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WS 리인벤트 2025] “인해전술 이기는 건 지혜”… AWS 손잡은 리얼월드, 中 로봇 굴기 정면 돌파
류중희 리얼월드 CEO 인터뷰
리얼월드, 4D+ 캡처 기술로 데이터 확보… 中 대량 전술에 대항
내년 1분기 자체 VLA 모델 공개, 5년 내 휴머노이드 상용화
AWS와 북미·유럽에 피지컬 AI 진출 위한 실질적 협업 논의
“인해전술을 이기는 건 지혜죠.”
류중희 리얼월드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의 대규모 로봇 데이터 수집 방식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수천 명의 작업자에게 엑소스켈레톤을 입혀 휴머노이드 로봇 훈련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리얼월드는 멀티 카메라 기반 ‘4D+’ 데이터 캡처 방식으로 더 정확하고,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1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AWS 리인벤트에서 만난 류 CEO는 “중국에서 천 명씩 투입해 텔레오퍼레이션하는 영상을 보면 위압적이지만, 우리는 공학적으로 더 나은 방법을 찾았다”며 “한국과 일본의 고도화된 산업 데이터에 우리 기술을 결합하면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얼월드가 개발한 4D+ 캡처 방식은 작업장에 약 12개의 카메라를 설치해 360도 다각도 영상을 촬영한 뒤, AI로 재구성해 3차원 비디오를 만드는 기술이다. 여기에 작업자가 착용한 촉각 장갑으로 물체를 잡을 때의 압력까지 측정한다. 류 CEO는 “이 방식이 엑소스켈레톤보다 더 정확하다”며 “특히 손재주가 필요한 섬세한 작업 데이터 수집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 “5년 내 상용화, 할루시네이션 문제 없다”
류 CEO는 피지컬 AI의 상용화 시점을 “늦어도 5년 이내”로 전망했다. 그는 “우리보다 고객사들이 더 공격적”이라며 “일본과 한국 대기업들은 5년 안에 전환이 안 되면 본업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언어모델(LLM)에서 문제가 되는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은 피지컬 AI에서 원천적으로 차단된다고 강조했다. 류 CEO는 “LLM의 할루시네이션은 사실이 아닌 말을 하는 것이지만, 로봇은 물리 법칙을 위배하는 동작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하드웨어의 물리적 한계 내에서만 학습하기 때문에 LLM 수준의 돌발 행동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피지컬 AI 모델은 LLM보다 크기가 훨씬 작다. 경쟁사인 피지컬 인텔리전스의 파이제로 모델이 70억 개 파라미터인 반면, 리얼월드는 그보다 큰 모델을 준비 중이지만 여전히 LLM 대비 소형이다. 류 CEO는 “물리적 제약이 크고 그걸 다 학습했기 때문에 모델이 심플해진다”고 덧붙였다.
◇ 한국식 추월 전략 “대기업과 생태계 협력”
리얼월드의 가장 큰 차별점은 데이터 확보 전략이다. 공장과 물류센터가 없는 스타트업이 어떻게 산업 데이터를 모으느냐는 질문에 류 CEO는 “대기업들을 아군으로 만들었다”고 답했다.
그는 “LLM 때 기회를 놓친 한국·일본 대기업들은 이번엔 모델의 지분을 갖고 싶어 한다”며 “우리는 3~5년 뒤 완성될 모델의 지분을 제안하고, 대신 지금 그들의 데이터와 현장에 접근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리얼월드는 SK, LG전자, 일본 KDDI, 시마즈제작소, 미쓰이케미칼, ANA 등을 투자자로 확보했다. 류 CEO는 “내년 1월 발표 예정인 다음 투자 라운드에서는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대기업이 참여한다”고 귀띔했다.
초기 수익 확보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도 내세웠다. 리얼월드는 팔란티어처럼 고객사에 직접 들어가 로봇 도입 컨설팅(페이즈 1-2-3)을 하고, 그 과정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파인튜닝 모델을 만든다. 이 모델은 해당 기업과 공유하며, 완성된 제품은 월정액 구독 모델로 판매한다(페이즈 4). 류 CEO는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에서도 돈을 받는다”며 “우리는 이미 수익을 내고 있다”고 밝혔다.
이강욱 리얼월드 사업대표는 “일본 KDDI가 인수한 로손 편의점 1만6000개 매장의 연간 인건비만 1조 원이 넘는다”며 “페이즈 4에 도달하면 개별 산업마다 수조에서 수십 조 원의 시장 기회가 있다”고 설명했다.
◇ 피지컬 AI, 왜 ‘휴머노이드’가 필요할까
류 CEO는 로봇이 꼭 인간 모양의 로봇이어야하냐는 본 기자의 질문에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작업 현장 변경 비용이다. 그는 “고객들은 사람이 일하는 현장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5개 손가락이 없으면 불편한 상황이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제조업체와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는 큰 패널을 조립한 뒤 작은 부품을 구멍에 넣고, 전동공구로 조립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그는 “큰 물체도 잡아야 하고, 작은 것도 잡아야 하며, 사람처럼 공구도 써야 한다”며 “이 모든 걸 한 번에 할 수 있는 건 사람 손”이라고 설명했다.
둘째는 데이터 효율성이다. 작업 숙련자의 5개 손가락 데이터를 수집했을 때, 이를 3개나 2개 손가락으로 변환하는 것보다 그대로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다만 류 CEO는 장기적으로는 진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면 AI가 스스로 최적의 폼팩터를 디자인할 것”이라며 “손가락이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도, 팔이 여러 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진화를 위한 첫 단계는 사람과 똑같은 것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리얼월드는 위로보틱스와 공동 개발한 로봇 손 ‘알렉스’를 기반으로 세계 최초로 3개 손가락으로 병뚜껑을 동시에 돌리는 데모를 선보였다. 알렉스는 손가락과 손목에 총 15개 관절이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류 CEO는 “대부분 경쟁사는 집게손이나 5개 손가락이어도 손처럼만 움직이는 수준”이라며 “우리는 48개 액추에이터를 동시에 제어해 사람처럼 정밀한 작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AWS 등 글로벌 빅테크와 협력 확대
리얼월드는 글로벌 시장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 대형 벤처캐피털 인사이트파트너스가 최근 발표한 피지컬 AI 화이트페이퍼에는 전 세계 주요 로보틱스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 8곳이 소개됐는데, 북미 이외 지역에서는 리얼월드가 거의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AWS와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리얼월드는 AWS AI 엑셀러레이터에 선발돼 100만 달러 상당의 클라우드 크레딧을 지원받는다. 이강욱 사업대표는 “AWS 입장에서 LLM 다음 큰 시장이 블루칼라 영역을 다루는 피지컬 AI”라며 “북미와 유럽 시장 진출에 대한 실질적 협업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류 CEO는 “미국은 천문학적 펀딩으로, 중국은 정부 주도로 피지컬 AI를 키우고 있다”며 “한국은 그런 여건이 안 되지만, 절실한 대기업과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제3의 길로 경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VC 출신으로 10년간 해외 친구들을 만나며 ‘왜 한국엔 세계적 파운데이션 모델 회사가 없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그냥 우리가 바보 같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젊은 창업자가 하기 어려운 도전이라면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창업 동기를 밝혔다.
리얼월드는 내년 1분기 자체 VLA(Vision-Language-Action) 모델을 공개할 예정이다. 류 CEO는 “지금까지 공개된 VLA 중 가장 큰 데이터셋으로 학습한 모델이 될 것”이라며 “다양한 하드웨어를 지원하는 진정한 파운데이션 모델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