가지, 오이 등 다양한 채소가 유기농으로 재배되고 있다.
호텔 8층에 위치한 'Wellbeing on 8'은 도시의 피로를 씻어내는 완벽한 휴식 공간이었다. 특히 Spa L'Occitane en Provence에서 받은 트리트먼트는 여행의 피로를 완전히 잊게 해주었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천연 재료를 사용한 제품과 베트남 전통 마사지 기법이 결합된 시그니처 트리트먼트는 깊은 이완과 평온을 선사했다.
실내 수영장은 자연 채광이 들어오는 설계로 마치 야외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저녁 시간, 조명이 켜진 수영장에서 바라보는 호숫가 야경은 하노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최신 장비를 갖춘 피트니스 센터는 24시간 운영되어 시차 적응이 어려운 여행객들에게도 유용했다.
짧지만 밀도 있었던 하노이 여행을 마치며, 이 도시가 가진 다층적 매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천년 고도의 역사적 무게감, 프랑스 식민지 시대가 남긴 건축적 유산, 그리고 급속한 현대화가 만들어낸 역동성이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는 곳. 그것이 바로 하노이였다.
JW메리어트 하노이에서 경험한 세계적 수준의 서비스와 시설은 하노이가 국제적인 MICE 도시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크리스마스 빌리지 이벤트는 호텔이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였다. 럭셔리 호텔이 가진 배타성의 벽을 허물고 시민들과 함께 축제를 즐기는 모습은, 베트남 특유의 포용적 문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수천 명의 하노이 시민들이 호텔 정원에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하노이는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도시다. 급하게 둘러보기보다는 여유를 갖고 도시의 리듬에 몸을 맡기면, 그제야 하노이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천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켜, 그 속에서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하노이. 하노이는 분명 다시 찾고 싶은, 아니 다시 찾아야만 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